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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카츠: 오늘의 에세이-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의 생물학적 열등성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의 생물학적 열등성

The Biological Inferiority of the Undeserving Poor

 

―― 마이클 카츠(Michael B. Katz)

 

...우리 가난한 자들의 고통이 자연 법칙이 아니라 우리 제도에 의해 초래된 것이라면, 우리 죄는 대단히 크다....   ―― 찰스 다윈(1839)

 

기록된 대부분의 역사 시기 동안 가난은 신의 의지를 나타내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이거나 위험하거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을 만나기 꺼려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피할 필요가 없었다. 십팔 세기 말과 십구 세기 초에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은 다르며 열등하다고 간주하는 냉혹한 새로운 관념이 고대의 성경적 견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측면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나머지 사람들과 다른가하는 점이 도덕철학, 정치경제학, 사회과학 그리고 마침내 생물학으로 대응하게 되는 화급한 문제가 되었으며, 그리고 여전히 그렇다. 지난 150년 동안 왜 가난에 대한 생물학적 개념들이 영고성쇠를 거듭했는가? 그 개념들은 어떤 형태들을 취했는가? 그것들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가난에 대한 생물학적 규정은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이라는 관념을 강화하는데, 이 관념은 계몽주의 이후 전개된 가난 담론의 가장 오래된 주제이다. 그것의 역사는 십팔 세기 말에서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 견해에 따르면, 가난은 개인적 태만과 열등함에서 비롯된다. 도덕적 약점들―알콜 중독, 게으름, 성적 방탕―이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의 가장 일관된 표식들을 구성한다. 가난의 문화가 개인들에게 은밀히 영향을 미쳐서 그들에게 빈곤한 삶에 빠지게 하는 특질들을 부여한다는 관념이 얼마 후에 학술 담론과 대중 담론 둘 다에 주입된 이후에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결함이 있는 유전이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의 식별하는 세 번째 계보를 구성하는데, 이것은 분자생물학과 신경과학의 과학적 진보에 힘입어 오늘날 부활을 향유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은, 과거에는 이런 관념들이 과학적으로 의심스러웠고, 윤리적으로 수상했고, 정치적으로 유해했으며, 최악의 경우에 치명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현재 그 관념이 부활한 현상에 대해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논문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규정을 파헤친다. 그것은 시간에 따른 그런 규정의 지속을 기록할 뿐 아니라, 세 가지 주제를 강조한다. 첫째, 그 개념은 제도적 실패와 프로그램의 실패에 대응하여 흥하고 망한다. 그것은 개혁가들의 낙관주의가 환상인 것으로 판명되는 이유 또는 제거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문제들이 여전히 처리하기 힘든 이유에 대한 편리한 설명을 제공한다. 둘째, 그것의 최초 표현과 재표현은 일종의 신라마르크주의를 통해서 유전과 환경 사이의 거리를 분석하고자 하는 연결 개념들에 의존한다. 이런 초기의 다리들은 반드시 허물어진다. 세째, 유전주의적 관념들은 항상 당대의 최고 과학의 지원을 받았다. 이것은 "인종들"의 등급을 매겼던 관념들의 경우에 그랬다. 지지받는 이민 제한 정책, 강제 불임의 고무뿐 아니라 가난한 아이들의 지적 잠재력을 가치가 없다고 간주한 자들의 경우에도 그랬다. 가난과 관련된 미국적 관념들의 생물학적 계보를 조사하는 이 논문은 내가 찾아낸 유전주의적 사유의 첫 번째 응용 사례로 1860년대에서 시작하여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 이민 제한 그리고 초기 지능지수 검사를 다룬다. 그 다음에는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Harvard Educational Review)>>에 발표된 아더 젠센(Arther Jensen)의 유명한 1969년 논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벨 커브(Bell Curve)>>를 분석하며, 신경과학과 후성유전학 분야의 놀라운 흥기로 끝난다. 그것은, 현대 과학자들의 지능, 솜씨 그리고 선의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생물학적 규정의 역사는 신경과학의 발견 결과에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요청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

1866년에 주 소속 공적 기관을 감독한 매사추세츠 주 구호기관 위원회는 이렇게 적었다. "악["우리 공동체의 의존적이고 파괴적인 대다수 구성원들의 존재"]의 원인들은 다양하지만, 즉각적인 원인들 가운데 주요한 원인은 물려받은 유기적 결함, 손상된 구성 또는 조악한 혈통이다."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의 생물학적 열등성에 대한 초기의 이런 공표는 제도적 실패에 대한 대응책으로 제기되었다. 그 이후로 항상 반복되는 제도 및 계획 실패 때문에 가난에 대한 글쓰기에서 그 점은 끊임없이 유지되었는데, 그것은 항상 과학적 권위의 뒷받침을 받았다.

 

십구 세기 초부터 개혁가들은 범법자들을 교정하고, 범죄자들을 갱생시키고,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며,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계된 일단의 새로운 제도를 후원했다. 그들이 보기에, 범죄, 가난 그리고 무지는 확연히 다른 문제들이 아니었다. "범죄자," "구호대상자," 그리고 "타락자"는 만인에 내재하는 잠재적인 것들을 나타내었으며 잘못된 환경에 의해 촉발되었다. 예를 들면, 가난과 범죄는 상호 유발하며 대체로 도시에서, 이민자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듯 보였다. 1840년대에 두드러진, 일탈과 의존의 환경적 원인들에 대한 이런 강조는 최초의 개혁 학교,  교도소, 정신병원 그리고 심지어 공립 학교 설립의 기반이 되었다.

 

1860년대 중엽에 그런 낙관주의로 구축된 새로운 제도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것들은 범죄자들을 갱생시키지 못했고, 정신질환자를 치료하지 못했고, 범법자들을 재교육하지 못했으며, 또는 가난과 다른 형태들의 의존을 줄이지 못했다. 의문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였다. 대답들은 제도 설계와 이행의 부족한 점들이나 입소자, 수인 그리고 환자들의 삶의 맥락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들은 개인에 기반을 둔 설명들, 즉 물려받은 결함들에 모아졌다. 매사추세츠 주 구호기관 위원회는 획득 형질의 유전(나중에 라마르크주의로 알려지는)이 범죄자, 정신질환자 그리고 다른 타락한 의존적 개인들뿐 아니라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을 재생산한다는 자체의 믿음을 "동물 정념"의 자극과 "의지"의 억압에 미치는 다량의 알코올의 유독한 효과를 강조한 생리학자들로부터 끌어온 과학적 증거로 뒷받침했다.

 

그런데 유전에 대한 주 위원회의 음울한 강조는 비관주의적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원회는 시간에 따른 육체의 회복력을 믿었다. 악덕은, 과도하지만 않는다면, 육체의 자연적인 치료 능력에 의해 근절될 수 있는 표준 편차가 있었다. 사실상 위원회는, 범죄와 가난의 지속은 "사회의 놀랄 만한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사회 구성원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 의존한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위원회는 유전에 대한 과학적 연구을 통해서 사회적 병리 현상들의 원천을 밝혀내었다. 그렇다면 사회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 통해서 그것의 방지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발굴할 것이었다.

 

위원회는 우생학을 미리 보여주는 이데올로기로 시작하여 진보주의를 예상하는 이데올로기로 끝을 맺었다. 유전과 환경주의, 또는 생물학과 개혁 사이의 초기 연결은 그것이 사회다윈주의에 의해 부숴질 때까지 비교적 단기간 동안에만 개혁가들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십 세기 초에 그 연결은 다시 이루어졌지만 우생학자들과 그들의 계승자들에 의해 다시 한 번 파괴된 다음에, 이십일 세기 초에 후성유전학의 옹호자들에 의해 또 다시 재건되었다.

 

1920년대에 처음에는 개별적인 두 흐름―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이 인종차별주의와 사회적 보수주의를 정당화한 철저히 우생학적인 이론으로 수렴했다. 사회다윈주의는 다윈주의적 진화 이론을 인간 행태와 사회에 적용하려고 시도했다. 사회다윈주의자들―선도적인 대변인 허버트 스펜서는 1882년에 의기양양한 미합중국 여행을 즐겼다―은 궁핍, 정신질환 그리고 범죄 성향을 비롯한 사회적으로 유해한 특질의 유전 가능성과 적자생존을 방해하는 공적 구호 및 사적 구호의 유해한 효과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들은 "부적응자"를 무가치한 패자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원시 생활로의 야만적 퇴보로 여겼다. 그러므로 유전주의적 믿음은 산아 제한 문제에 긴급성을 부여하는 "민족 자멸"에 대한 널리 퍼진 두려움을 조장했다. "무지한 자들, 경솔한 자들, 정신박약자들은 다음 세대에 자체의 할당량보다 훨씬 더 많이 기여하고 있다"고 코넬 대학의 프랭크 페터(Frank Fetter)가 경고했다.

 

1883년에 영국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m)이 "더 적절한 인종 또는 혈통들에게 덜 적절한 자들을 빠르게 압도할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인간 혈통의 개선을 이룬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우생학이라는 술어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미합중국에서 우생 "과학"은 골턴과 그의 선도적인 계승자 칼 피어슨(Karl Pearson)에 의해 실천된 수리유전학보다 1866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십구 세기 말까지 인식되지 못한 그레고르 멘델(Gregor Mendel)의 유전자 발견 결과에 더 기대었다. 1904년에 선도적인 미합중국 우생학 진흥자인 찰스 데이븐포트(Charles Davenport)는 새로 설립된 카네기 기업의 자금을 사용하여 롱 아일랜드의 콜드 스프링스 하버에 연구소를 세웠다. 데이븐포트는 "유전에 대한 지식을 사용하여 정신박약자들과 범죄 성향이 있는 자들과 무법자들에 대한 신체 정치를 정화"할 사회학자, 입법자 그리고 생물학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다. 우생학은 주 불임법뿐 아니라 이민 제한과 사회 개혁에 대한 영향력을 통해서 공공 정책에 진입했다. 1907년에 인디애나 주가 최초로 불임법을 통과시켰다. 1920년 말에는 스물네 개의 주가 1920년에 벅(Buck) 대 벨(Bell) 재판에서 미합중국 대법원에 의해 확인된 관행인 심리적 부적응자들의 강제적 불임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미합중국에서 사회적 쟁점에 대한 진화적 및 유전학적 관념들의 적용은 십구 세기 말에 산업화, 도시화 그리고 이민을 동반하는 방대한 변화를 설명하고 다루기 위한 도구로서 견인되었다. 우생학은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둘 다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며, 1924년에 연방 의회에 의해 입법된 국적 기반 이민 할당제로 귀결된, 이민 제한에 대한 필요성을 둘러싸고 새롭게 형성되는 합의의 기반을 이루었다. <<유전자, 세포 그리고 뇌(Genes, Cells, and Brains)>>에서 힐러리 로즈(Hilary Rose)와 스티븐 로즈(Steven Rose)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십 세기 초에, 가톨릭교도를 제외하고, 우생학은 유럽과 미합중국의 대부분 지식인들―인종주의자와 반동가들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개혁가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우생학과 사회다윈주의에서 부적응자들의 재생산에 기여할 공적 구호 및 사적 구호에 대한 반대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아내었다. 그런데 우생학은 산아 제한 옹호자 마가렛 생거(Margaret Sanger)와 이민 노동자 계급의 퇴화 의혹에 사로잡힌 정착지 주택 노동자들도 열광하였다. 몇 십 년 전 메사추세츠 주 구호기관 위원회의 선조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물리적 및 도덕적 퇴화의 생물학적 토대에 대한 믿음과 특질을 형성하고 습관을 주입할 수 있는 사회 개혁의 역능에 대한 신념을 조화시키기 위해 획득 형질의 유전 가능성과 인간 본성의 가소성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1920년대에 환경주의자들과 유전주의자들을 연결하는 다리에 균열이 나타났다. 유전주의자들은 점점 더 강경한 노선을 취하였는데, 그것은 불임에 대한 끊임없는 옹호뿐 아니라 지능 검사라는 새로운 과학에서 명백했다. 프랑스 심리학자 알프레 비네(Alfred Binet)에 의해 개발된 지능 검사는 1880년에 미합중국 심리학자 헨리 H. 고다드(Henry H. Goddard)에 의해 미합중국에 도입되었는데, 정신박약 연구를 위한 새로운 연구소를 이끌고 있던 고다드는 뉴저지 주 바인랜드 소재 정신박약 소년소녀를 위한 교육 학교에서 지능 검사를 최초로 실시하였다. 다른 심리학자들은 지능 검사에 관한 고다드의 연구를 속개하여 다른 개체군들에 확대하였으며, 다른 방법들로 실험했다. 지능에 대한 유전주의적 견해를 옹호한 가장 저명한 인사들 가운데 한 사람인 스탠퍼드 대학의 루이스 터먼(Lewis Terman)은 독일 심리학자 빌리암 슈테른(William Stern)이 1912년에 개발한 개념인 "지능 지수(intelligence quotient)"를 나타내는 술어 "IQ"를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회의주의와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던 지능 검사는 일차 세계대전 동안 엄청나게 고무되었는데, 전쟁 동안 17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 행해진 검사 덕분에 급격하게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 검사는 징집 장병의 거의 사분의 일이 신문을 읽을 수 없거나 집에 편지를 쓸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며, 그리고 함축적으로 보통 백인 미국인들과 흑인 미국인들의 정신 연령이 각각 십삼 세와 십 세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븐포트, 고다드 등은 백인에 대한 결과를 열등한 인종들의 이민 탓이라고 비난하였으며, 그 결과를 이민 제한에 대한 자신들의 옹호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그 검사는 정신박약의 유전 가능성을 예증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1920년대에 이런 관념들이 공교육 내로 진입하여 교사 양성 과정에서 배우는 교육심리학의 기반을 이루었으며, 학생들을 분류하고, 그들의 미래를 예측하며, 불평등한 교육 결과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지능 검사의 대대적인 급증의 근거가 되었다. 역사학자 폴 파스(Paul Fass)는 이렇게 지적한다. "터만과 다른 심리학자들은 사회경제적 하층 집단들의 아이들에게 기회의 길을 개방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그들은 완수할 수 있는 지능 지수를 갖추고 있지 않다―이라고 재빨리 강조했다." 저명한 옹호자들의 정신 속에서는 과학이 환경에 대한 유전의 우위를 예증했으며 열등한 인종들의 이민이 미합중극을 열성의 미래로 향하게 한다는 믿음이 지능 검사와 결합되어 있었다.

 

1920년대 이전에도 우생학자들과 개혁가들 사이의 긴장은 정신 장애와 성격 장애의 유전 가능성을 둘러싼 합의에 있어서 균열을 초래했었다. 우생학자들의 "생식 세포질"에 대한 신념은 진보적 개혁의 기반을 이루는 환경적 및 신라마르크주의적 이론들로부터 그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다음에, 1920년대 이후에, 생화학과 나치의 등장이 결합함으로써 우생학은 쇠퇴하게 되고 평판이 나빠지게 되었다. 연구가 인간 유전학의 복잡성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것을 밝힐수록, 개혁 유전학조차도 더욱 더 옹호할 수 없는 듯 보였다. 미국유전학회는 히틀러의 1933년 불임법을 찬양하였고, 독일 우생학자들은 자신들이 미국 우생학자들에 진 빚을 지적함으로써 그들에게 아부했으며, 나치 체제는 저명한 미국 우생학자들을 환영하고 예우했다.

 

우생학이 몰락함으로써 그 분야는 환경적 설명들에 개방되게 되었다. 자연이 아니라 양육이 범죄, 가난, 비행 그리고 낮은 교육적 성취에 대한 우선적인 설명이 되었다. 환경에 대한 강조는 신흥 시민권 운동에 들어맞았는데, 그 운동은 흑인과 백인 사이의 차이점들에 대한 인종적 또는 생물학적 설명들―노예제, 린치, 격리 그리고 모든 다른 형태의 폭력 및 차별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었던 설명들―을 거부하였다. 또한 유전주의적 설명들은 가난, 질병, 실업 그리고 범죄를 개선하기 위한 지성적 통치 행위 능력을 가정한, 가난에 대한 전쟁과 위대한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낙관주의에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1960년대 말경에 새로운 우생학이 환경적 합의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의 출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우호적인 정부 지원 정책에 대한 백인의 반격과 함께 가난한 아이들, 특히 흑인 아이들의 문화적으로 부족한 가정 생활을 보상하도록 설계된 보충 교육 프로그램들의 실패인 듯 보였던 것에 잇따른 탈주술화와 더불어 동시에 일어났다. <<하버드 에듀케이셔널 리뷰(Harvard Educational Review)>>에 실린 심리학자 아더 R. 젠센(Arther R. Jensen)의 1969년 논문 "IQ와 학업 성취도를 얼마나 많이 향상시킬 수 있는가?"는 유전주의의 부활을 낳았다. "보충 교육이 시도되었고 그것은 명백히 실패했다"고 젠센은 주장했다. "그 이유는 보충 교육 프로그램들은 유전적 벽에 부딪혔다. 가난한 소수인종 아이들은 그것들에서 득을 볼 지능이 결여되어 있다."

 

젠센의 논문은 격렬한 반격을 불러 일으켰다. 그럼에도 그 논쟁은 지능에 대한 유전의 영향에 관한 연구와 글쓰기에 새로운 생명의 숨을 불어 넣었으며 교육자들이 제시하는 실패 이유들로 스며들었다. (나는 1970년 초 어떤 모임에서 토론토 고위 교육 행정가와 함께 앉았던 일이 떠오르는데, 그는 가난한 학생들의 낮은 성취에 관한 토론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젠센이 그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곤충 사회에 관한 선도적인 권위자인 하버드 대학 동물학자 E. O. 윌슨(Wilson)에 의해 창시된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는 유전 가능성에 대한 갱신된 강조를 강화했다. 윌슨은 이렇게 적었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유기체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행태의 생물학적 기초에 관한 연구"에 집중한다. 그런데 유전 가능성에 대한 이런 새로운 강조는 정치적 비판뿐 아니라 강한 과학적 비판도 직면했으며, 인종, 지능 그리고 행태에 대한 유전 기반 이론들과 우생학에 여전히 의존한다는 혐의를 청산하지 못했다.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는 관념은 아무튼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았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함구되었으며 대부분의 학술 집단들에서 수용될 수 없었다.

 

1994년에 널리 대중화되고 논의된 <<벨 커브(Bell Curve)>>에서 리처드 헤른슈타인(Richard Hernstein)과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그의 악명높은 <<근거 상실(Losing Ground)>>은 반(反)복지국가 정치인들을 위한 바이블로 활용되었었다―는 지능에 대한 지배적인 환경주의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사회에서 성공은 점점 더 물려받은 유전자들의 문제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사실상 지능은 가난, 범죄, 혼외 출산 그리고 낮은 교육적 성취 같은 국가의 "가장 긴급한 사회 문제들"과 많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적었다. "낮은 지능이 낮은 사회경제적 배경보다 더 강한 가난의 전조이다." 가난은 그것 자체가 대체로 물려받은 "낮은 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에서 흑인이 더 낮은 인지 능력을 나타낸다고 그들은 발견했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인종주의적 기미를 풍겼다. 정신 능력의 고정된 물려받은 지표인 "g 또는 일반 지능"을 측정하는 "시험에서 흑인과 백인은 많이 다르기" 때문에 증거는 "인종 간의 인지적 차이점들의 유전적 인자"를 가리킨다.

 

<<벨 커브>>에 대한 강력한 폭약인 <<설계에 의한 불평등(Inequality by Design)>>에서 클로드 피셔(Claude Fischer)와 그의 동료들은 머레이와 헤른슈타인이 그들의 주요한 원천들을 오용했다는 점을 증명하는데, 그래서 그들의 경험적 결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게 되었으며 그들의 주된 논변은 휘청거리게 되었다. 그런데, 공공 매체와 학자들에 의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800쪽이 넘는 <<벨 커브>>의 양장본이 수십 만 권이나 팔렸다. <<벨 커브>>는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지식사회학의 일화로서 가장 잘 이해된다. 명백히, 감히 거명하지는 못하곤 했지만, 유전이 "하층 계급"의 성장 및 지속과 교육 성취에 있어서 흑백 간극의 근거가 된다는 의심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이런 의심은 파이오니어 기금(Pioneer Fund) 같은 몇몇 재단들과 학자 소집단에 의해 조장되었는데, 파이오니어 기금은 "행동유전학, 신경과학, 진화심리학 그리고 사회생물학이라는 더 새로운 분과학문들을 강화할 뿐 아니라, 인류학, 심리학 그리고 사회학 같은 전통적인 주류 분야들에 다윈주의적-골턴주의적 시각을 회복시킴으로써 사회과학과 행동과학의 면모를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부터 줄곧 다량의 새로운 과학기술이 생물학과 사회 사이의 연결 근거가 되는 메커니즘들을 탐구하는 도구들을 제공했으며, 유전 생명과학 산업(인간 유전체 계획), 줄기 세포 연구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신경과학의 놀라운 성장을 강화했다.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이렇게 지적한다. 교사들은 "매년 다양한 신경 넌센스를 조장하는 메일을 칠십 개까지 받는다고 보고한다.... 사기꾼 기업가들은" 의사들이 입수할 수 있는 도구들과 "임상 시험에 의해 제공되는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교사들에게 열심히 판매하고 있다."

 

놀랍도록 급속하게 신경과학, 진화심리학, 유전체학 그리고 후성유전학이 중요한 과학 분야―사실상 흔히 같은 프로그램들 내에서 조합된 채―로 대두되었다. 신경과학과 다른 생물학의 진전은 범죄 같은 사회적 현상과 심혈관 질환의 흑백 간극, 당뇨병의 증가, 비만 상승 그리고 암 관련 질환의 원인 및 치료  같은 의학적 쟁점들에 대한 새로운 설명 방식들을 약속했다. 또한 그것들은 뇌가 노화되는 방식과 알츠하이머 병과 치매가 완화되거나 지연될 수 있는 방식을 이해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 역시 어린 시절 가난과 관련된 환경적 스트레스들이 개인의 삶 전체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그리고 일부 과학자들이 믿고 있듯이, 후천적 결함들의 유전을 통해서 이어지게 되는 심리적 기능 및 학습 능력의 측면들을 손상시킬 수 있는 방식에 집중한다.

 

2010년 1월 18일자 표지 기사에서 <<타임>>은 이렇게 공표했다. "후성유전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여러분의 환경과 여러분의 선택이 여러분의 유전 암호―그리고 여러분의 자식들의 유전 암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후성유전학은 "유전 암호의 교체를 포함하지 않지만 여전히 최소한 한 세대로 승계될 수 있는 유전 활성의 변화들에 관한 연구이다"라고 그 기사는 설명했다. "이런 유전자 표현 유형들은 유전체의 바로 밖, 그것의 꼭대기에 놓여 있는 세포 물질―후성유전체―의 지배를 받는다... 여러분의 유전자가 스위치를 올리거나 아니면 내리게 하는 것, 시끄럽게 말하거나 아니면 속삭이게 하는 것은 이런 '후성유전학적' 표식들이다. 유전자에 각인될 수 있는 식습관, 스트레스 그리고 출생 전 타고난 영양 상태 같은 환경적 인자들은 바로 후성유전학적 표식들을 통해서" 세대를 거쳐 전달된다. 더 냉정하게, 저명한 아동정신병학자 마이클 러터(Michal Rutter) 경은 이렇게 정의했다. "'후성유전학'이라는 술어는 유전자 서열을 바꾸지 않은 채 (유전자 표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유전자 효과를 변화시키는 메커니즘들에 적용된다." 힐러리 로즈와 스티븐 로즈는 이렇게 보고한다. "후성유전학적 연구들은 신호 분자―때때로 단백질이고, 때때로 작은 분자이고, 어떤 것은 각 세포에 의해 내부적으로 생성되며, 어떤 것은 발달 중인 태아의 다른 영역들에서 확산한다―가 일련의 발달 과정의 적절한 순간에 특수한 단백질이 합성되는 것을 보장하도록 특수한 일련의 DNA를 켜거나 끄는 스위치로 작동하는 조절 과정들의 현란한 집합체를 밝히고 있다." 이런 스위치들의 작동 시점의 변화 때문에 성체 표현형이 크게 변할 수 있는데, 이것은 진화가 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낸다. 유전자들은 더 이상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이 묻어 들어가 있는 환경의 다양한 층위에서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후성유전학에 관한 학술 연구와 대중적 글쓰기의 범람은 과학저술가 네사 캐리(Nessa Carey)가 자신의 책 제목을 <<후성유전학 혁명(The Epigenetics Revolution)>>이라고 붙인 것을 정당화한다. 부분적으로는, 다시 한 번 과학적 진전이 주요한 난제―교육자들을 괴롭힌 흑인과 백인 사이의 지속적인 "성취 간극"―에 부합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후성유전학을 수용했다. 많은 문헌이 다양한 원천을 제시하였는데, 그것들 대부분은 이런저런 식으로 가난하게 성장한 것과 연관된 장애에 집중했고 유전적 설명들의 옹호자들은 배경에 숨어 있었다. 환경주의자들이 결여하고 있었던 것은 가난이라는 환경이 낮은 학업 성취로 어떻게 전환되는지 정확히 설명하는 메커니즘이었다. 이것이 후성유전학이 제공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범죄성과 거의 모든 다른 행태의 원천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환경주의자와 유전주의자 사이의 신랄한 차이점들을 분석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후성유전학의 숨 가쁜 수용은 현존하는 후성유전학적 지식의 한계점들과 획득 형질의 유전 가능성에 대한 증거에 앞서 이루어졌다. 후성유전학 열광자인 캐리조차도 구체적으로 신경후성유전학에 관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때때로 신경후성유전학이라고 불리는 이 영역 전체는 후성유전학적 연구 전체에서 과학적으로 가장 논란이 많은 분야일 것이다." 사실상, 그 분야에서 작업하고 있는 진지한 과학자들이 쉽게 인정하듯이, 어린이, 가난 그리고 생물학 사이의 연결은 엄청나게 복잡하고 부분적으로만 이해된 상태이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James Heckman)에 따르면, 환경이 유전자 표현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관한 후성유전학적 연구의 의미는 그것이 "초기 인적 자본 문헌에서 다루어진 능력과 후천적 솜씨 사이의 날카로운 구분은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행태와 능력은 유전적 특질과 후천적 특질 둘 다를 지니고 있다. 측정된 능력은 자궁 내 경험을 비롯한 환경적 영향의 결과물이면서, 유전적 성분도 존재한다." 헤크먼의 경우에, 성인 결과물을 설명하는 열여덟 살 시절의 간극들 대부분은 다섯 살쯤에 존재한다. 함축된 명백한 의미는, 혜택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점에는 그들의 결함을 개선하거나 그들을 빈곤에서 헤어나는 길에 올려놓기에 너무 늦은 시기라는 것이다.

 

다른 신경과학자들은 그렇게 확신하지는 않는다. 뇌의 핵심 영역들, 특히 기억과 집행 기능을 제어하는 영역들의 크기에 대한 어린 시절 초기 결함의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만, 그들은 사춘기에 걸쳐 그리고 아마도 노년 시절에도 변화가 가능할 정도로 뇌 발달이 더 많은 가소성을 나타낸다고 간주한다. 러터는 이렇게 지적한다. "나이가 듦에 따라 가소성이 감소하지만 뇌는 본질적으로 성인의 삶까지 줄곧 가소성이 있다는 점은 이제 명백하다. 민감한 시기는 한때 여겨진 대로 고정되고 변경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그런 시기는 약리학적으로 연장될 수 있다....게다가 가소성은 맹렬한 확장 훈련으로 향상될 수 있다."

 

후성유전학은, 사회다윈주의 이전 1860년대 말에 번성했으며 그 후 1920년대에 분열되기 전 진보 시대에 또 다시 번성했던 개혁과 유전주의의 화해를 촉진하여 부활시켰다. 후성유전학은 성취 간극, 지속적인 가난, 범죄 그리고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한 유전 기반 설명들과 환경을 강조하는 설명들 사이의 오래 지속된 전쟁을 넘어서 나아갈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난한 아이들의 조기 교육과 그들의 삶에 대한 다른 개입책들에 대한 과학적 비준을 제공한다. 이전에 과학을 증거로 삼은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매체 해설에 의해 육성된 대중의 이해는 증거의 한계점들과 과학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자격 부여에 선행할 우려가 있다.

 

여기에 위험이 놓여 있다. 과거에 유전주의와 개혁 사이의 연결이 불안정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그것이 끊어졌을 때 결과는 추악했다. 그 연결이 인종주의적으로 물든 이민 개혁과 강제 불임을 지지했을 때에도 모든 것은 최고 "과학"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사실상, 인종, 성별 그리고 국적에 기반을 둔 차별과 폭력의 모든 체제는 당대의 최고 "과학"에 근거를 두었다. 법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도로시 로버츠(Dorothy Roberts)는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점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이 자신들의 인종 사용은 순전히 생물학적이라고 강하게 주장할 때이다." 철학자 제시 J. 프린츠(Jesse J. Prinz)는 이렇게 경고한다. "인간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때 우리는 상이한 태도와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변경 불가능하게 상이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또한 우리는 차이점을 병리적인 것으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후성유전학과 보수적 대중영합주의자에 의해 활용되는 인간 행태에 대한 다른 생물학 기반 이론들이 자격 없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가혹한 새로운 견해와 그들을 돕고자 하는 정책들의 무익함을 보증한다고 추측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 아니다. 이것은 그 분야 과학자들의 목적이나 근본적인 의제가 아니며, 또는 연구를 제한하려고 시도할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과학의 활용에 대한 역사로부터의 주의 깊은 지적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