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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 인터뷰-물리학의 형이상학적 짐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짐

The Metaphysical Baggage of Physics

 

리 스몰린(Lee Smolin), 물리 법칙보다 시간이 더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다.

 

―― 마이클 시걸(Michael Segal)

 

시간에 관하여 생각한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모든 이야기는 물리학의 법칙들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원리들을 고유하게 말해주는 끈 이론의 실패에 대하여 제가 당황하고 있었던 1980년대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자연이 물리학의 법칙들이 무엇으로 판명될지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저는 명시적인 예측들을 제시하는, 시험 가능한 우주론적 자연 선택(Cosmological Natural Selection)이라는 가설을 고안했습니다. 이것은 제 주된 본업이 아니었습니다. 제 주된 본업은, 시간은 비실재적이라고, 시간은 환영이라고 가정되는 양자중력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저는 여타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 대부분의 경력 동안 시간은 환영이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우주론적 자연 선택의 표징들을 이해하는 데에는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대략 20년이나 25년 걸렸습니다.

 

우주론적 자연 선택 가설은 자연 법칙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고 시사합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어떤 체계가 왜 저런 식이 아니라 이런 식인지에 대해서는 두 종류의 설명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그렇게 만드는 어떤 근본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제 세대는 상대성과 양자역학의 원리들을 충족시킬 고유한 일단의 법칙들을 발견하도록 양육되었습니다. 우리는 고유한 해답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자연의 원리들에 양립할 수 있는 상이한 법칙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과학에서 시험 가능한 가설들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상황이 설명될 수 있는 유일한 다른 방식은 세계를 그런 식으로 출현하게 만드는, 시간 속에서 작동하는 어떤 동역학적 과정이 존재하는지 여부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시간 이해에 대해 무엇을 의미합니까?

 

물리학의 표준 견해는, 시간은 근본적이지 않으며, 시간은 법칙들의 작용으로부터 환영으로서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칙들의 진화한다면, 그것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더 근본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법칙들이 변할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시간은 실재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으로 거의 간주합니다. 아인슈타인과 다른 사람들이 시간은 환영이라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제시하는 논변들은 자연 법칙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합니다. 그것들이 변한다면, 시간은 환영이라는 주장도 깨집니다. 그것은 자연 법칙들보다 시간이 더 근본적이라는 점을 의미합니다.

 

뉴턴이 혁명적이었던 까닭은 부분적으로는 그가 우주 전체에 영속하는 일단의 법칙들을 적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까?

 

물리학은 공교롭게도 매우 종교적인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뉴턴이 일례입니다. 그에게 자연 법칙들과 그것들의 수학적 표현들은 신의 생각을 아는 것과 동의어였습니다. 공간은 신의 감각기였으며, 참된 시간은 신이 세계를 경험하고 세계 속에 사물들을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뉴턴의 물리학 작업 스타일은 우주의 작은 부분, 예컨대 실험실에서 진행 중인 것에 적용될 때에는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그런데 뉴턴의 물리학 작업 스타일을 취하여 그것을 우주 전체에 적용할 때에는 실험실에서 상황이 일어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실험실 외부에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 내부에서 상황이 일어나게 만드는 무언가가 우주 외부에 존재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게 됩니다. 내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일은, 아무런 종교적 신앙이나 신념도 지니고 있지 않은 물리학자들까지도 종교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설명 형식에 흡수당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교적 토대란 완전한 설명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우주 외부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가리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자칭 무신론자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이런 일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 때문에 그들은 우주론에 관해 부주의한 사유를 전개하게 됩니다. 과학을 우주 전체로 확대하는 경우에는 과학을 실험실 체계에 적용할 때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우주가 다른 우주들의 영향을 받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과학은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과학은 공개적으로 입수 가능한 증거를 통해서 무엇이 맞는지 예증할 수 있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맞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무한히 많이 존재합니다. 다른 우주들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수학적 객체들이 영원히 움직이는 플라톤적 영역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신과 천국과 천사들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은 그런 것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과학 안에서 우주 전체를 설명하고 싶다면, 우주 자체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들로 법칙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과학의 진정한 정신에 진실한 우주론에 대한 유일한 열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발매 기념 투어에서 당신은 이 관념의 로큰롤 판본과 관련된 이야기를 즐겨 말합니다.

 

일곱 살짜리 제 딸은 때때로 잠들기 위해 <데이 마이트 비 자이언츠>라는 밴드의 이 CD를 듣습니다. 그들은 뉴욕의 로큰롤 밴드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부릅니다. "저는 그 이야기들이 좋아요 / 천사, 일각수 그리고 요정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 이제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좋아요 /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많이 좋아요 / 그런데 제가 지식을 추구하고 있을 때 / 단순한 지식이든 추상적 지식이든 / 사실들은 과학과 함께 있어요." 계속해서 그들은 꽤 유효한 과학철학을 상술하는 운문을 이어갑니다. 저는 이 노래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스펙트럼 상에서 우주론 공동체는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쟁점들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제가 생각하는 까닭은, 우주론자 짐 하틀(Jim Hartle)이 우리 사유를 감염시키는 형이상학적 짐이라고 부르곤 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 매우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제의 뿌리가 신비주의, 종교, 철학 그리고 물리학이 모두 뒤섞여 있었던 시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주론 공동체가 사변에 취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우주론자들은 결국 우주는 실제로 수학이라고 하는 환상들과 관련하여 사변을 전개합니다. 그런 것들은 결코 시험할 수 없으며, 그것들은 형이상학적 환상입니다. 저는 그들이 뉴턴이 물리학에 부과했던 형이상학적 구조를 향해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실재적이고 근본적이라면, 일반 상대성이 우주 전체에 대해 동시화된 보편 시계를 금지하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동시성의 상대성을 가정하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훌륭한 논변들이 존재하는데,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Hiliary Putnum)에서 유래합니다. 제 견해가 정합적이기 위해서는 이 원리와 관련하여 불완전한 것이 존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저는 오랫동안 물러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역설적이지만, 형태 동역학이라고 불리는, 줄리언 바버(Julian Barbour) 자신에 의해 개시된 발전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에 걸친 연구 후에 그와 몇몇 공동연구자들은 일반 상대성과 거의 동일한 중력 이론에 대한 형식을 고안했는데, 이것은 크기가 상대적이라는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객체의 크기를 절대적인 견지에서 비교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에 페리미터 연구소의 젊은 세 물리학자 션 그립, 팀 코스로우스키 그리고 헨리크 고메즈가 시간이 아니라 크기가 상대적인, 그래서 절대적인 전체적 시간 감각이 존재하는 형태 동역학으로 불리는 일반 상대성의 한 판본을 만들어냄으로써 아름답게 완결합니다. 제게 그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제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객관적 구분으로 이어지는 전체적 동시성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고 논증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형태 동역학이 고안된 덕분입니다.

 

당신의 이론은 시간의 화살에 대한 기원을 제시합니까?

 

물리학에서 상황은 그저 법칙들만이 아니라 초기 상태와 함께 설명됩니다. 체계는 어떤 초기 상태에서 시작한 후에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시간에 따라 진화합니다. 우주론의 거대한 불가사의들 가운데 하나는 우주가 개시된지 수십억 년이 지났는데도 왜 열적 평형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지입니다. 표준적 사유에 따르면, 우주가 특별히 비개연적인 초기 상태에서 개시된 탓이라고 여깁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체계들이 덜 개연적인 상태에서 더 개연적인 상태로 진화한다고 말합니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화살은 더 개연적인 상태들로 진화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실재적인 것이 아니라 근사적 서술로서 출현할 뿐이라면, 미래가 왜 과거와 다른지, 우리는 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미래는 왜 과거에 우리가 행했던 일들로 변할 수 있는 듯 보이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초기 상태가 그저 우연한 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 역시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실재적이라면, 이런 것들은 그저 자연 법칙들 속에 쓰여질 수 있습니다. 초기 조건을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많이 확대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덧붙여, 형태 동역학과 중력은 체계들이 어떻게 평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것은 시간의 화살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할 것이 더 적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최근에 출판된 책 <<다시 태어난 시간(Time Reborn)>>에서 당신은 이런 관념들 가운데 일부에 대해 적었습니다.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그것은 제가 예상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물리학에 기반을 둔 논변이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그 논변을 이해할 것이고 철학자들은 그것에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정반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철학자들은 정말로 그것을 파악했습니다. 그 쟁점을 이해하고 그 책이 제시하는 논변들을 이해하는 철학자들이 그 책을 논의하기 위해 조직한 토론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정말로 그것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과 관련하여 제가 기분이 언짢은 까닭은 그것이 제가 실제로 속해 있는 공동체이고 저는 물리학자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신은 마음의 철학에 근거하여 시간의 실재성을 옹호하는 논변을 제시합니다. 그것에 대해 서술해 주시겠습니까?

 

그것은 경험의 감각질은 자연적 장소가 있다는 일종의 자연주의, 즉 철학자 갈렌 스트로슨과 데이비드 차머스가 그것을 위해 논증할 방식을 필요로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연주의자이기를 바라고, 그들은 단일한 물리적 우주가 존재한다고 믿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은 감각질은 환영이라고 하는 대니얼 데닛 같은 사람들의 논변들을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적색에 대한 경험이 어떠한지 알고 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명확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자연 세계와 관련하여 참인 것이기를 바랍니다. "시간적 자연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저는, 감각질이 자연 세계의 일부이기 위해서는 관계적인 것이 아닌, 그 세계의 고유한 성질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간에 대한 당신의 시각이 당신 삶의 다른 부분들에 영향을 미쳤습니까?

 

그것은 제 개인적 삶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다시 태어난 시간>>을 쓰고 있을 때 저는 풋내기 어버이였습니다. 그리고 어버이 역할은 확실히 생명이라는 기적뿐 아니라 시간과 삶, 그리고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많은 성찰로 이어집니다. 시간이 실재적인지 아니면 환영인지, 세계 속에 영원하거나 영속적인 것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모든 것은 변화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런 일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영향을 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