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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치로: 오늘의 인용-과학신앙시대는 사이비 과학의 전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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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어떤 시대이든 사후의 생은 종교의 중요한 문제로 여겨졌지만 그것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심령학이라는 기술 및 사상이 태어난 것은 겨우 1850년경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주요한 것은 그 증거가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것(움직이는 탁자, 소리, 물화된 대상, 사진에 찍힌 유령 등)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심령학은 실험과학의 기준을 도입해 영혼의 불멸을 물리적 현현(顯現)으로 증명하려 한다. 그러한 시도는 만져서 알 수 있는 증거라야 신뢰하는 고정관념의 산물이며 19세기 후반의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와 완전히 동시대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백오십 년 전의 유럽의 분석은 얼마나 현대적인가. 기독교가 절대적인 진리로 유럽사회에 군림하고 있는 동안 영혼의 존재는 증명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필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물리적 증거라는 게 소용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런 발상 자체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영혼이란 육신(즉 물질성)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만져서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영혼이라는 개념에서 일탈해 있다. 그런데 왜 증거가 필요하게 된 걸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의, 아니 종교 그 자체의 조락(凋落) 때문이다. [...] 19세기 내내 신은 식물인간상태였다. 니체의 업적은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산소호흡기를 떼어냈다는 점에 있다. 임종을 지켜보던 자들, 혹은 이전부터 사태를 짐작했던 자들은 그 빈자리를 고심해야만 했다. 절대자는 사라졌다. 그러나 불안은 남았다. 더욱 강하게 남았다.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이 바로 과학이었다. 과학은 거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의 신비와 인간 생명의 불가사의함을 풀어주는 것은 더이상 신학이 아니었다. 과학이었다.

 

과학에 대한 신앙은 오늘날에 와서 퇴색하기는커녕 더욱 강해진 듯하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은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 오늘날에도 심령 사진은 얼마나 대중의 흥미를 끌고 있는가. 물리적인 구조에서 보면 사진이 영적 존재를 증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사진에는 찍힌다는 발상 자체가 기묘하기 짝이 없는 착각이다. [...] 어쨌든 심령사진을 둘러싼 현대인들의 반응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영적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근대적인 욕구와 함께, 사후의 생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지 물질성을 띠거나 물질과의 접촉 가능성을 지니지 않으면 죽음에 대한 불안은 결코 위로받지 못한다는 유물론적 이데올로기의 도착적인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현재 컬트 종교의 교의나 활동에서 볼 수 있는 기묘한 과학주의에서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존재의 신비를 동경해 그 교단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을 납득시키는 것은 묘하게도 과학적인 증명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됨에 따라[...] 그 짧은 시간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상쩍은 이야기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런 희한한 현상은 심령사진을 둘러싼 사람들의 심리구조와 완전히 일치한다. 오늘날처럼 사이비 과학이 인간을 속이기 쉬운 시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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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라노 게이치로, <<문명의 우울>>(염은주 옮김, 문학동네, 2005), pp.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