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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노에: 오늘의 에세이-과학과 그것의 실재 2

 

과학과 그것의 실재 2

Science And Its Reality: Take 2

 

―― 알바 노에(Alva Noe)

 

나는 종교와 과학은 경쟁하는 이론들이라는 관념에 이의를 제기했던 지난 주 포스트 글에 대한 논평자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것들은 경쟁하는 이론들이 아니다.

 

우선, 종교는 이론이 아니다. 종교의 과업은 설명과 예측에 있지 않다. 그리고 종교적 관념, 문화, 텍스트, 실천, 태도들에 귀속되는 가치―가치가 존재한다고 당연히 간주하자―는 이것들이 대략 지난 삼 세기 동안 발달되었던 자연과학의 방법들을 사용하여 시험을 받고, 확증되고, 검증되었거나 또는 이론화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이것을 요약하는 한 가지 방식은 이렇다. 신은 가설이 아니다.

 

상식도 가설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가치가 있다.

 

즉, 태양이 내일 떠오를 것이고, 우리 발 밑의 바닥은 안정하고, 우리가 자고 있을 때에도 세계는 지속되며, 우리가 <<트루먼 쇼(Truman Show)>> 세상이나 <<매트릭스(Matrix)>>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우리의 확신도 가설이 아니다. 사실상 우리가 그런 것들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우리가 그것들을 당연히 여긴다고, 그것들이 거짓일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다고, 그것들은 그것에 관해 어느 것이나 믿게 될 수 있는 배경에 대한 상수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사실상 과학 자체가 하나의 이론이라는 주장에는 기묘한 점이 존재한다.

 

과학은 많은 이론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은 이론들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이론은 시험할 수 있는 결과들을 낳는 모형 또는 그림 또는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의 결과들이 관찰된 사건들과 부합되지는 여부를 알아봄으로써 이론을 시험한다. 우리는 대단히 미묘하고 상세한 이야기 또는 그림들을 시험하게 하는 실험들을 고안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 과학은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는 종교뿐 아니라 상식과도 긴장 관계를 이루는데, 이론 구성 작업에 있어서 이것들이 경쟁자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16세기와 17세기에 일어났던 과학혁명에 대해 말하는 것, 그리고 갈릴레오, 뉴턴, 데카르트 등을 혁명가들로 간주하는 것은 아무 이유가 없지는 않다. 나는 과학의 이데올로기를 요약하고 싶지는 않지만, 한 가지 기본적인 신념은 사물들의 본성에 대한 지침으로서 감각 경험을 경시한다는 것은 명백한 듯 보인다.

 

데카르트 유명한 예를 인용하면, 감각에게는 밀랍이 녹을 때 그것은 완전히 변형되지만, 이성에게는 밀랍이 단지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외양과 실재는 별개이고 그것들 사이의 간극은 매우 크다.

 

과학의 과업은 실재에 있다. 최소한 전통적인 형식에 있어서 그 이데올로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신조는 좋은 모형들은 기계론적이라는 것, 즉 아래로 줄곧 당구공을 때리는 당구공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성한 지능이 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낳는다.

 

과학이 이데올로기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든 과학자들이 과학의 독단들을 고수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실험실을 벗어났을 때 많은 과학자들은 상식뿐 아니라 종교도 떠안는다.

 

이것은 대체로 명백하다. 과학과 다양한 양태들의 의식적 삶 사이의 긴장은 실재적이다. 그 긴장은 해소되거나 해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탁자가 갈색이고 단단하는 사실은 색깔이 우리 머리 속에 있으며 탁자가 입자들의 구름이라는 (추정적) 사실과 사실상 양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탁자와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상식적 관념은 오도된 것이고 대부분의 미신처럼 포기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 중요한 작업, 가치 있는 작업, 철학의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