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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라 킹: 오늘의 에세이-종교의 진화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종교의 진화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How Do We Explain The Evolution Of Religion?

 

―― 바바라 킹(Barbara J. King)

 

모든 사람이 유일신 또는 어떤 다른 초자연적 존재자에 대한 신앙을 확언하지는 않더라도, 종교는 문화를 가로지르는 보편적 현상이다.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인 사람들이 미합중국 인구의 6%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14%의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교성은 인간의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고, 그래서 생물학자, 인류학자 그리고 심리학자들은 종교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열심히 논쟁한다. 언어, 기술 그리고 이족 보행과 꼭 마찬가지로 종교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했다. 그런데 종교는 어떻게 발생했는가?

 

<<애니멀 비헤이버(Animal Behavior)>>라는 저널에서 온라인으로 발표된 새로운 논문에서 생물학자 버나드 크레스피(Bernard Crespi)와 카일 섬머스(Kyle Summers)는 한 특정한 판본의 이 의문을 제기한다.

 

"다윈적 연속성과 각 단계를 매개하는 설명 가능한 선택 압력으로 종교는 사실상 어떻게 점진적으로 발생하여 진화했는가?"

 

크레스피와 섬머스가 선호하는 대답은 1964년에 W. D. 해밀턴(Hamilton)에 의해 제시된 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친족 선택은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라는 개념에 의존하는데, 그것은 유기체의 생물학적 적합도가 직접적인 자식 생산뿐 아니라 다른 인척들의 생식에 대한 지원에서도 비롯된다는 관념이다.

 

우리 유전자들 가운데 일부의 사본들이 우리 인척들의 육체들에도 존재하는데, 우리 부모, 자식 그리고 형제 자매의 경우에는 50%, 조부모의 경우에는 25% 등이 존재한다. 어떤 조건에서 자기 인척을 도울 때 우리는 자신의 유전자 유산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

 

크레스피와 섬머스의 가설은 이렇다.

 

"종교와 신 개념은 친족 집단과 더 큰 규모의 사회적 집단 및 문화적 집단의 이익에 기여함으로써 포괄 적합도를 극대화하는 맥락에서 발생하여 유지된다."

 

다시 말해서, 크레스피와 섬머스의 표현 형식에 따르면, 신을 섬기는 것과 심리학적으로(그리고 때때로 유전학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섬기는 것은 같은 의미이다.

 

크레스피와 섬머스는 종교를 "초자연적 관념들과 도덕을 포함하는 사회문화적 믿음과 행동 체계"로 규정한다. 종교 같은 복잡한 제도에 대한 규정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나는 실천,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행하는 것에 대한 더 명시적인 강조를 선호한다. 사실상 나는, 자신들의 가설을 제시할 때 크레스피와 섬머스가 그들의 규정이 시사하는 것보다 더 많이 믿음뿐 아니라 실천에 크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진화적 궤적의 초기 단계―생물학적 가족에 집중하는―에서 알게 된다.

 

"조부모와 부모는 발달 초기 동안 그들의 지배적인 심리학적 영향을 받게 되는 그들의 자손들 사이에 친사회적이고, 상부상조적이며 이타주의적인 행동을 심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부모와 부모는 이런 가치들의 전달―즉, 그런 전달에서 비롯되는 실천―로부터 직접적으로 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크레스피와 섬머스는 지적한다.

 

오랜 시간 동안 집단 내 유대가 실천과 믿음의 공유에 의해 강화됨에 따라 "친족 집단"은 확대되어 더욱 더 많은 비인척들을 포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단계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의 개시를 포함하는데, 크레스피와 섬머스는 조상들의 사후에도 집단 내에서 그들의 영향이 느껴질 때 그런 믿음이 시작되는 것으로 여긴다.

 

"처음에 명백히 최초의 초자연적 행위자와 신들이 것은 조상이었다. 그들은 부재하였고, 인간 형상을 갖추었고, 도덕적으로 강력했고, 변치 않았으며, 불가사의하지만 지지하는 다정한 친족의 유대 덕분에 편안했다. 조상에 집중한 종교적 의례들도 필연적으로 친족 유대를 강화했고 더 일반적으로 협력을 촉진했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조상 그리고 다른 친족 인물 신들은 점차적으로 더 높은 층위에서 심리학적 친족 의식을 통해서 집단들을 통일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 가설은 협력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경쟁―특히 집단들 사이의―을 무시하지 않는다. 현대 세계에서 우리 모두가 너무나 쉽게 보듯이, 이런 종류의 경쟁은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차이에 의해 추동될 수 있다. 종교는 "이전의 갈등을 억제할 뿐 아니라 새로운 갈등을 생성한다"고 저자들은 인정한다.

 

그들의 진화적 사유에 있어서 크레스피와 섬머스는 내가 여기서 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뉘앙스를 제시하는데, 나는 그들의 사유 가운데 일부를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만 들면, 그들은 종교적 성향을 갖추게 는 데 있어서 옥시토신의 중요한 역할에 전적으로 매혹된다. 과학 저술가 에드 영(Ed Young)이 지적했듯이, 옥시토신에 대한 무모한 주장들은 드물지 않다. 그런데 옥시토신은 흔히 광고되는 대로 사랑과 협력의 호르몬이 결코 아니라, 맥락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영이 보고하듯이, 어떤 상황에서는 옥시토신이 더 큰 부정직과 연관된다.

 

칠 년 전에 <<신의 진화(Evolving God)>>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살롱(Salon)>>과 가졌던 인터뷰처럼 그것에 바탕을 둔 인터뷰들에 응했을 때, 나는 크레스피와 섬머스를 사로잡은 것과 동일한 기본적인 의문들에 시달렸다. 인간의 종교성은 의미 만들기, 상상, 공감 그리고 다른 영장류 동물들(과거에 인간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한 영장류 동물들 또는 그런 공통 조상 자체들)의 규칙 따르기에 의해 갖추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나는 상이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뇌가 지금 그리고 여기를 너머 생각하도록 점진적으로 선택됨에 따라 종교적 상상은 호미니드 계보에서 나중에 개화되었다.

 

당시에 내 틀은 크레스피와 섬머스보다 인간의 종교성에 대한 전제 조건에 더 집중했으며, 게다가 네안데르탈인과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고고학적으로 가시적인 행동에서 종교의 기원을 정확히 지적하려고 시도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핵심적인 관념들의 집합을 기본적으로 상보적이라고 여긴다.

 

크레스피와 섬머스의 가설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종교의 진화에 관한 문헌에서 사유―협력과 경쟁의 상대적인 역할들과 관념뿐 아니라 실천들의 세대 간 이전에 대한―를 요청한다.

 

종교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작업하는 동안 또 하나의 의문이 제기된다. 마찬가지로 만연하는 무신론의 영속적인 존재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나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연구가 수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