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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그린블랫: 오늘의 인용-루크레티우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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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경우에는 바로 이런 점이 루크레티우스의 시에 단숨에 사로잡히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힘은 나의 독특한 개인사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놀랄 만큼 설득력 있게 사물의 본성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사물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려는 고대의 시도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000년 후에 보면, 현재 우리의 지식은 과연 얼마나 정확할 것인가? 루크레티우스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으며, 태양의 크기나 온도가 우리의 지각 범위를 크게 벗어날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벌레는 축축한 흙에서 저절로 발생한다고 생각했으며, 번개는 두꺼운 구름층 사이에서 빠져나온 불씨라고 설명했고, 지구를 어마어마한 다산 끝에 기진맥진한 폐경기 여성에 비유했다. 그러나 이런 터무니없는 설명 너머에 있는 시의 핵심에는 만물을 바라보는 근대적 관점의 기본 원칙이 존재한다.

 

루크레티우스의 우주는 우주 공간을 무작위하게 움직이는 무수한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원자들은 햇빛 아래에서 떠다니는 먼지처럼 충돌하고, 서로 들러붙고, 복잡한 구조을 이루기도 하며 다시 부분으로 깨지기도 하면서 생성과 파괴의 부단한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이 과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는 없다. 당신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낄 때, 당신은 신들의 작품을 보고 있거나 잠시 머무는 이 덧없는 세계와는 동떨어진 다른 반짝이는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도 그 일부이며 당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과 꼭 같은 원소들로 만들어진 물질계(material world)이다. 여기에는 종합적인 계획도, 신성한 조물주도, 지적인 설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속한 종을 포함한 사물은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화해온 것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의 경우에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따르지만, 기본적으로 진화는 무작위적이다. 다시 말해서, 일정 기간만이라도 우연히 살아남아 번식하는 데에 성공한 종은 버티고 그렇지 못한 종은 금세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종(種)으로서의 우리 인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 그 위로 매일 타오르는 태양도―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영원불멸한 것은 오직 원자뿐이다.

 

루크레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지구와 그 거주민이 우주의 중심을 점하고 있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인간이 신에게 뇌물을 바치거나 신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고 종교적 광신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금욕적인 자기 부인은 불필요하고, 전지전능한 힘이나 완벽한 구원에 대한 환상은 근거가 없다. 정복욕이나 자기 과시욕도 불합리하다. 그 어떤 것도 자연에 맞서 이길 수 없으며 생성과 파괴, 그리고 재생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순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안전에 대한 거짓 환상을 팔거나 죽음에 대한 비논리적인 공포를 선동하는 자들에게 분노하는 한편, 루크레티우스는 일종의 해방감과 함께 이전에는 너무나 위헙적으로 보였던 것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루크레티우스는 인류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죽음을 극복하고 우리 자신도 살면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도 덧없는 것임을 인정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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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그린블랫(Stephen Greenblatt), <<1417년, 근대의 탄생: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odern)>>(이혜원 옮김, 까치, 2013), pp.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