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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 오늘의 인용-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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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어디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당통에 대해서는 꼬씨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는 루이 블랑이, 1793~1795년의 산악당에 대해서는 1848~1851년의 산악당이 그러하며, 삼촌에 대해서는 조카가 그러하다. 그리고 같은 모습이 브뤼메르 18일의 재판再版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형성해가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환경 아래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어지고 넘겨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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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부터 1851년의 시기에는 자신을 늙은 바이어로 가장한, 노란 장갑을 낀 공화주의자 마라스트로부터 평범함에 더해 거부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자신의 모습을 나폴레옹의 철제 데드마스크 아래 감춘 한 명의 모험가에 이르기까지 오직 구 혁명의 유령만이 배회했다. 혁명을 통해 스스로에게 가속화된 동력을 부여했다고 상상했던 전체 인민은 갑자기 이미 사라져버린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퇴보에 대한 어떤 의혹도 불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옛 시절이 다시 도래하기 시작했으며, 오랫동안 골동품 연구가의 박식함의 주제로만 남아 있던 과거의 연대기들과 여러 명칭, 그리고 법령, 또한 이미 오래 전에 썩어 없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법률의 압잡이들이 마찬가지로 다시 소생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고대 파라오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에티오피아의 광산에서 금을 캐느라 해야 했던 고된 노동에 대해 날마다 탄식하는 환상에 젖어 있는 런던 정신병원의 미치광이 영국인 같은 느낌을 갖는다. [...] "고대의 파라오에게 금을 만들어주려고 자유롭게 태어난 영국인인 내가 이 고생을 하다니!"라고 그 미치광이 영국인은 한숨지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보나파르트 가문이 진 빚을 갚기 위해 우리가 이런 고역을 치르다니"라고 비통해 한다. 그 영국인은 그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도 금을 캐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제거할 수 없었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의 혁명에 관여하고 있는 한 12월 10일의 선거가 증명해 준 바와 같이, 나폴레옹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들은 혁명의 위험에서 벗어나 이집트의 고기 냄비 곁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했으며, 그러한 갈망에 대한 답변이 1851년 12월 2일의 사건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과거의 나폴레옹에 대한 하나의 희화戱畵만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19세기 중반에 반드시 출현하도록 희화화 된 옛 나폴레옹 자신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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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마르크스(Karl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최형익 옮김, 비르투, 2012), p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