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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핼버슨: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임레 라카토슈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V: 임레 라카토슈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V: Imre Lakatos

 

―― 대니얼 핼버슨(Daniel Halverson)

 

"아인슈타인의 결과는 판을 다시 뒤집었고, 그래서 이제 과학적 지식이 확증된 지식이거나, 아니면 확증된 지식일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임레 라카토슈(1922-1974)는 유대계 헝가리인으로서 과학 및 수학에 관한 철학자였으며, 런던 정경대에서 칼 포퍼(Karl Popper)의 오랜 동료였다. 대부분의 전쟁 시기 동안 헝가리는 군사적으로는 나치와 협력했지만 홀로코스트에 협력하기를 거부했던 민족주의적인 호르티(Horthy) 체제에 의해 통치되었다. 1944년에 호르티 체제가 권력에서 밀려 났을 때, 헝가리의 유대인들은 유기되었다. 임레 리프쉬츠(Imre Lipschitz)는 자신의 성을 몰나르(Molnar)로 바꾸었고 마르크스주의 게릴라의 한 부대에 합류했다. 그의 모친과 조모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당했다. 종전 후에 그는 자신의 성을 다시 (라카토슈로) 바꾸었고 소비에트가 후원하는 라코시(Rokosi) 체제에서 대학의 직책을 받아들였다. 그는 칠 년 동안 구금되었는데, 1953년에 스탈린이 사망함으로써 석방되었다. 그는 1956년 봉기에 참여하였고, 그래서 그 봉기가 붉은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을 때 고국을 떠나야 했다. 마침내 그는 영국에 정착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나머지 경력을 보냈다.

 

파이어아벤트와 마찬가지로, 라카토슈는 전통적인 처방적 접근 방식(포퍼적인 과학 철학)과 비교적 최근의 서술적 접근 방식(쿤적인 과학사)을 조화시키기 위해 작업했다. 파이어아벤트와 달리, 라카토슈는 질서정연한 발견 과정―즉,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의 방법론―이 그런 합병을 견디고 존속한다고 생각했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그런 프로그램들은 일반적으로 의문시되지 않는 가정들의 "단단한 핵심"과 더불어 잠재적으로 문제적인 새로운 관측들에 적합하게 하는 데 필요한 만큼 수정될 수 있는 주장들의 "보호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관측이 예측과 맞지 않을 때, 일반적인 가정은 결함이 핵심 요소들이 아니라 주변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일치가 충분히 쌓이면, 결국 핵심 자체가 위협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연구 프로그램이 위태롭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단일한 패러다임이 모든 과학을 한꺼번에 지배한다고 주장한 쿤과 달리, 라카토슈는 다중의 프로그램들이 분야들 내부에서 또는 분야들을 가로질러 동시에 경쟁한다고 주장했다. 개별 프로그램의 가치는 그것이 생성하는 결과와 그것의 경쟁 프로그램들이 생성하는 결과를 비교함으로써 평가된다. 진보적 프로그램은 새로운 정보를 편입하고 새로운 예측을 생성하는 방식으로 자체의 보호 지대를 수정한다. 정체적 프로그램은 새로운 정보를 편입하지만 새로운 예측은 생성하지 못한다. 프로그램의 타당성은 그것이 유용한 정보를 생성하는 것(그리고 그것에 대한 전망)에 관한 단기적인 역사의 문제이다. 그렇지만 정체적 프로그램이 반드시 죽은 프로그램인 것은 아닌데, 진보적 이론이 붕괴될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낡은 이론도 부활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타당성을 결정하는 것은 그것의 정역학이 아니라 동역학이다.

 

과학사에서 일례를 취하면, 19세기에 빛은 어떤 파동적 특성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파동은 매질의 교란이고, 빛은 분명히 공간을 가로질러 여행하기 때문에 공간이 물리학자들이 "발광성 에테르(luminiferous ether)"라고 부른 그런 매질을 담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합당했다. 라카토슈는 단단한 핵심 가정들과 관측들을 조화시키기 위해 이론의 보호 지대가 수정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입자 물리학에 관한 뉴턴적 견해에 대한 문제들이 쌓이기 시작하고, 반복 실험들이 추정된 에테르의 어떤 흔적도 찾아내지 못함에 따라, 핵심 자체가 위태롭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20세기의 초반 몇 십 년 동안에 쿤이 "혁명적 과학" 시기로 서술했을 것을 초래했는데, 그 시기에 상대성과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낡은 뉴턴적 프로그램을 대체했다.

 

그런데 1930년대에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모형에서 예측되는 은하들의 거동이 관측 결과와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측(이론이 아니라)이 어떤 식으로 결함이 있었다고 추정한 물리학자들은 이 은하들의 상당한 부분이 비발광성(그래서 보이지 않는, 즉 "암흑")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에 틀림없다고 결정했다. 또한 1990년대에 물리학자들은 은하들이 감속하고 있는 것(중력이 은하들의 운동량에 대한 끄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예상할 것처럼)이 아니라 가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한 가지 새로운 형태의(그리고 역시 보이지 않는, 즉 "암흑") 에너지가 가정되었다. 두 경우 모두에서 그 프로그램의 단단한 핵심은 보호 지대를 수정함으로써 보존되었다. 라카토슈에 따르면, 이것과 관련하여 잘못된 것은 전혀 없는데, 프로그램의 타당성은 그것의 내부적 일관성이 아니라 그것의 모멘텀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에 부여하는 확신은 궁극적으로 그것의 예측 결과의 성공에 의존하기 때문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는 영원히 비가시적인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결국 그것들이 관찰되거나, 아니면 어떤 새로운 설명 모형을 위해 상대성이 폐기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보호 지대는 여러 번 조정될 수 있을 뿐이다. 암흑 에너지와 암흑 물질에 관한 의문들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열렬한 관심은 이런 불안감에 의해 추동되는데, 상대성이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의 발견으로 입증될 것인지,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대체될 것인지, 아니면 부활된 뉴턴적 프로그램(MOND)의 도전을 받을 것인지 여부는 분명히 그들의 작업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임레 라카토스는 1974년에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했다. 이전에 다양한 학술 저널에 걸쳐 흩어져 있던 그의 논문들은 1978년에 <<철학적 논문들(Philosophical Papers)>>이라는 제목으로 사후에 출판되었다. 연구 프로그램에 관한 그의 논의는 제1권에 나타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증명과 논박(Proofs and Refutations)>>(1976)이라는 책에 발표된 그의 수학의 철학일 것인데, 그는 수학적 증명이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수학적 증명의 검증에 대한 실험중심적 접근 방식을 옹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