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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베커: 오늘의 인용-사물들의 내부성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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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경험의 불가결한 이원론―모든 객체들은 내부외부 둘 다가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고, 그것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 그것은 가장 먼 시대 이후로 인간의 흥미를 끌어왔던 우주의 거대한 불가사의들 가운데 하나다. 그것은 영혼과 정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기초다. 자신의 자기 성찰, 즉 자기 육체의 내부―자신의 사유와 느낌들―와 외부 사이의 실재적이고 명백한 모순 때문에 인간은 그것을 발견했고 그것을 다듬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의 외부만 경험할지라도, 이론적으로 모든 객체들은 본질적으로 어떤 "내부성(interiority)"을 갖는다. 정신분석학 또는 실험심리학의 아버지로 줄곧 알려진 구스타브 페흐너(Gustav Fechner)는 일 세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한 널리 읽히는 책, 윌리엄 제임스라는 위대한 사상가에 영향을 끼친 책을 저술했다. 자신의 과학적 저작에서 페흐너는 모든 물질 입자들의 경우에 영혼과 동등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오늘날의 실험실 심리학자들이 그 위대한 인물과 관련하여 편리하게 망각하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는 모든 객체들, 심지어 나무들도 내부성이 있다고 말했다. 나무들이 허약함을 느끼기 때문에 담장에 기댄다고, 또는 갈증을 느끼기 때문에 물을 흡수한다고, 또는 태양을 향해 뻗고 있기 때문에 구부러져 자란다고 말하면 어떤가? 느린 동작의 화면을 바라보면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의 내부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경험에 대한 어떤 내부적 반응을 틀림없이 기입한다. 척도의 바닥에서 최소의 내부성을 지닌 객체들은 바위들일 것이다. 그것들은 자체의 원자적 구조들의 빈둥거림에 불과한 내부적 삶밖에 없을 것이지만, 물리학자들이 가르쳐주었듯이, 이것들 속에는 휴식이 전혀 없다.

 

이것들은 새롭거나 놀라운 사유들이 거의 아니지만, 인간의 독특한 내부성 문제를 소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척도를 인간까지 올리게 되면, 내부와 외부 둘 다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자연, 즉 창조에 대한 거대한 이원론은 자체의 최대한 극단까지 전개된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 동안 우리 모두를 따라다니는 가슴 아픈 문제를 제시한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외부적인 것들―물리적으로 그리고 외향적으로―을 사용하여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뿐이다. 그런데 우리 각자는 대단히 풍부한 내부적 삶, 사적인 은밀한 자기를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돌아다닌다. 실제로 우리는 어느 정도 자아와 육체로 양분되어 있다. 전자는 숨어 있고, 후자는 개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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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른스트 베커(Ernest Be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