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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오늘의 인용-평생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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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는 연희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크게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그 일은 그의 과제였지만, 그가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과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그가 그 점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면, 실망도 낙담도 하지 않는 이런 느긋함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다.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을 한순간에 해치워 버릴 수는 없는 법이다.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할 일을 한순간에 해치워 버린 후에 남는 생의 공허를 어쩔 것인가.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은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한다. 그 일 때문이 아니라 그 삶 때문이다. 일을 위해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일이 있어야 한다. 일이 끝남과 동시에 삶이 끝나기도 한다. 일을 끝냈으므로 삶을 끝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삶을 끝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일을 끝내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아니다. 과제를 해치운 다음의 공허를 피하기 위해 그가 일부러 과제를 소홀히 하거나 미루거나 회피했다는 뜻은 아니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간절했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속성으로 마침표를 찍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선명하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살기 위해 그 일을 필요로 했다. 살기 위해 그 일이 그에게 있어야 했다. 그 일이 없으면 그의 삶이 위험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다. 그런 뜻이다. 그러니까, 역시 선명하게 의식하지 못했고, 그편이 훨씬 나았지만, 그의 삶을 위해 그 일은 한없이 연장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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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우, <<지상의 노래>>(민음사, 2012), p.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