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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옹프레: 오늘의 인용-바로크 자유사상의 지양으로서의 스피노자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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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성을 인정한다면 우선 [바로크 자유사상이 등장한] 모호한 이 시기에 대해서는 결국 두 기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 일관성이 발견된다. 두 철학자의 사망 시기인 1592년[몽테뉴]과 1677년[스피노자]을 잡아보자. 그 이유는? 한 사상가의 육체적 죽음은 그 사상의 진화가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몽테뉴와 스피노자의 죽음이다. 달리 말하면 몽테뉴 철학의 등장과 스피노자 철학의 출현이다. 나는 바로크 자유사상가의 사상을 이 위대한 세기에 몽테뉴의 『수상록』을 해설한 것으로 간주한다. 『에티카』의 사후 출판이 마무리되는 시점으로, 이 대단한 작품이 나름대로 근본적으로 주기적인 사상에서 바로크 자유사상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유명한 변증법적 존속과 초월이라는 개념이다. 즉 바로크 자유사상가들은 존재하지만 이해됐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유용하고, 필요하고, 불가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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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자가 존재한다. 그는 일부 바로크 자유사상가들이 방탕하는 동안 글을 쓴다. 그는 생 테브르몽의 몸 속에서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를 만나고, 주의 깊게 데카르트의 저작을 읽고, 그에 대한 책을 써서 1663년 첫 저서를 출판한다. 1670년부터 군주제에 반대하고 민주주의와 공화정을 찬성하는 책을 쓴다. 가톨릭교도들을 따르는 아이들을 위한 (성경의) 역사가 그의 정신을 혼란시키지는 않는다.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본고장 공동체의 우화를 따르는 것이 더 이상 죄가 되지도 않는다. 공동체가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조용히 렌즈를 연마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뿐 연금을 구걸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완전한 자유인이다. 그는 세상과 갈라선 신, 창조주 신, 창조된 자연과 끝장을 내는 전대미문의 책을 쓴다. 이 책이야말로 마침내 성 바울의 프리즘으로 도덕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이 사람이 바로 바루흐 스피노자다. 그의 저작은 이 탁월한 사상가의 여러 특징 중에서 프랑스 바로크 자유사상을 완성하고, 보존하며, 능가하고 실현한다. 그의 결정타, 그의 개념적인 파워는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을 격하시키고 압도한다. 그러나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에티카』와 같은 사상이 가능하도록 애썼다. 그렇게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가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지 않았고, 그가 실용적인 언어로 번역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과 주고받은 대화와 편지에는 예를 들면 데카르트나 그의 주변 인물들과 벌인 자세한 자유사상 논쟁들이 남아 있다. 심지어 보시우스(Vossius)와 생 테브르몽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와 더불어 철학적 시대가 완성되고 계몽사상의 거대한 모험이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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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셀 옹프레(Michel onfray),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Les libertins baroques)>>(곽동준 옮김, 인간사랑, 2011), pp. 3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