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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존스턴: 유물론에 관한 11가지 테제-두번째 테제

 

II

비경험적 철학(선험적 사유로서)과 경험적 탐구 영역들(후험적 앎으로서) 사이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천 년이 넘는 역사는 이 관계에서 근본적인 불균등성이 지배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사유와 앎의 다양한 육화의 역사적 전개는 경험적인 것과 비경험적인 것 사이의 구별짓기는 대체로 (헤겔적 형식으로 서술하면) 경험적인 것 자체에 내재적인 구별짓기라는 점을 드러내었다. 최소한 일반적인 합의에 의해, 고대 그리스에서 계몽주의 시대 유럽까지 역사에 걸쳐 흩어져 있는, 초월적인 존재론적 실재들 자체에 대한 특권적인 형이상학적 통찰을 얻고자 하는 수많은 노력은 항상 본질적으로 헛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칸트가 제시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전에 모든 고전 형이상학이 헛된 노력이라고 영원히 선고하는 변증법적 교착 상태를 드러내는 <<순수이성 비판>>의 "선험적 변증법"은 이천 년 동안의 철학사가 제공하는 증거로부터 자체의 비판적 논리를 추출한다.

 

마찬가지로, 칸트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었던 이백 년 이상의 가치가 있는 증거는 경험적 층위들에서의 발달이 경험적 설명 관할 구역과 비경험적 설명 관할 구역 사이를 구별짓는 바로 그 경계선을 재설정하도록 강요하는 패턴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 대단히 다양한 힘과 인자들이 기여했지만―인간 지식의 역사는 간단히 인간사의 엄청나게 풍성한 태피스트리에서 분리할 수 없다―십칠 세기 초에 베이컨과 갈릴레오에서 비롯된 근대과학의 탄생은 다른 방법들과 탐구 분야들과 맺은 관계들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서 철학을 변형시키는 유력한 새로운 가속제가 되었다. 후험적 실험 과학들은, 이전에는 철학자들만이 제기하고 해결하는 선험적인 이론적 쟁점인 것처럼 보였던 의문과 문제들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 주장을 더욱 더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이런 경험적 발달들 가운데 많은 것이 대체로 철학과 철학사에서 갈라져 나온 것(즉, 처음에는 철학 내부의 문제였던 것들이 나중에 철학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분야들이 된다)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앞의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은 철학을 과학들의 여왕으로 간주하는 과도한 오만의 고지에서 과학들의 시녀로 간주하는 마찬가지로 과도한 겸손의 심연까지 강등시키는 개탄스러운 과학주의적 행태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경험적인 것이 그것 자체와 비경험적인 것 사이의 경계선을 설정하고 재설정하는 데 있어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역사적으로 자명한 블균등성을 인식하고 그것과 화해하는 것은 철학의 권리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그런 설정과 재설정이 어쨌든 그것 자체가 결코 순전히 경험적이지 않은 경험적인 것의 쪽에서만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결정되고, 결정될 수 있으며, 또는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철학은 여전히 자체의 양도할 수 없는 의무를 행사하도록 요청받는다. 철학은 과학들의 배후에 놓여 있는 경험적인 것을 넘어서는 전제들을 비판적으로 가정하고 평가한다. 철학은 과학들 사이에 벌어지는 논의들을 촉진하고 부분적으로 구성한다. 그리고 철학은 관련된 모든 분과학문들에 이익이 되도록 철학과 과학들 사이의 현재 상호작용 상태들로부터 현재를 넘어서는 외삽적 상태들을 탐구한다. 경험적인 것과 비경험적인 것 사이의 다중적 관계들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절한 변증법적인 사변적 감성들(또는 레닌주의적 술어로, 구체적 상황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진행 중인 협상들에 개방된 채로 있다.

 

―― 애드리언 존스턴(Adrian John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