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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우: 오늘의 인용-'자족적 세계'로서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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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일본인은 하나같이 개개인에게 주어진 제 몫의 일정한 일에만 성심성의껏 매달리는 통에 그 시야가 극히 좁아 보인다. (각 분야의 장인에 대한 대우나 존경심이 지극하다는 범사회적 기풍도 참조할 만한데, 그 소위 장인의식의 발로는 제가끔의 인생 전반의 순도를 높일지는 몰라도 삶 자체는 그만큼 말단지엽적인 동시에 어떤 폐쇄적인 회로에 감겨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세계관이 없다는 '망발'은 일본에는 뚱보가 없다는 우스개만큼이나 그럴듯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개미처럼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사람에게 군살이 붙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고, 전후좌우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허겁지겁 매달리는 사람에게 이렇다할 세계관을 기대한다는 것도 무리일 테니까 말이다.

[...]

대다수의 일본인은 호경기/불경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또 그에 대한 각자의 반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점이다. 그만큼 경제 전반에 대해 민감하다는 소리인데, 특히나 불경기에 대한 반응은 그 정도가 아주 심한 편이다. 한마디로 엄살이 우심한 것이다. 좋게 보면 선견지명을 생활화하여 미리미리 안위安危를 챙기는 풍습이 사회 전반에 내면화되어 있어서 국부國富는 물론이려니와 개개인의 경제력도 통째로 까발리지는 않는다. 일종의 '혼네本音(본심)', 곧 본색 감추기인 셈이다. 일본 문화의 심층을 풀이하는 키워드로 흔히 이 '혼네'를 주목하지만, 본색 감추기 기법에 관한 한 '엄살'만큼 효과적인 위장술도 달리 없다. [...] 그 배면에는 '겸손'보다 '자부'가 잔뜩 웅크리고 있다, 그런 심리적 기제의 발동은 당연하게도 이중, 삼중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남의 방심을 조장하는 한편 자기반성, 자기 위로, 자기 갱신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물론 그런 위장 속에는 누가 뭐라든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실속 위주의 타산이 웅크리고 있음은 말하나마나다.

 

[...] 하기야 '엄살' 그 자체가 이미 자족적인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웅크리고 지내겠다는 심지다. 그런 의미에서도 일본은 지구상에서 유례가 드문 안분지족의 세상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속의 일본인들은 오불관언으로 '엄살'을 떨기에 여념이 없다. 내 이웃, 내 친척, 이 사회나 저 먼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나는 내 식으로, 내 실속이나 챙기며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엄살꾸러기로서. 대단히 편리한, 따라서 무책임한 세계관이기도 하다. 덧붙인다면 역사 인식의 착종으로 헛소리를 자주 터뜨리는 일본의 우익 정객들, 그 배후의 국수주의적 우익 단체들의 망동도 실은 이런 '자족적 세계'에서 철딱서니 없이 자란 엄살꾸러기의 소행으로 치부해야 마땅하다는 게 내 소견이다. 한마디로 유치한 처세술인데, 엄살을 떨다보면 자기 자신도, 나아가서 세상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무지를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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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우, <<일본 탐독>>(글항아리, 2014), pp.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