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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오늘의 인용-소환 경험으로서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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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레비나스의 저작을 읽기 시작한 것은 석사논문에서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의 문학이론에 대해 쓰던 1975년 무렵이다. 프랑수아즈 콜랭Francoise Collin의 연구서에 '블랑쇼의 특이한 몇 가지 고상考想은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그것과 공명하고 있다'는 기술을 읽은 것이 레비나스의 이름을 본 아마도 최초의 일이었다. 나는 솔직히 블랑쇼의 '특이한 고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막막했기에 이 정보에 뛰어들었다. 철학자라면 블랑쇼가 그만큼 알기 어렵게 쓰는 것을 좀 더 명석한 말로 부연paraphrase해 주리라고 기대한 것이다.(물론 이 기대는 완전히 잘못이었다).

 

곧바로 카탈로그를 뒤져 그 이름도 모를 철학자의 저작을 서너 권 무작위로 골라 프랑스의 서점에 주문했다. 2개월 정도 되어 책이 왔고, 나는 『Dificile Liberte(곤란한 자유)』라는 제목의 장정이 아름다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논문 「윤리와 정신」을 읽기 시작하고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정신의 운동에 자신이 말려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 난해한 프랑스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텍스트를 통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철학자가 곧바로 '나를 향해' 말을 건다고 느꼈던 것이다. 레비나스 자신의 말로 하자면, 나는 뜻하지 않게 '뭔가 알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환명령을 받아든'[...] 것이다. 갑자기 책의 저편에서 '거기, 자네. 잠깐 이쪽으로 좀 오지'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나는 그제껏 몇몇 철학자의 텍스트를 얼마간 집중적으로 읽어 왔다. 그리고 샤르트르나 메를로-퐁티나 레비-스트로스의 문구 안에서 종종 멋지고 훌륭한 지성을 느꼈다. 그러나 철학서 안의 말이 곧바로 '나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었다.

 

어떤 텍스트의 의미내용을 '이해한다'는 것과, 텍스트를 통해 들어본 적 없는 사고가 '말을 걸어온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경험이라는 것을 나는 레비나스의 문장으로 처음 알았다.

[...]

나는 레비나스의 사상 내용을 음미할 틈도 없이 레비나스의 사상을 먼저 호흡하고 말았다. 레비나스의 '이해를 초월한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장 자신을 향해온다'고 하는 경험에 뒤흔들리는 식으로, 나는 검증할 틈도 없이 레비나스 사상의 증인이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버린 것이다.

[...]

'도대체 이 사람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세상에는 '난해하지만 몰라도 별 상관없는' 종류의 난해함과, '난해하지만 시급히 어떻게 하고 싶어지는' 종류의 난해함이 있다. 레비나스의 난해함은 후자이다. 나는 레비나스를 '시급히 어떻게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텍스트를 한 마디 한 마디 음미하면서 정독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법은 번역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곤란한 자유』를 번역하기로 했다. 그 다음 『탈무드 4강화』를 비롯, 눈에 드는 차례대로 번역해 나갔다. 그래도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나 '살인'이나 '윤리'가 철학적 개념인지, 살아 있는 인간과 관련된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도 번역을 거듭해가는 사이에, 레비나스의 사상은 정보나 지식으로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그것을 실제로 '사는' 것 같다는 확신이 점점 내 안에서 강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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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치다 타츠루(內田 樹),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이수정 옮김, 갈라파고스, 2013), pp. 4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