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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 오늘의 인용-물리학과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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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직업적인 과학철학자들의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들 가운데 일부는 물리학과 수학에서 매우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나는 소수의 과학철학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많은 것을 배운 반면에, 나는 흔히 그들이 과학자들에게 너무 점잖다는 느낌을 안고 물러난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 들면, 때때로 나는 양자론의 철학에 대한 전문가들이 자기 역할을 과학자들이 그 이론에 관하여 말하는 방식을 정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데, 많은 물리학자들이 그 문제는 훨씬 더 심층적이라고 추정할 때에도 말이다. 양자역학의 해석과 관련된 정말로 나쁜 관념들을 골라낼 수 있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듯이, 결국 문제는 우리가 그저 잘못된 해석이 아니라 잘못된 이론을 갖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양자론, 즉 우리의 다른 한 구성물이 결코 이해되지 않을 때, 철학자들이 아니라면 누가 물리학자들에게 말할 용기가 있겠는가? 과거에는 물리학자들이 허튼소리를 늘어놓을 때 라이프니츠 같은 철학자들이 망설이지 않고 그들에게 말했다. 최소한 그에 못지 않은 것이 걸려 있는 현재에는 철학자들이 왜 그토록 예의가 바른가?

 

확실히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골라내기가 진행되고 있으며, 그리고 나의 무지로 인해 철학에 대해서는 중요할지도 모르는 그런 논의가 현대 과학에서 위기에 봉착한 점들을 건드리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면 불공정할 것이다. 더 많은 과학자들이 현대 철학의 많은 부분이 기재되어 있는 어렵고, 우아하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산문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의문들 가운데 일부에 대한 해답을 찾아낼 것이라는 점은 당연할 것이다. 확실히 나는 철학이 처해 있는 혼란 가운데 일부는 내가 방금 논의한 것과 같은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인상을 받는데, 그 인상은 철학이 창시자들의 종교에서 비롯된 자체의 역사적 기원들과 이십 세기 생물학과 우주론에서 비롯된 우리의 실제 환경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함의들 사이에 붙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철학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물리학과 우주론이 직면하고 있는 심원한 문제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우주론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 철학을 끌어들이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런데 이것 이외에, 우리가 우주론적 이론들을 구성하려는 현재의 시도들에 의해 제기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길을 찾아낼 수 있으려면 철학을 논의해야 할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이것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라이프니츠와 칸트 같은 철학자들이 이런 쟁점들 가운데 일부를 인식했으며, 그리고 우리에게 말해 줄 유용한 것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외에도, 형이상학적 기획의 운명은 기초 물리학의 현재 위기와 관련이 있을 법한데, 다양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이론 물리학의 야망과 형이상학의 야망 사이에는 친화성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둘 다 세계와 관련하여 발견해야 하는 어떤 절대적 진리, 즉 그것들이 최종적인 근본 법칙, 또는 참된 본질―참된 존재―로 다양하게 간주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추정했다. 둘 다 "자연은 숨기를 좋아한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적 신조에서 영감을 찾아냈고, 그래서 세계의 외양들을 넘어서는 영원한 초월적인 현실태에 대한 탐색을 최고 목적으로 간주한다. 둘 다를 관통하는 것은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세계는 전적으로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 의해 구성된 일종의 영화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전통이다. 기초 물리학과 형이상학 둘 다가 상이한 방식으로 발견하려고 노력한 참된 실재, 참된 존재는 이런 외양들 너머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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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 스몰린(Lee Smolin), <<우주의 삶(The Life of the Cosmos)>>, pp.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