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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 오늘의 인용-헛된 최종 이론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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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내가 환원주의에 대해 낮은 평가를 내린다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 내게 환원주의는 기껏해야 부적절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과학이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한 서술로서 오도될 소지가 있는 듯 보인다. 순수 수학으로 시작하자. 환원주의의 실패가 엄밀한 증명에 의해 예증된 적이 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야기일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는 수학의 최전선에서 삼십 년 동안 대단히 창의적인 성취를 이룬 후에 환원주의의 막다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말년에 그는, 유한한 기호들의 체계와 일단의 유한한 공리들과 추론 규칙들을 사용하여 수학 전체를 형식적 진술들의 모음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형식화 프로그램을 신봉했다. 이것은 최대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환원주의인데, 그것은 수학을 종이 위에 쓰여진 일단의 부호들로 환원시키고, 그 부호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념과 응용들의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그 다음에 힐베르트는 수학적 기호들로 구성된 그 어떤 형식적 진술에 대해서도 그 진술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과정을 발견함으로써 수학 문제들을 풀자고 제안했다. 그는 이 결정 과정을 발견하는 문제를 결정 문제(Entscheidungsproblem)이라고 불렀다. 그는 결정 문제를 풀고, 그래서 모든 유명한 미해결 수학 문제들을 따름정리로서 해결하는 꿈을 꾸었다. 이것은 그의 평생의 더 없는 업적, 한 번에 하나씩만 문제들을 해결한 이전 수학자들의 모든 업적보다 훌륭한 업적이 될 것이었다.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의 핵심은 그것들의 의미에 대한 그 어떤 이해도 요구하지 않은 채 순전히 기계적인 형식으로 기호들에 대해 작동할 결정 과정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수학이 종이 위 부호들의 모음으로 환원되기 때문에, 결정 과정은 부호들로 환원되는 틀리기 쉬운 인간의 직관이 아니라 오로지 부호들과 관련되어야 한다. 힐베르트와 그의 제자들의 장기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정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성공은 대단히 한정된 수학 영역들에서만 이루어졌으며, 더 심층적이고 더 흥미로운 모든 개념들을 배제했다. 힐베르트는 결고 희망을 접지 않았지만, 세월이 감에 따라 그의 프로그램은 실제 수학과 거의 아무 관련도 없는 형식 논리학의 작업이 되었다. 마침내, 힐베르트가 칠십 세가 되었을 때, 쿠르트 괴델(Kurt Godel)은 뛰어난 분석으로 힐베르트가 형식화한 대로의 결정 문제(Entscheidungsproblem)는 풀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괴델은 보통 산술 규칙들을 비롯한 수학의 그 어떤 형식에서도 진술들을 참과 거짓으로 나누기 위한 형식적 과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 그는 현재 괴델의 정리로 알려져 있는 더 강한 결과를 증명했는데, 그 정리에 따르면 보통 산술 규칙들을 비롯한 수학의 그 어떤 형식에서도 참 또는 거짓으로 판명될 수 없는 유의미한 산술적 진술들이 존재한다. 괴델의 정리는 순수 수학에서 환원주의가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 어떤 수학적 진술이 참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그 진술을 종이 위의 부호들로 환원하여 그것들의 행태를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사소한 경우들을 제외하면, 어떤 진술의 진리성은 오로지 더 거대한 수학적 관념들의 세계에서 그것의 의미와 맥락을 연구함으로써 결정할 수 있다.

 

과학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창의적인 정신들 가운데 몇몇이 자신의 속박되지 않은 상상력을 좇아서 중요한 발견들을 이룬 후 만년에 이르러 환원주의 철학에 사로잡혀 결국 보잘것없게 되어버린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힐베르트가 이 역설의 주요한 사례이다. 아인슈타인이 또 하나의 주요한 사례이다. 힐베르트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은 사십 세에 이르기까지는 아무런 환원주의적 편견도 없이 위대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눈부신 성취, 즉 중력에 대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자연 과정들에 대한 심원한 물리학적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중력을 이해하기 위해 십 년 동안이나 노력하고서야 그는 자신의 이해 결과를 유한한 일련의 장 방정식으로 환원하였다. 그런데 힐베르트와 마찬가지로,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방정식들의 형식적 특성에 더욱 더 주의를 집중하였고, 그래서 그 방정식들이 비롯된 더 광대한 관념들의 우주에 대한 흥미를 상실했다.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이십 년은, 통일 이론이라면 무엇이든 최종적으로 설명해야 할 실험적 발견들의 빠른 증식에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은 채, 물리학 전체를 통일할 일련의 방정식을 찾고자 하는 무익한 탐색에 소모되었다. 물리학을 종이 위의 유한한 일련의 부호로 환원시키고자 한 아인슈타인의 외로운 시도에 대한 잘 알려진 비극적 이야기에 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아인슈타인의 시도는 수학과 관련하여 동일한 작업을 행하고자 한 힐베르트의 시도만큼이나 참담하게 실패했다. 대신에 나는 아인슈타인의 만년의 다른 한 측면, 통일장 방정식에 대한 탐구보다 덜 주목 받은 한 측면, 즉 블랙홀이라는 관념에 대한 그의 특별한 적대감을 논의할 것이다.

 

블랙홀이라는 관념은 1939년에 J. 로버트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와 하틀랜드 스나이더(Hartland Snyder)에 의해 고안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시작하여 오펜하이머와 스나이더는 무거운 항성이 자체의 핵 에너지를 소진해버릴 때 일어나는 일을 서술하는 아인슈타인 방정식들의 해들을 발견했다. 그 항성은 중력에 의해 붕괴되어 가시적인 우주에서 사라지고, 그것의 존재를 나타내는 강렬한 중력장만 남긴다. 그 항성은 여전히 항구적인 자유 낙하 상태에 놓이게 되고, 그래서 바닥에 결코 닿지 못한 채로 중력 구덩이 속으로 끝없이 붕괴한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들에 대한 이 해는 대단히 참신했다. 그것은 나중에 천체물리학의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재 우리는 질량이 태양 질량의 수 배에서 수십 억 배에 이르는 블랙홀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우주의 경제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블랙홀은 일반 상대성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흥미롭고 가장 중요한 결과이다. 블랙홀은 일반 상대성이 결정적인 우주의 장소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두뇌의 소산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블랙홀이라는 관념에 대해 그저 회의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적대적이었다. 그는 블랙홀이라는 해가 관찰에 의해 시험받아야 할 결과가 아니라, 더 나은 수학적 형식으로 자신의 이론에서 제거되어야 할 오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개념으로서든지 물리적 가능성으로서든지 간에 블랙홀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결코 표현하지 않았다. 충분히 기묘하게도, 회고해 보면 블랙홀이 그가 과학에 기여한 가장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 역시 만년에 이르러 블랙홀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나이든 아인슈타인과 나이든 오펜하이머는 블랙홀의 수학적 아름다움에 맹목적이었고, 그래서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이런 맹목성과 이런 무관심이 어떻게 일어났는가? 나는 이 문제를 아인슈타인과 직접 논의한 적은 결코 없지만, 오펜하이머와는 여러 번 논의했으며, 오펜하이머의 대답이 아인슈타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믿고 있다. 만년에 오펜하이머는 진지한 이론물리학자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는 유일한 문제는 물리학의 근본적인 방정식들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확실히 아인슈타인도 같은 식으로 느꼈다. 올바른 방정식들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 전부였다. 일단 올바른 방정식들을 찾아내면, 그 방정식들의 특수한 해들에 대한 연구는 이류 물리학자들이나 대학원생들을 위한 평범한 작업일 것이다. 오펜하이머의 견해에 따르면, 특수한 해들의 세부 내용에 관여하는 것은 그의 소중한 시간 또는 나의 소중한 시간를 낭비하는 짓이었다. 이런 식으로 환원주의라는 철학이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을 길을 잃게 만들었다. 물리학의 유일한 목적은 물리적 현상 세계를 유한한 일련의 근본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블랙홀 같은 특수한 해들에 대한 연구는 일반 목적에서 벗어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탈이었다. 힐베르트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한 번에 하나씩 특수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기본적인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는 꿈에 넋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만년에 결코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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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반란자로서의 과학자(The Scientist as Rebel)>>(2006), pp. 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