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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오늘의 인용-인간의 지배와 피지배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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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지만, 인간의 불합리하고 복잡 미묘한 심리를 생각하면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배하는 사람이 누구보다 강하고 탁월하기를 원한다. 그다지 강하지 않은 상대에게 부림을 받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부림을 받는 것은 우쭐하고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 경기에서 자기를 이긴 상대가 모든 사람을 이기고 최강자가 되기를 바라는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나를 이긴 상대가 누군가에게 지면 기분이 언짢아지는데 그것은 내가 충분히 강하지 않은 상대에게 졌다는 사실이 무참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기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러지 못할 바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강한 자에게 지기를 바란다. 나를 지배하는 자가 나를 지배할 만큼 강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배받지 않는 것이 것이 제일 좋지만 (이것은 확실하지 않다. 지배할 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그럴 만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이 누군가의 지배조차 받지 못할 때,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아무도 그 사람을 지배하려고 선택하지 않을 때, 소외감을 느끼거나 불안정한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면 지배받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단정해서 말하긴 어렵다. 그렇긴 해도, 어쨌든) 불가피하게 지배받아야 한다면, 나를 지배하는 자가 당당하고 강할수록, 심지어 잔인할수록 나를 만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이 당당하고 강하고 잔인한 지배자가 아주 가끔 아주 작은 친밀감을 표시하거나 아주 사소한 친절을 베풀 때 우리는 황송하고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지배 방법이 엄할수록 이 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황송함과 고마움은 강함, 심지어 잔인함을 향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거의 항상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당사자가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감지하는 순간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워낙 짧아서 각성에 이르지 못하거나 너무 늦어서 무의미하거나 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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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지상의 노래>>(민음사, 2012), pp. 2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