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스티븐 히크먼: 오늘의 서평-존 마이클 그리어: 세계 제국의 쇠퇴와 몰락

 

존 마이클 그리어: 세계 제국의 쇠퇴와 몰락

John Michael Greer: Decline and Fall of the Global Empire

 

―― 스티븐 크레이그 히크먼(Steven Craig Hickman)

 

제국은 주변부 피지배 국가들에서 부를 추출하여 제국의 핵심에 집중시키는,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되고 대개 강요되는 국가들 사이의 배치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제국은 부 펌프(wealth pump), 즉 다른 국가들을 희생시켜 한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장치이다.  ―― 존 마이클 그리어

 

디 아크드루이드 리포트(The Archdruid Report)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존 마이클 그리어의 새 책 <<쇠퇴와 몰락: 제국의 종말과 21세기 미합중국 민주주의의 미래(Decline and Fall: The End of Empire and the Future of Democracy in 21st Century America)>>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기본 책략은 로마만큼 오래되었다. 세계주의적 국가들은 영토, 자원, 그리고 그가 주변부와 핵심 사이의 비용이라고 일컫는 것을 소진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메리카 제국은 위기, 또는 그가 서술하듯이, 이화 작용적 붕괴를 향해 가고 있다.

 

제국들이 어떻게 붕괴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 번째 것은 이화 작용적 붕괴라는 핵심 개념이다...,유지 비용과 가용 자원 사이의 불일치라는 개념이다. 두 번째 것은 제국의 정의이다..., 제국은 부 펌프, 즉 피지배 국가들에서 부를 추출하여 제국의 핵심에 집중시키는, 군사력에 의해 뒷받침되는 경제적 배치들의 체계이다.

 

그는 아메리카 제국과 서구 문명이 서서히 쇠퇴와 몰락을 향해 움직이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위에서 규정한 대로 이화 작용적 붕괴 때문이라고 넌지시 주장한다. <<서구 역사 속 몰락이라는 관념(The Idea of Decline in Western History)>>에서 아서 허먼(Arther Herman)이 말하듯이, 몰락은 사실상 "시간의 본성과 의미에 관한 이론"이다. 러시아와 중국 같은 경쟁력이 있고 공격적인 세력과 국가들로부터 서구 민주주의와 세계주의가 부식당하고 있는 것이 이유의 일부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이유는 "진보의 신화"에 서구의 신화적 유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에 관한 모든 이론은 몰락에 관한 이론도 포함하는데, "불가피한" 역사 법칙들이 전진하는 것과 꼭 마찬지로 쉽게 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서구 문명의 몰락에 관한 이론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 아래에 진보에 관한 이론이 잠복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와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같은 거대 서사적 저작들에서 이런 추측을 본 적이 있다. 그의 고전인 몰락의 역사의 서두에서 슈펭글러는 이렇게 묻는다.

 

역사의 논리는 존재하는가? 개별적 사건들의 모든 계산 불가능한 인과적 요소들을 넘어서 역사적 인류의 형이상학적 구조라고 부를 수 있는 것, 매우 명료하게 나타나는 형태들―사회적, 정신적 그리고 정치적―에 본질적으로 독립적인 것이 존재하는가? 이런 현실태들은 사실상 이차적이거나 그런 구조에서 비롯되는가? 세계 역사는 관찰하고 있는 눈에 어떤 결론들을 정당화할 만큼 충분히 일정하게, 거듭해서 어떤 거대한 특질들을 제시하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그런 전제들에서 비롯되는 추리가 나아갈 수 있는 한계는 무엇인가?

 

당대에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r)는, 중하층 계급은 흔히 선망과 앙심의 정치에 끌리며, 진보주의적 전통은 결코 난제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그릇된 이데올로기적 곤경들―반지성주의, 외국인 혐오증, 인종차별주의―과 끊임없이 싸운다고 진술하곤 했다. 그것과 관련하여 니부어는 이렇게 묻곤 했다. 강제력 없이는 사회적 응집이 불가능하다면, 사회적 부정의를 창출하지 않은 채 강압이 불가능하다면, 그리고 후속적인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은 채 부정의의 파괴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사회적 갈등의 무한 순환에 갖힌 것이 아닌가?

 

크리스토퍼 래시(Christopher Lasch) 자신은 미합중국 역사 속 진보주의적 전통이 몰락 중에 있으며, 심지어 최후의 일격을 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부의 더 평등한 분배에 대한 필요는 도덕적인 견지에서도 경제적인 견지에서도 틀림없이 명백하고, 선진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체계 아래에서는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명백하다. 그렇게 명백하지 않는 것은, 현재 평등이 산업 국가들의 혜택을 받고 있는 계급들이 향유하는 호사스러운 기준을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더 수수한 생활 수준을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십일 세기에 평등은 진보주의적 전통에서는 거의 지지받지 못하는 도덕적 한계 및 물질적 한계를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은 1991년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전 세계, 특히 미합중국의 부유한 최고 상류층 1%는 대중을 위해 자신들의 부를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부유층은 고대 로마인들도 선망했었을 엄청난 사치 속에서 살아가는 반면에 저녁마다 노동자들에게 긴축 조치가 시행되는 것을 시청하는 이 때에 앞의 마지막 문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존 마이클 그리어는 무엇을 예견하는가?

 

향후 수십 년 동안 미합중국과 산업 세계의 인민들은 이미 쇠퇴하고 있는 아메리카 세계 제국의 와해, 달러화와 아메리카판 제국적 부 펌프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경제 질서의 종말, 다양한 재생 불가능한 자원들의 고갈의 가속, 그리고 빠른 기후 변화의 파괴적 영향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런 위기들의 영향은 전쟁, 혁명, 경제 위기, 그리고 한 세계 질서가 다른 한 세계 질서로 교체될 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 여타의 불연속성에 의해 악화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전 지구적 규모에서 도래하는 문명의 붕괴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을 제공하는 많은 책에서 제시된 파멸과 우울한 예상은 더 많이 있다. 누적 효과는 거의 정신을 멍하게 한다. <<붕괴: 피크 오일 이후 세계의 에너지 및 화폐 위기(Confronting Collapse: The Crisis of Energy and Money in a Post Peak Oil World)>>에서 마이클 C. 루퍼트(Michael C. Ruppert)는 차분한 결론을 제시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지구의 능력―명백히 과거의 것이다―이 결코 아니라, 이미 여기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동력을 꺼야 한다. 석유 이전에는 지구에 대략 이십 억 명의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오늘날에는 거의 칠십 억 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이 단일 쟁점을 해결하지 못하면 종 전체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인데, 만약 우리가 이것을 전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대신에 혼돈, 전쟁, 기근, 질병, 사회적 해체, 붕괴, 그리고 매우 가능성이 높은 핵 전쟁에 의해 해결될 것이다. 이런 난제는 방대한 돈과 자원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은밀히 해결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집단 학살, 생물학적 전쟁 또는 어떤 다른 수단들에 의해 해결될지도 모른다.

 

붕괴에 관한 또 하나의 학술적 또는 강단적 접근 방식은 조지프 A. 테인터(Joseph A. Tainter)의 <<복잡한 사회의 붕괴(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에서 제시되는데, 여기서 그는 븡괴에 이르는 네 가지 기본 개념들을 구획한다. 첫째, 인간 사회는 문제 해결 조직이다. 둘째, 사회정치적 체계는 자체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세째, 복잡성의 증가는 일인 당 비용의 증가를 수반한다. 그리고 네째, 문제 해결 대응책으로서의 사회정치적 복잡성에의 투자는 흔히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지점에 이른다. 앞의 세 개념과 네 번째 개념을 조합하면 유지 비용과 가용 자원 사이의 불일치라는 그리어의 관념과 잘 맞을 것이다.

 

테인터에 따르면, 일단 복잡한 사회가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되면 붕괴는 수학적 확률이 되고,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극복할 수 없는 재난이 개연적인 것이 된다. 그런데, 슈펭글러, 토인비, 또는 심지어 아서 허먼과 크리스토퍼 래시 둘 다에 의해 지적된 대로의 진보주의적 쇠퇴라는 관념과 달리, 테인터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붕괴는 ... 어떤 원초적 혼돈으로의 몰락이 아니라, 복잡성이 더 낮은 정상적인 인간 조건으로의 복귀이다. 게다가 붕괴가 한결같이 파국이라는 관념은 현재의 이론에 의해 논파된다. 붕괴의 원인이 복잡성에의 투자로 인한 한계 수익의 감소인 한에 있어서 붕괴는 경제적 과정이다. 조직적 투자의 한계 수익을 더 양호한 수준으로 회복하는 것이 필요해질 때 붕괴는 일어난다. 복잡성을 지탱하는 비용에 대해 수익을 거의 얻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복잡성의 상실은 경제적인, 그리고 아마도 행정적인 이득을 가져다 준다.

 

테인터가 서술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영도(degree zero) 또는 소멸―테인터가 "더 낮은 복잡성"이라고 서술했듯이―로 이어지는 "죽음 충동"을 논의하는 프로이트와 대체로 흡사하게 들린다. 테인터와 관련된 문제는 그가 마치 사회의 붕괴가 인간의 고통과 고난이 결여된 수학적 추상물인 것처럼, 즉 그것은 이지적 관료들의 하향식 행정 단계에 의해 쉽게 처리될 수 있는 복잡성의 상실 또는 획득과 전적으로 관련된, 혼돈 이론 등에 기반을 둔 정리와 경제적 조치들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이 극적이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으며, 그것과 관련된 영화도 결코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인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감정적 인상을 담지 않은 모든 거대 서사들만큼 명료하게 사회에 관한 진리, 명백한 사실들만을 말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붕괴 이론의 다른 한 명사는 소련의 붕괴를 경험한 것 외에는 아무 자격도 없다고 말하는 드미트리 오를로프(Dmitry Orlov)이다.

 

붕괴는 전면적인 패주라기보다 질서정연한 조직적인 퇴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심지어 붕괴를 과도기적 전환, 즉 우리를 위해 이미 계획되었고(그래서 더 이상의 전환 계획 활동이 불필요하다) 금융, 소비주의 그리고 일상적 정치의 붕괴와 더불어 그것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회와 문화의 붕괴로 이루어질 전환으로 생각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사실상 붕괴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오를로프는 반복적으로 드러난 어떤 기본 유형들을 거듭해서 발견했는데, 궁극적으로 그는 그것들을 붕괴의 다섯 단계로 제시했다.

 

단계 1: 금융 붕괴. "일상적 사업"에 대한 믿음이 상실된다. 미래는 위험을 평가할 수 있고 금융 자산을 보증할 수 있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과거와 유사한 것으로 더 이상 여기지지 않는다. 금융 기관들이 파산하게 된다. 예금이 사라지고 자본에 대한 접근권이 상실된다.

 

단계 2: 상업 붕괴. "시장이 제공할 것이다"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화폐가 평가절하되고 희귀해지며, 상품이 비축되고, 수입업체와 소매 연쇄점들이 파산하며, 만연하는 생활 필수품의 품귀가 표준이 된다.

 

단계 3: 정치 붕괴. "정부가 여러분을 돌볼 것이다"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생활 필수품들의 상업적 원천들에 대한 접근권의 광범위한 상실을 완화시키려는 공식적 시도들이 효과를 내지 못함에 따라 기성 정치 체제는 정당성과 적실성을 상실한다.

 

단계 4: 사회 붕괴. "사람들이 여러분을 돌볼 것이다"라는 믿음이 사라진다. 권력 공백을 채우기 위해 밀려드는 자선 기관이든 다른 단체들이든 간에 지역적 사회 기관들이 자원을 소진하거나 내부 갈등으로 쇠퇴한다.

 

단계 5: 문화 붕괴. 인류의 선함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다. 사람들이 "친절, 관용, 배려, 애정, 정직, 환대, 동정, 자비"에 대한 역량을 상실한다. 가족들이 해체되어 희소 자원들을 위해 개인으로서 경쟁한다. "내가 내일 죽을 수 있도록 당신이 오늘 죽기를!"라는 구호가 새로운 좌우명가 된다.

 

단계 5는 내게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주입하곤 했던 폭력적인 내 아버지를 거의 떠올리게 한다. "개가 개를 잡아먹는 세상이란다. 네가 그들을 잡아먹지 못하게 된다면, 그들이 확실히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싸우는 것을 배워야 해." 우리는 정말 그 단계에 이르러 버렸는가? 우리는 우리의 비인간적 핵심이 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가? 슬프다. 그런데, 현재 재정적으로 파산한 미합중국의 몇몇 도시들―캘리포니아 주 스톡턴, 캘리포니아 주 매머드 레이크, 펜실베니아 주 웨스트 폴, 앨라배마 주 제퍼슨 카운티, 로드 아일랜드 주 폴즈, 캘리포니아 주 발레조, 오클라호마 주 모펫, 앨러배마 주 프릿차드 등 목록은 이어질 수 있다―을 돌아다녀 보면, 단계 5의 문화 붕괴의 측면들을 발견할 것인가?

 

상황이 해체되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가 아메리카 제국의 황혼기에 살고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명백해지고 있다. 미합중국의 상이한 지역들에서 오를로프의 다섯 단계들의 측면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이미 도래했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나는 유럽 또는 전 세계의 다른 국가들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합중국에 대해서는 그리어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아메리카 제국 시대가 종말을 향해 맹목적으로 터벅터벅 나아가고 있을 때, 오늘날 미합중국인들 앞에 놓인 중요한 과업들 가운데 하나는 미합중국을 다시 만드는 것, 즉 탈산업화와 경제적 및 기술적 쇠퇴의 시대에 집단적 목적과 의미에 대한 의식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이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괜찮다면,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 즉 무한한 물질적 풍요에 대한 약속을 필요로 하지 않는 꿈, 불과 몇 세기 만에 땅에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없앰으로써 획득한 일시적인 풍요의 쇄도 또는 제국의 이윤에 의존하지 않는 꿈이 필요하다. 이미 세 번이나 이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 관해서는, 미합중국이 위기의 와중에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야 했던 유일한 국가가 결코 아니며, 꽤 많은 다른 국가들이 어떤 터무니없는 꿈의 실패와 몰락에 직면하여 그런 것을 이루어야 했다. 그리고 미합중국이 임박한 시기에 그런 난제에 직면할 유일한 국가도 아닐 것이다. 아메리카 제국의 몰락에 뒤이이어 필연적으로 이어질 지정학의 지각 변동적 변화와 산업 시대의 임박한 종말에 의해 이미 개시되고 있는 훨씬 더 거대한 전환 사이에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유사한 수정 작업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미합중국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전망을 찾아낼 것이라는 점은 전혀 보장되지 않는데, 미합중국은 어쩌다 그런 전망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때는 이미 늦었기 때문이다. 잠재력을 알아채고 그런 전망을 채우는 데 돕고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