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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벨라미 포스터: 오늘의 인용-자본주의의 네 가지 반생태적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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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의] 네 가지 비공식 법칙에 비추어보면, 자본주의적 발전의 지배적 패턴은 확실히 반생태적이다. 생태사적 체계로서의 자본주의의 여러 특징들은 그 체계의 다음과 같은 반생태적 경향들로 환원될 수 있다. (1) 사물들 간에 유일하게 지속적인 연관은 현금관계다. (2) 어떤 것이 자본순환에 다시 들어오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3) 자기 조절적 시장이 가장 잘 안다. (4) 자연의 혜택은 재산 소유자들에게는 공짜 선물이다. 사물들 간에 유일하게 지속적인 연관은 현금관계라는 첫 번째 반생태적 경향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사람들 간의 모든 사회관계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관계가 단순한 화폐관계로 환원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자연과정들을 상호간 탈연관시키고 그것들을 극도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고유한 경향이다. 도널드 워스터가 설명하듯이,

 

시간과 장소에 따른 많은 변이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농업 생태계는 근대 역사 전 기간에 걸쳐 하나의 명백한 경향, 즉 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종의 수와 그것들 간의 상호연관의 복잡성의 측면에서 자연 생태질서의 과격한 단순화로의 운동을 보여 준다 ...... 오늘날의 용어법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 새로운 종류의 농업 생태계를 단작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자연의 일부가 단일 종만을 산출하는 지점까지 재구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일 종은 어딘가에 그것에 대한 강력한 시장수요가 존재한다는 오직 이 이유 때문에 땅에서 재배되고 있다.

 

'상업자본주의'의 특징적인 그런 종류의 환원주의는 "전문화된 상품생산에 기초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위해서는] 생산에서의 균일성과 자연자원의 단일기능적 사용이 요구된다. 예를 들면 강을 인간의 필요와 조화되도록 하면서도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오늘날의 댐 건설과 관련된 거대 강 유역 프로젝트는 "강의 논리와 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반대로 작용한다. 이 프로젝트들은 물의 사용을 자연의 과정이 아니라 소득과 이윤생성의 과정과 연결시키는 [균일성, 분리가능성, 단일기능성의] 환원주의적 가정에 기초해 있다."

 

이 모든 것은 현금관계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일한 연관이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자연의 자본주의적 분화가 진전되면서 자연의 요소들은 하나의 공통분모(또는 기저선), 즉 교환가치로 환원된다. 이런 점에서 시장이 존재한다면 어떤 제품이 커피이든 모피이든 석유화학제품이든 또는 앵무새 깃털이든 상관이 없다.

 

어떤 것이 자본순환에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는 체제의 두 번째 생태적 모순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의 경제적 생산이 진정으로 순환적인 체계(자연에서와 같이)가 아니라 원천에서 하치장―이제는 넘쳐나는―으로 가는 직선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비저장/비회수' 유비는 '경제생활에 대한 사업가적 관점에 어울린다."고 위대한 생태경제학자 니콜라스 게오르게스쿠-뢰겐이 말했다. 생산에 의해 야기된 오염은 기업 비용의 일부인 '외부성'으로 다루어진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생산으로부터 나오는 많은 폐기물들은 생태법칙과 밀접하게 조화되면서 재생되었다. 대조적으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연분화의 진전으로 인해 재생이 극도로 어렵다. [...] 오늘날의 경제에서, "상품은 직접 폐기물로 전화되며, 작물들은 하수구로, 우라늄은 방사능 잔류물로, 석유와 염소는 다이옥신으로, 화석연료는 이산화탄소로 전화된다 ...... 이 계열의 마지막은 언제나 폐기물이며 생태권을 지속시키는 순환과정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코모너는 쓰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모든 생명을 점점 더 지배하는 것은 자연이 가장 잘 안다는 생태원리가 아니라 자기조절적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반생태적 원리다. 예를 들어 식품은 더 이상 영양분의 형태로서가 아니라 이윤 획득의 수단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영양적 가치는 양을 위해 희생된다. 질소비료의 집약적 사용은 토양의 무기질 구성을 불균형하게 만들고, 이 불균형은 다시 그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의 무기질 함유량에 영향을 미친다. 수송과 보관의 요건들이 식품의 질보다 우선시된다. 그리고 농업 생산물을 효과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살충제가 단지 생산물의 모양새를 보호하는 데 흔히 사용된다. 결국 식품의 질은 악화되며, 새와 다른 종들이 죽고 인간이 중독된다.

 

자연의 혜택은 재산 소유자들에게 공짜 선물이라는 자본주의의 네 번째 반생태적 경향은 자연자원과 에너지의 전유와 관련된 생태적 비용이 경제학 공식들에 변수로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고전파 자유주의 경제학은 자연을 자본을 위한 '무보수의' 이득으로 보았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기성 경제모델의 어디에서도 자연의 기여에 대한 적절한 회계를 발견할 수 없다. [...] 예를 들어 한 공장이 야기하는 대기 오염은 그 공장의 내부 생산비용으로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과 사회가 부담해야 할 외부비용으로 간주된다.

 

자본주의는 자연적 부에 어떤 실제적 가치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원료와 에너지 처리량을 극대화한다. 왜냐하면 이 흐름―추출에서부터 최종생산물의 인도를 거쳐 소비자에까지 이르는―이 크면 클수록 이윤을 만들어 낼 기회는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체제는 노동투입을 극소화하는 데 선별적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에너지 소모적이며 자본-집약적인 하이테크놀로지를 촉진한다. 이 모든 것은 비재생 자원이 더욱 신속하게 고갈되고 더 많은 폐기물이 환경으로 투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앞에서 말한 생태와 경제 간의 모순들은 이윤 창출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인간들 간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유일한 연관이 되었다는 사실로 환원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환경문제를 해결할 보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기술을 그려볼 수 있지만, 이런 기술의 개발과 실행은 생산양식에 의해―자본주의와 자본가들에 의해―저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관한 주된 결정을 하는 것은 대기업들이며,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대기업들이 고려하는 유일한 렌즈는 수익성이다. [...]

 

여기서 묘사된 생산에 대한 일반적인 반생태적 접근의 근저에 성장의 문제가 존재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지수적 성장동학이 고유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의해 화폐가 상품들로 교환되며, 이 상품은 이제 더욱 증대된 규모로 더 많은 화폐로 교환된다. [...]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자본주의는 생산 규모의 끊임없는 확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이 과정이 중단되는 사태는 어떤 것이라도 경제공황의 형태를 띨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인 지금,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유지에 필요한 그런 종류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생태적으로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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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The Vulnerable Planet: A Short Economic History of the Environment)>>(김현구 옮김, 현실문화연구, 2001), pp. 13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