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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비서: 오늘의 에세이-통합 이론과 '거대사' 접근 방식

 

통합 이론과 '거대사' 접근 방식: 비교적 입문

Integral Theory and the 'Big History' Approach: A Comparative Introduction

 

―― 프랭크 비서(Frank Visser)

 

"그 둘은 춤처럼 함께 간다. 우연은 필연과 시시덕거리고, 무작위성은 결정론를 집적거린다. 확실히, 자연에서 참신성과 창의성이 발생하여 독특한 형식들과 새로운 구조들을 낳는 것은 이런 교환 덕분이다."

     ―― 에릭 셰송(Eric Chaisson), <<진화의 서사시: 우주의 일곱 시대(Epic of Evolution: Seven Ages of the Cosmos)>>(2005).

[...]

 

'거대사' 접근 방식

 

나는 이른바 "거대사" 접근 방식이라는 또 하나의 비교적 통합 연구 분야를 제시하고 싶다. [...] 거대사라는 분야는 자연주의적 방식으로 물질, 생명, 그리고 문화 영역들을 다루고 설명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통합적 접근 방식이며, 강단에서 기반을 다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

 

<<거대사와 인류의 미래(Big History and the Future of Humanity)>>(2011)―다루는 범위의 방대함을 고려하면, 200쪽의 대단히 얇은 책―에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네덜란드 "거대사가" 프레드 스파이어(Fred Spier)는 이 흥미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가독성이 높은 해설을 제공하는 동시에 얼마간의 독창적인 사유도 제시한다. 이 책을 사용하여 켄 윌버(Ken Wilber)에 의해 전개된 통합 철학과의 일치점과 차이점들을 찾아내어 탐구할 것이다.

 

[...] 2005년 한 논문에서 스파이어는 이렇게 서술한다.

 

이 논문에서 나는 우주의 탄생에서 오늘날 지구 생명까지에 이르는 역사 전체(거대사)에 대한 설명 도식을 제시한다. 내 도식은 물질과 에너지 흐름뿐 아니라 에너지 층위들이 모든 형식에 있어서 복잡성의 등장과 소멸을 가능하게 만든 방식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에세이가 비롯된 그 책에서 스파이어는 자신의 연구 의제를 이렇게 서술한다.

 

내 노력은 거대사에 대한 정합적인 이론적 틀을 구성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로 여겨져야 한다. 사실상 이 접근 방식은, 천문학자들에서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에까지 이르는 과학자들이 동일한 과학적 언어를 말하면서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할 전적으로 학제적인 연구 의제을 구성할 것이다.(p. 39)

 

거대사의 세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은 <<우주의 진화: 자연에서 복잡성의 등장(Cosmic Evolution: The Rise of Complexity in Nature)>>(2001)과 <<진화의 서사시>>의 저자인 천문학자 에릭 셰송이다. 거대사에 의해 다루어지는 기반을 잘 나타내는 그림은 그의 대단히 유익한 웹사이트 "우주의 진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셰송에 따르면, 우주의 주요한 일곱 시대(그리고 미래를 포함한다면 여덟 시대)가 있었다. (1)미립자 시대(particulate epoch), (2)은하계 시대(galactic epoch), (3)항성 시대(stellar epoch), (4)행성 시대(planetary epoch), (5)화학 시대(chemical epoch), (6)생물학 시대(biological epoch), (7)문화 시대(cultural epoch), (8)미래(Future). 스파이어는 사소한 기술적 수정을 거쳐 셰송의 에너지에 대한 집중을  수용했다. 이 순서는 이런 유형의 거대사에 있어서 과학에 대한 강력한 강조를 드러내지만, 진정한 만물 이론의 넓은 풍경을 나타낸다. [...]

 

일차 근사로서 두 접근 방식―통합 이론과 거대사―모두 지성적 지식의 모든 분야들을 포괄하려고 노력하며 다학제성을 선호한다. 그런데 강조점에 있어서 또렷한 차이가 있다. 윌버의 본거지는 인문학에 있으며, 그리고 물론 신비주의적 영성 분야에 있다. 거기서부터 그는 실재 전체로 일반화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의식이 있을 뿐 아니라, 의식 또는 그가 즐겨 부르는 대로 내부성은 원자적 층위까지 내려가서 실재 자체의 근본적인 특징이 된다(이것은 흔히 "범심론"이라고 불린다). "의식은 아래로 계속 내려간다"라는 문장은 그가 애호하는 표현이다.

 

반면에, 거대사는 물리학과 생물학의 경험적 영역들을 거쳐서 위로 나아가서 마음과 문화라는 분야들에서 절정에 이르는 듯 보인다. 스파이어가 식물유전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로서 훈련받았다는 점 덕분에 그는 두 학문 분야 모두를 다룰 수 있는 뛰어난 후보가 된다. 윌버는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독학으로 인문학과 영성에 전념했다. 그래서 두 진영의 강한 분야들과 약한 분야들을 예상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에세이에서 예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 내가 알고 있는 한, 윌버가 물리학과 생물학 둘 다에서 경성 과학을 다루는 방법는 문제가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거대사의 강하게 과학적인 틀은 진화에 있어서 물질적 요인들과 에너지에 기반을 둔 요인들을 쉽게 과대평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명백히 그 두 접근방식의 심층적인 비교는 적절하고 틀림없이 두 연구 분야에 유익할 것이다.

 

역사적 선행자들

 

그런데 <<거대사>>에서 스파이어가 지적하듯이, "거대사라는 확립된 분과학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p.9)는 점을 염두에 두고 우선 몇 명의 중요한 "거대사가들"을 소개하자.

 

스파이어는 최초의 거대사 선구자들 가운데 일인으로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를 지적하는데, 그는 지리학이라는 분야의 창시자들 가운데 일인이었다. 당대에 폰 훔볼트는 널리 읽혔으며 "오늘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버금가게 유명했다"(p.10).  게다가, 그리고 윌버와 비교하는 맥락에서 흥미롭게도,

 

말년에 폰 훔볼트는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코스모스(Kosmos)>>라고 불리는 연작을 저술하기 시작했는데, 그 연작에서 그는 자신이 이해하는 대로 인간의 역사를 비롯하여 자연의 역사에 관한 현존하는 모든 지식을 요약할 작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우주에 관한 보편적 역사(a cosmical history of the universe)"라고 불렀다. 1845년 독일에서 첫 번째 권이 출판되었다. 이 책들은 널리 읽혔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불행하게도, 폰 훔볼트는 자신의 기획을 완성하기 전에 사망했다.(p.10)

 

우리는 즉시 어떤 두드러진 우연한 일치점들을 인식할 수 있다. 여태까지 윌버의 주저인 <<성, 생태, 영성(Sex, Ecology, Spirituality)>>는 <<코스모스(Kosmos)>>라고 불리는 계획된 삼부작의 첫 번째 권이다. 윌버는 피타고라스적 의미에서 실재의 다차원적 본성을 나타내기 위해, 물질적 우주(Cosmos)와 구별하기 위해 "Kosmos"라는 철자를 사용한다[...]. 1995년 윌버는 나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현재 저는 최소한 인간 지식의 주요한 모든 분야들을 다루고자 하는 <<코스모스(Kosmos)>>라고 불리는 삼부작을 저술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래 착상은 십 년에 한 권씩 이 삼부작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권은 젠더 문제들을 다룰 예정이었고, 잠정적으로 <<성, 신, 그리고 젠더(Sex, God and Gender)>>로 명명되었다. 세 번째 권은 더 철학적일 예정이었고, <<탈근대성의 정신(The Spirit of Post-Modernity)>>으로 명명되었다. 그런데, 계획되었던 두 번째 권은 불행하게도―윌버의 만성적인 건강 문제 또는 출판 전략 때문에―결코 출판되지 않았거나, 또는 저술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의 역사(A Brief History of Everything)>>(1996)나 <<만물 이론(A Theory of Everything)>>같은 더 대중적인 책들을 저술하기로 결심했다.

 

거대사 서적들의 제목에 친숙한 사람들에게 윌버의 이 두 책은 우주론이나 생물학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을 통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렇다면 통합 이론은 진정한 만물 이론인가? 그것은 물질, 생명, 그리고 마음/문화 영역들에서 실제적인 설명력을 지니고 있는가? 물론 물리학의 만물 이론들도 그런 자격을 부여받지 못할 것인데, 그것들은 생명과 마음/문화 분야들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대사와 통합 이론은 그런 주장을 계속해서 유지한다.

 

그런데 2000년 무렵에 윌버는 계획된 세 번째 권을 먼저 완성하여 <<우주적 업과 창조성(Kosmic Karma and Creativity)>>으로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이 시점(2013)에 그는 이 책의 완성을 선언하였는데, 이제 그것의 제목은 <<성, 업, 창조성(Sex, Karma, Creativity)>>이 될 것이다[...].

 

더 사소한 점을 지적하면, 윌버는 "의식 연구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렸는데, 비록 그 술어는 그의 저작권 대리인 존 화이트가 명명했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만이 포괄하는 듯 보일만큼 어떤 집단들에서 윌버의 권위와 명성이 대단했다는 점을 보여줄 따름이다.

 

게다가 윌버는 흔히 미국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학술적 저자"로 홍보된다. 그의 저작들이 본격적인 의미에서 "학술적"인 것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할 사람들이 있거나, 또는 [...] 마크 포먼(Mark Forman)과 숀 에스비요른 하겐스(Sean Esbjorn-Hargens)가 묘사하는 대로 "전통적인 학술적 담론과 더 일반적인 대중 철학적 담론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서술되는 것이 더 나을지라도 말이다.

 

윌버가 결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구체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은 불행이지만, 코스모스 삼부작의 이 새로운 권은 그것에 관해 전할 것인데, 특히 이제는 그의 독자 중에 직업적 철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리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철학적 논변을 각주에 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켄 윌버는 현대의 폰 훔볼트인가?

 

스파이어는 거대사의 선행자들로서 다른 역사적 인물들을 몇 명(프랑스 백과사전파에 영향을 미친 폴 앙리 티리 바롱 돌바크, 생명에 관한 유물론적 견해를 조장한 르네 데카르트, 그리고 익명으로 출판된 <<창조의 자연사의 흔적(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의 저자인 로버트 체임버스)을 언급하지만, 당분간 우리는 이들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중요한 선구자들

 

스파이어에 따르면, 아폴로 우주선이 "지구돋이(Earthrise)" 사진―그의 책 표지 사진으로 실린―을 가지고 귀환한 1970년대가 되어서야 우리의 우주적 역사와 자연 전체에 있어서 우리의 지위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었다. 그 다음에 1980년대에 지질학자 프레스톤 클라우드(Preston Cloud), 천체물리학자 G. 지그프리트 쿠터(Siegfried Kutter), 그리고 천문학자 조지 필드(George Field)와 에릭 셰송 같은 다양한 독립 저자들은

 

이 새로운 지식을 참신한 일반적 종합을 얻기 위해 사용했다. 이것은 그들 나름의 전공을 강조하면서 과학에 기반을 둔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루는 대학 교과과정과 서적들을 포함했다. 자연과학자들이었던 그들은 인간의 역사에는 제한된 주의를 기울였을 뿐이다. 그 결과, 역사에 대한 이런 대규모의 해설들은 새로운 장르로 융합되기 시작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서유럽, 그리고 미합중국의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거대사"로,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우주적 진화"로, 그리고 러시아에서는 "보편사"로 점점 더 알려지게 되었다.

 

스파이어는 특히 또 한 명의 이론적 선구자를 언급한다.

 

오스트리아 철학자 에르히 얀치(Erich Jantch)는 많은 중요한 원리들을 요약한 <<자기조직하는 우주(The Self-Organizing Unverse)>>(1980)에서 거대사에 대한 체계적인 모형을 전개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 책이 출판된 직후에 얀치는 사망했는데, 그것이 그의 책이 강단인들 사이에 더 잘 알려지지 않게 되었던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러시아에서는 얀치의 작업이 많은 학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p.15)

 

마지막으로, 1990년대 말에 선구자들―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러시아 역사학자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과 텍사스주 달라스의 존 미어스(John Mears)―은 강단의 환경에서 이 제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미어스는 거대사 분야 전체를 개인적으로 다룰려고 시도했던 반면에, 크리스천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자신의 전문지식에 관해 가르치도록 요청했다. 스파이어는 크리스천에게서 이 형식을 차용하여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에서 비슷한 강좌를 개설했는데, 지금까지 거의 이십 년 동안 운영되었다.

 

게다가, 크리스천은 거대사 기획, 즉 온라인에서 이 자료를 무상 강좌로 제공하려는 노력에 자금을 제공한 빌 게이츠(Bill Gates)와 협력했다. 또 다시 윌버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적절하다. 그도 얀치의 작업을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했다. 그의 대작 <<성, 생태, 영성>>(1995)에서 에르히 얀치는 우호적인 방식으로 여러 번 언급된다. 개체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사이의 중요한 구분과 흔히 복잡성―예를 들면, 원자, 세포, 장기, 유기체, 사회, 생물권―에 대한 전일론적 모형들이 어떻게 이것들을 융합하는지 논의하면서 그는 이렇게 언급한다.

 

다시 말해서, 개체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은 하나가 나머지 다른 하나보다 통화 가치가 더 큰 두 개의 상이한 동전들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통화 가치에서 동일한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다. 그것들은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이지,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것(또는 층위)이 아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복합 개체들의 참된 홀라키(holarchy)의 연쇄를 구성한 다음에 동일한 조직 층위에서 개별적 홀론(holon)이 참여자인(그리고 그것의 현존에 개별적 홀론이 의존하는) 그런 유형의 환경(또는 사회적 홀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세 가지 거대한 진화 영역들―생리권(physiosphere), 생물권(biosphere), 그리고 인지권(noosphere)―에서 수행될 필요가 있다.

 

운이 좋게도, 이런 작업의 많은 부분이 에리히 얀치에 의해 이미 이루어졌는데, 내가 알기에 그는 세 가지 영역 모두에서 공진화의 미시적(개체적) 유형과 거시적(사회적) 유형 사이의 관계를 광범위하게(그리고 흔히 뛰어나게) 탐구한 유일한 이론가다(인지권에 접근할 때 그의 논변은 약간 혼동하게 되지만 말이다).(p.83-84)

 

표준적인 거대사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윌버는 문화적 차원에 훨씬 더 많이 주목하는데, 매우 다양한 원천들을 사용하여 인간의 문화사의 행로를 그린 그의 초기 저작 <<에덴을 넘어(Up from Eden)>>(1981)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또한 윌버를 이런 저자들과 구별하게 하는 것은 실재에 관한 분명히 영성적인 견해다. 윌버의 경우에 인간의 역사와 우주의 진화 둘 다 정신(또는 그가 즐겨 부르듯이 에로스)에 의해 추동된다. 놀랍지 않게도, 윌버는 헤겔의 열혈 팬이다.

 

두 개의 설명 도식

 

스파이어는 거대사에 대한 자신의 자연주의적 접근 방식과 관련하여 명시적이다.

 

나의 설명 도식은 필연성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상황들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제약하기도 하는 일반적인 추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런 경계 내에는 우연을 위한 충분한 공간이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우연에 체계적으로 집중하지 않을 것이지만, 독자는 우연이 역사의 행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p.18)

 

스파이어에게 핵심 개념들은 "물질(matter)", "에너지(energy)", "엔트로피(entropy)", 그리고 "복잡성(complexity)"이다. 더 추상적인 층위에서 그는 "거대사를 구성하는 모든 과정들을 가리키는 일반 개념"으로서 "체제(regime)"라는 개념을 제시한다(p.20). 게다가 스파이어는 생물학적 체계 같은 "적응 체제(adaptive regime)"와 항성과 은하 같은 "비적응 체제(non-adaptive regime)"를 구분한다. 그는 자신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에 대한 개요을 이렇게 결론짓는다.

 

거대사를 가장 간단히 요약하면, 거대사는 모든 규모에서 일어나는 복잡성의 출현과 소멸을 다룬다. 그 결과, 설명에 대한 탐색은 결국 이 모든 상이한 형태들의 복잡성이 왜 창발하고 번성했는지, 때때로 왜 다시 해체되는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 나는 어떤 경계 조건 내에서 물질을 관통하여 흐르는 에너지가 복잡성의 모든 형태들의 출현과 소멸을 초래했다고 논증할 것이다.(p.21)

 

게다가, 스파이어의 접근 방식은 다른 저자들이 암묵적인 방식으로만 다루었던 관념―진화사 전체에 있어서 "골디락스 조건(Goldilocks conditions)" 의 중요성―을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조건이 복잡성의 창발이 도대체 일어나기에 "딱 알맞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태양으로부터의 지구 거리는 생명이 발생하기에 "딱 알맞다". 그 거리가 너무 멀지 않아서 우리는 얼지 않을 것이고, 너무 가깝지 않아서 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태양의 크기에서 우주의 나이까지 생명의 창발에 도움이 되는 일단의 다른 인자들에게도 적용된다. [...] 이런 주목할 만한 사실 때문에 몇몇 저자들은 이런 조건이 미리 설정되었다는 결론―강한 인류 원리(Strong Antropic Principle)로 알려진―을 내리게 되었지만, 누구 또는 무엇에 의해 설정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런 유물론적이고 에너지에 기반을 둔 제안은 윌버의 더 관념론적이고 심지어 영성주의적인 견해―통합 이론에서 그는 유물론적/에너지적 차원을 기꺼이 포함하지만―와 즉각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윌버의 경우에, 복잡성의 창발은 자연주의적 견지에서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정신"―그의 코스모스 삼부작 제1권의 부제로서 꽤 시적이지만 강단적 담론의 맥락 내에서는 불만스러운 술어―의 결과로 간주되어야 한다. 명료화를 요구받았을 때, 그는 이 힘을 형이상학적(metaphysical) 추동력이 아니라 자기조직화와 자기초월을 향한 "물리계 내부의(intra-physical)" 추동력으로 설명했다.

 

내가 다른 글에서 언급했듯이, "자기조직화를 향한 추동력"이라는 관념은 모호한 개념이다. 물질을 유기체로 주조하는 외부의 힘이 존재하거나(생기론처럼), 아니면 물질이 "자기조직적"(그래서 자기충족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소한 복잡한 형태들의 일부에 대한 원인이 되는 자기조직화의 힘"은 무엇인가? [...]

 

스파이어와 윌버 사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차이점은, 스파이어는 우연 대 필연이라는 표준적인 유물론적 이분법을 사용하는 반면에 윌버는 "업"과 "창조성"―특히 아직 출판되지 않은 그의 코스모스 삼부작 제2권에서―을 채택한다는 점이다. 과학은 모든 참신성을 우연과 변이의 영향에 귀속시키는 반면에 윌버는 이것이 진정한 참신성을 설명할 수 없으며, 그래서 (과정철학자 A.N. 화이트헤드를 좇아서) 창조성이라는 근본 원리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과학의 경우에 이것은 쉽사리 막다른 골목에 해당하며, [...] 순환적 추리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들에서 중요한 한 개념은 일반적으로 무질서로 번역되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무질서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적 언어로 표현하면, 여러분의 방은 이따금 정리하지 않는다면 난잡해지는 경향이 있다. 질서는 유지되고 보호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주의 진화 동안 질서는 증가하는 듯 보인다. 물질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마음과 문화로 나아간다. 그것은 제2법칙에 위배되는가? 그래서 윌버가 선호하는 주장은 이렇다. "우연이 아닌 무언가가 우주를 추동하고 있다". (800쪽이 넘는 <<성, 생태, 영성>>에서 "엔트로피"라는 낱말이 나타나지 않거나, 또는 최소한 두드러지게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은 계시적이다(그리고 충격적이다) .)

 

그런데 엔트로피의 법칙은 닫힌 체계들의 경우에 참일 뿐이지, 태양과 내부의 지열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제공받는 우리의 행성 지구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자. 그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태양 에너지 자체는 복잡성을 만들어내지 않지만, 그것 덕분에 유기체들은 연속적으로 유입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일을 행할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생명은 활용될 수 있는 열의 구배를 만들어내는 심해 화산의 "수열 분출구" 근처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평범한 비유는 이렇다. 태양 에너지의 유입 때문에 지구 전역의 날씨 유형은 끊임없이 고기압 영역들과 저기압 영역들로 가득 차 있다. 날씨 체계는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등압선들의 압력 구배가 더 급격할수록 바람은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바로 그 조건이 기회를 창출한다. 이런 기압차에 의해 초래되는 바람―자연은 평형 상태 또는 최대 엔트로피 상태에 이르려고 한다―은 선박, 풍차, 그리고 다른 기계들이 유용한 일을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스파이어는 이런 엔트로피 논의에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덧붙인다. 엔트로피의 국소적 감소(또는 "네겐트로피(negentropy)" 또는 복잡성의 증가)는 제2법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어딘가 다른 곳에서의 엔트로피 증가를 수반해야 한다. 인간들은 (온혈 동물로서) 공기 중에 산란되는 많은 열을 생성한다. 그래서 복잡한 동물들의 경우에도 순 결과는 여전히 엔트로피 증가다. 우주의 규모에서, 항성들에 의해 생성되는 열을 흡수하는 것은 팽창하면서 냉각되는 우주이고, 그래서 순 결과는 엔트로피 증가다.

 

그렇다면 주요한 의문은 이렇다. 우주는 어떻게 스스로 조직되는가? ... 다시 말해서, 우주의 역사도 무질서 증가의 역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 어떤 국소적인 복잡성의 증가도 불가피하게 어딘가 다른 곳에서의 거대한 무질서 증가를 수반했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도대체 어떻게 복잡성이 자체적으로 출현할 수 있었겠는가?(p.29)

 

사실상 여기서 두 개의 설명 도식이 있다. 하나는 지구와 코스모스 둘 다에서 복잡성의 증가를 초래하는 코스모스 내의 에로스라는 힘을 가정하는 윌버의 설명 도식이다. 나머지 다른 하나는 복잡성의 증가를 부득이 팽창하면서 냉각되고 있는 더 큰 우주 내에서 특수한 골디락스 조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전적으로 국소적인 현상으로 여기는 거대사의 설명 도식이다.

 

에릭 셰송은 후자의 관점―전반적으로, 국소적 규모에서는 질서 증가가 번성할 수 있지만, 전체적 규모에서는 질서가 사라지고 있다―을 꽤 잘 표현한다. 사실상, 무질서가 없다면 질서가 존재할 수 없다.

 

복잡성과 관련하여 이해할 것이 많이 있지만, 한 가지 점은 확실한 듯 보인다. 질서정연한 복잡성의 섬들―예를 들면, 은하, 항성, 행성, 그리고 생명 형태 같은 열린 체계들―은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바다들의 무질서 증가에 의해 균형이 유지된다.

 

첫 번째 영역: 물질/우주 또는 생리권

 

물질/우주, 생명, 그리고 마음/문화, 또는 윌버가 부르는 대로, 생리권, 생명권, 그리고 인지권이라는 세 가지 거대한 영역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윌버와 스파이어는 어떻게 비교되는가? 스파이어는 두 개의 장―"우주의 진화"와 "우주의 우리 이웃"―전체에 걸쳐서 물질 영역을 다룬다. 여기서 그는 독창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된 표준적 판본의 과학적 우주론을 진술할 뿐이다. 여기서 그는 확고한 토대 위에 서 있다.

 

우주론자들에 의해 제시되는 대로의 우주의 역사는, 어떤 골디락스 조건 내에서 물질을 관통하는 에너지 흐름들이 사건들의 행로를 상당한 정도로 결정하며, 나머지는 우연에 달려 있다는 관념과 전적으로 맥락을 같이 한다.(p.41)

 

그는 빅뱅 이론과 그것의 주요한 증거 범주들―멀리 떨어진 은하들의 적색편이, 배경복사의 존재, 그리고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진 우주 내 물질의 조성―을 다룬다. 그런데 그는 은하들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중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암흑 물질이라는 관념과 우주 팽창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암흑 에너지라는 관념 같은, 빅뱅 이론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들도 다룬다. 실용적으로 그는, 우리가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복잡성들을 산출한 것은 통상적인 물질 형태들이고, 그래서 이런 우주론적 논쟁들은 최소한 직접적으로는 이 의문과 사실상 아무 관계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게다가 그는 가장 작은 규모들에서 복잡성(바리온, 렙톤, 반물질 등)이 존재한 복사 시대와 원자와 분자들이 생성된 물질 시대를 구분한다. 우주의 "암흑 시대" 동안 은하들이 물질의 응집에 의해 형성되었지만, 아무 항성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중력 때문에 성운 물질이 압축되어 핵 과정들이 융합되기 시작한 항성으로 변환되었을 때에만 일어났다. 물질이 항성과 행성들로 응축되는 동시에 그것들 사이의 공간이 점점 더 텅 비게 되었다.

 

특히 항성 형성이 우리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까닭은 항성들의 내부에서 탄소, 산소, 그리고 질소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핵 항성 물질의 압축 때문에 원자들의 복잡성이 매번 더 높아짐에 따라 항성들을 계속 태우는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항성들의 수명이 다 되었을 때 이 항성들은 초신성으로 폭발하여 때때로 블랙홀로 변환되었으며, 이때 우라늄에까지 이르는 훨씬 더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우주의 이 단계에서 물, 규산염, 그리고 아미노산 같은 간단한 유기 분자들이 우주에서 형성될 수 있었다.

 

윌버는 우주론의 이 영역을 전혀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과학의 이 부분에 의지한다는 확신감을 심어주지 않는다. "함께 서성거리는" 원자와 분자들에 관한 유치한 이야기 후에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그래서 수소, 그리고 헬륨과 산소, 질소, 그리고 칼륨과 칼슘 등이 우주에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빅뱅이 일어났을 때 이것들 가운데 아무것도 정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 자체는 정말 특별하다. 그렇지만 추동력, 창조성을 향한 근본적인 추동력―자기조직화와 에로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이름이 부여되었다―은, 즉 에로스는 이런 "참신함으로의 창조적인 진전"을 근본적으로 좌우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윌버의 경우에, 아원자 입자, 원자, 분자 등의 창조는 "우주에서 무작위성에 대항하고 있는 어떤 힘에 대한 증거"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진술한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그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이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사랑에 의해 추동된다. 역사 전체에 걸쳐 위대한 철학자들은 다양한 이름으로 그것을 언급했다. 에로스는 가장 공통적인 것들 가운데 하나다.

 

확실히 과학의 주의 깊은―그리고 성공적인!―설명적 접근 방식과 자연의 모든 곳에서 신비와 기적을 인식하는 윌버의 경향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나는 윌버의 이런 진술들이 그의 더 "진지한" 글이 아니라, 그 대신에 그의 제자들과 가진 "내부" 모임에서 인용된 것이라는 점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진술들은 이런 문제들에 관한 그의 참된 느낌을 매우 잘 반영할지도 모른다.

 

윌버는 거대사의 이런 물질적 영역의 세부를 결코 다루지 않지만, 최근의 글에서 그는 물질에 관한 우리의 이론들이 어떻게 우리의 정신 발달 단계를 반영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사변을 제시한다. 평범한 합리성의 경우에 물질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가 "비전 논리"라고 부르는 층위의 경우에 물질은 아원자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지 발달의 더 높은 단계들의 경우에 물질은 팔도(八道)의 쿼크들 또는 11차원의 끈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실재가 "정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결코 말할 수 없으며, 각 의식 구조는 나름의 세계를 지각/구성하고 그것을 "실재"로 간주할 것이라는 점만 말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세계란 결국 사랑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그가 거주한다고 추정되는 계몽된 의식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신비주의적 권고는 진지한 과학적 가설로 거의 간주될 수 없다.

 

우리가 거주하는 우주의 매우 작은 구석을 클로즈업하면서 스파이어는 복잡한 생명의 탄생과 지속적인 발달에 우호적이었던 우리 은하의 조건을 논의한다. 예를 들면, 주인 항성, 충분한 양의 무거운 원소들, 생물학적 진화를 위한 충분한 시간, 그리고 생명을 소멸시키는 초신성이 없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항성으로부터 알맞은 거리, 보호 자기장을 형성할 만큼 행성 속에 충분한 양의 철, 지각판 운동을 추동하고 생명 형태들의 진화를 위한 풍경을 제공하기에 적절한 지열 등이 필요하다. 사실상 우리는 매우 운 좋은 행성에 거주하고 있는 듯 보인다!

 

두 번째 영역: 생명 또는 생물권

 

스파이어에 따르면,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과학에서 주요한 미지의 것"이다. 그런데 생명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점은 그것이 환경으로부터 물질과 에너지를 공급받음으로써 복잡성을 획득하는 새로운 방식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항성들은 자체의 구성 속에 저장된 물질을 공급받을 수 있는 반면에, 살아 있는 유기체들은 자체의 복잡성을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식량을 필요로 한다. 게다가 이어지는 세대들에서 이 복잡성을 구성하는 방식에 관한 정보는 특수한 생분자들(DNA)에 저장되어 있다. 이것들은 복잡성 구성 과정을 대단히 촉진하는 효소와 단백질 같은 다른 생분자들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된다.

 

스파이어는 생명이 거주할 풍경을 준비한 지구 내의 지열 에너지 흐름들을 다룬다. 또한 그는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에 의해 제시된 가이아 가설, 대기 중 산소의 증가, 바다에서 복잡한 유기체들의 등장, 그리고 식물과 동물들에 의한 땅의 정복도 다룬다. 여기서 스파이어는 살아 있는 유기체들에 관한 깊은 의문들―산소가 어떻게 유독 물질에서 생명 유지 분자로 바뀌었는가 또는 자연의 가장 깊은 간극이 어떻게 박테리아와 여타 생명 형태들 사이의 간극인지와 같은―을 탐구하는 닉 레인(Nick Lane)의 매혹적인 연구를 포함했었을 것이다.

 

진화는 결코 앞날을 내다보거나 어떤 유기체들 집단을 "위해"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가이아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스파이어는 이렇게 넌지시 말한다.

 

생명이 자체의 편익을 위해 지구 표면의 골디락스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관념은 매우 그럴 듯하게 보이지 않을 것인데, 개체들에게 작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과정인 다윈적 진화의 도움으로 상이한 모든 생명 형태들이 어떻게 협력하여 그런 행성 체제를 만들어낼 것인가? 내가 이해하기에 그 대답은 놀랍도록 단순할 것이다. 이것은 자체의 골디락스 환경을 훼손한 모든 종들을 비무작위적으로 제거한 결과로서 일어났을 것이다.(p.92)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자기규제적인 가이아는 다윈적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일 것이다.(p.93)

 

복잡한 유기체들의 등장과 함께 식물 또는 다른 동물들을 먹는 동물들이 출현하여 사냥꾼과 먹이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는 전적으로 새로운 "먹이 그물"이 발생하였다. 스파이어는 진화 상에서 일어났던 두 가지 주요한 도약, 즉 에디아카라/아발론 폭발과 "캄브리아기" 폭발을 서술한다. 스파이어의 말에 따르면, 다섯 번의 멸종이 생물권에 충젹을 주었지만, 생명은

 

항상 전체적 추세는 더 복잡한 식물과 동물를 지향하면서 매우 단순한 것에서 매우 복잡한 것에까지, 미생물에서 식물과 동물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유기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비슷한 체제로 복원되었다... 복잡성의 증가는 유지 비용이 더 많이 들지만 훌륭한 생존 전략이었다.(p.105)

 

생명의 진화에 대한 스파이어의 신중한 취급과 관련하여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지만, 또 다시 질문을 제기할 때이다. 윌버는 세 가지 거대한 영역들 가운데 중간 영역, 즉 생명의 영역을 어떻게 다루는가?

 

<<성, 생태, 영성>>에서 윌버는 가이아 가설을 약간 자세히 다루고―그것을 뉴에이지 연상물들로부터 분리시켜려고 노력하면서―세 가지 거대한 영역들 모두에서 모든 진화 과정들을 좌우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진화 원리들에 관한 자신의 "스무 가지 신조들"도 제시하지만, 그는 생명과학의 세부와 관련된 그 어떤 진정한 친화성도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이런 세부를 다룰 때 그의 주요한 전략은 신다윈주의적 진화관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것처럼 보인다.

 

무작위적인 사례는 이렇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에서 F.B. 살리스버리(Salisbury)까지 과학자들에 의해 수행된 계산들은 이십 억 년이 심지어 단 하나의 효소도 우연히 산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일관되게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우연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우주를 추동하고 있다. 전통적인 과학자들의 경우에 우연은 그들의 신이다. 우연이 전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우연―더하기 영원한 시간―이 우주를 산출할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시간이란 없고, 그래서 그들의 신은 그들을 비참하게 파멸시킨다. 그런 신은 죽었다. 우연은 우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우연은 우주가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은 바로 코스모스의 자기초월적 욕동이 극복하는 것이다.

 

이런 시적인 진술에서 윌버는, 진화는 오로지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무작위적인 우연 그리고 비무작위적인 선택 또는 제거의 결과―윌버는 놓친 듯 보이는 구별―라는 진화과학의 기본 개념을 오해한다. [...]

 

켄 윌버는 영성의 진화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강한 변론을 아직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창조론자들의 감성을 반영하며,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 불명료하고, 편향되어 있으며, 대단히 선택적이다. 그것은 과학에 대한 참된 신념이 부족하다.

 

불행하게도, 바로 지금까지, 윌버 자신을 포함하여, 영성적 진화관을 계속 조장하는 윌버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은 심리학자들이 지배하는 통합 공동체에서는 생물학 이론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낮다.

 

세 번째 영역: 마음/문화 또는 인지권

 

두 개의 장에서 스파이어는 "알려진 최대의 복잡성", 즉 인간과 뇌의 출현과 발달을 다룬다. 필요한 에너지와 출산 위험의 견지에서 큰 뇌를 갖는 것의 비용은 그런 독특한 기관이 제공하는 이점들에 의해 명백히 상쇄되었다. 온혈성과 결합되어 정교한 신경계는 지원받을 수 있었으며, 지능의 성장을 초래했다. 인간들은 그 어떤 다른 유기체도 할 수 없었던 정도로 물질과 에너지를 채취할 수 있었는데, 특히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그랬다.

 

그리고 물론, 문화 또는 스파이어가 부르는 대로 "집단 학습"이 가능해졌다. 문화를 통해서 인간들은 "외부의 복잡성"(책, 기계, 집 등)을 만들어내었다. 특히 지난 몇 세기 동안 인간들은 석유, 가스, 그리고 석탄에 저장된 풍부한 화석 에너지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스파이어는 역사의 주요한 결정 인자로서 에너지 사용에 집중하며, 다음과 같이 정당화한다.

 

인간의 역사에 대한 그런 접근 방식은 역사가와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을 것이다. 확실히 인간의 행동은 그저 물질과 에너지를 채취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런데 여타의 생명 형태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도 열역학 제2법칙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복잡성뿐 아니라 우리의 육체적 복잡성도 혼돈으로 빠져들지 못하게 막기를 원한다면, 규칙적으로 물질과 에너지를 계속 채취해야 한다. 이것이 인간 역사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역사 전체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동안 어떤 적절한 환경 내에서 생존하고 생식하기에 충분한 물질과 에너지에 대한 추구가 지배적인 주제였다고 주장할 것이다.(p.116)

 

최근의 인간 역사는 10,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파이어는 농업혁명과 그것의 사회적 영향(인구 증가, 사회의 위계적 조직의 증가, 자기규율에 대한 필요, 종교의 출현)을 논의한다. 인간들이 자연에 미친 순 영향은 야생동물 종들의 수가 감소한 반면에 길들여진 동물 종들의 수가 증가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실상 우리는 식량, 노동력, 또는 쾌락이라는 우리의 목적에 봉사하는 곰팡이, 식물, 그리고 동물 종들의 막대한 저장소를 만들어내었다. 인간들이 현장에 도착했던 곳마다 야생 종들은 지속적으로 멸종되어버렸다.

 

스파이어는 서양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된 다양한 지구화의 물결들을 개괄한다.

 

1. 식민화의 첫 번째 물결은 대략 500년 전에 신세계, 극동의 "발견"과 그것이 제공한 통상 기회들로 시작되었다.

2. 두 번째 물결은 산업화로 시작되었는데, 화석 에너지원의 사용을 엄청나게 심화시켰다. 그것의 여파로 과학과 기술도 번성했다.

3. 정보화의 세 번째 물결, 우리가 현재 눈 앞에서 목격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통신이 지구화되고 즉각적인 것이 되었다.

 

이 역사 시기 동안, 화석 에너지원은 한정되어 있던 반면에 에너지 사용은 끊임없이 증가했고, 그래서 확실히 음울한 전망을 낳았다.

 

가장 중요한 의문은 가까운 미래에 엔트로피[오염]는 바람직한 수준으로 계속 낮게 유지하면서 충분한 정도의 복잡성을 구성하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지라는 문제인 듯 보인다. 현재의 추정은 고무적이지 않다... 사실상 엔드게임이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작동 가능한 핵융합 반응기나 다른 비슷한 에너지원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은 우리의 미래 에너지 요구를 상당히 해결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그것에 대한 전망은 우호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인류는 재생 에너지에 기반을 둔 생활양식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p.197)

 

거대사에 대한 스파이어의 접근 방식을 요약하면, 그는 환경이 "딱 알맞을" 때마다 각각의 역사적 시대와 체제 동안 일어났던 다양한 복잡성의 형태들을 기록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아원자 입자들의 출현, 은하와 항성들의 형성, 지구 생명의 기원, 그리고 인간 문명의 확산 모두에 적용된다. 그의 해설 전체에 걸쳐 있는 특정한 초점은 거대사의 이면에 놓인 주요한 결정 인자로서 에너지 사용과 에너지 효율에 집중되는데, 이 점이 그를 거대사 분야의 다른 대부분의 저자들(셰송은 제외하고)과 구분된다.

 

윌버는 이것과 어떻게 비교되는가? 저술 경력 초기에 윌버는 <<에덴을 넘어>>(1981)라는 책에서 인간 발달과 문명 발달의 시각에서 인간 문화의 출현을 기록한다. 진 갭서(Jean Gebser)가 인간의 역사를 다섯 개의 주요한 시대(태고 시대, 마술 시대, 신화 시대, 마음 시대, 그리고 통합 시대)로 구분한 점이 윌버의 이야기의 중추을 형성했다. <<성, 생태, 영성>>에서 그는 이 이야기를 다시 채택하며, 전 시대에 걸쳐 문화적 진보에 대한 변증법적이지만 결국은 낙관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강단 세계로부터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발견할 수 없었다. 비서구적 문화들에 친숙해지기 위해 펜타곤이 <<에덴을 넘어>>을 대량으로 주문했다는 소문이 있다.

 

<<성, 생태, 영성>>에서 윌버는 상이한 지구화의 물결들―식민화, 산업화, 정보화―도 다루지만, 그의 관념론적이고 발달주의적인 입장을 고려하면, 그는 이것들을 우선 문화적 의식의 순차적 단계들과 관련시킬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표준적인 사분의 모형(four quadrant model)도 소개했는데, 그 모형은 내부/외부와 개체/집단이라는 두 개의 기본적인 이분법에 의거하여 인간의 의식과 문화를 연구할 때 고려되어야 할 네 가지 기본적인 시각들[개체 내부(의식), 개체 외부(행동), 집단 내부(문화), 집단 외부(사회, 우주)]을 구분한다.

 

사분의(四分儀)

 

이 단순하고 직관적인 모형 덕분에 윌버는 인간의 의식과 역사에 대한 모든 주요한 접근 방식들을 분류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스파이어의 거대사 해설은 두 개의 사분의(행동/사회/진화/우주)의 견지에서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나머지 두 개의 사분의(의식/문화)의 견지에서는 비교적 거의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되었듯이, 스파이어는 이런 일방성을 알고 있지만, 물질적 과정과 에너지 과정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할당함으로써 그것을 변호한다.

 

다른 한편으로, 윌버는 의식/문화의 사분의에 대해서는 강하지만, 우주론과 진화론 같은 경성 과학을 취급할 때에는 약하거나 의문시될 수 있다. 물론 그는 이것을 부정할 것이지만 말이다. (이론적으로, 통합 이론은 네 개의 모든 사분의를 포괄할 것이다).

 

실제로 무엇이 우주, 생명, 그리고 문화의 진화를 추동하는지라는 심오한 문제에 대해서 스파이어와 윌버 사이의 차이는 훨씬 더 크다. 윌버는 참신성과 복잡성의 증가의 원천으로서 에로스 같은 신비한 힘들을 계속 언급하지만, 스파이어는 과학의 자연주의적 틀 안에 기꺼이 머무른다. 절약이라는 미덕의 견지에서는 스파이어의 주장에 더 주목하라고 권고할 것이다.

 

문화적 진화와 세계 정치에 대한 윌버의 자세한 집중과 문화적 갈등-해결이라는 나선형 동역학 모형의 사용 덕분에 우리의 가장 긴급한 세계 문제들에 대해서 스파이어의 분석보다 윌버의 분석이 실제적으로 더 적절한 것이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스파이어는 인간 문명의 에너지 요구와 지속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또 다시 사회의 현재 쟁점들은 거대사가 다루는 시간의 범위에 비해 미약한 듯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최근에 생물권와 지구 기후에 대한 인간의 거대하고 흔히 부정적인 영향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시대, 인간세에 진입했다고 주장하는 일부 과학자들이 있다. 우리는 명백히 우주적 역사에 진입했다!

 

통합적 탐구의 두 분야을 비교하여 소개한 이 에세이는 인상주의적일 수밖에 없지만, 나는 이 분야들에 대해 두 진영으로부터의 관심을 자극했기를 바란다. 통합 연구는 입수 가능한 모든 지식을 통합한다는 목적을 공유하는 접근 방식들과 상호소통함으로써만 득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