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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노리토시: 오늘의 인용-'행복한 젊은이들'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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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 "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미래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나 장래의 인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지금 불행하다."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 자신이 '이보다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미래에 더 큰 희망을 걸지 않게 됐을 때, '지금 행복하다." 혹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 공통적으로 고령자는'행복도'나 '생활 만족도'에서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체력적으로 노쇠한 고령자가 아직 젊은 사람들보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은, 언뜻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고령자는 이제 더 이상 '지금보다도 훨씬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따라서 고령자들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대답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다.

 

[...] 20대의 '생활 만족도'가 상승하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불황'이라고 하는 '어두운 시대'일 때가 많다. [...]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리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 인간은 "지금 행복하다."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고도성장기나 거품경제 시기에 젊은이들의 '생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났던 이유가 설명된다. 그 시기의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다. 더불어 자신들의 생활도 점차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따라서 지금은 불행하지만, 언젠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소박하게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그저 '끝나지 않는 일상'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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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루이치 노리토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언숙 옮김, 민음사, 2014), pp. 1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