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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오늘의 인용-'문화적 좌파' 또는 다문화주의의 반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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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에서 로티를 인용하면서 그가―'민족적, 종교적 적개심'과 나란히―이야기한 '성적인 관습에 관한 논쟁'을 '엄청나게 부유한 사람들'이 '별로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의 원인이 되는 요인으로 언급하지 않고 생략했다. 이것은 로티가 보기에 미국 사회에 대단히 일반적인 문화의 틀을 깨는 행위에 대한 사디즘적인 적대감과 싸운다는 점에서만 가치가 있으며, 모든 방식의 불평등과 부당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물질적인 빈곤을 대중의 관심 목록에서 삭제한다는 점에서 유죄인 일종의 '문화적 좌파'를 암시하는 말이다. 로티는 '문화적 좌파'는 물질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사회적으로 혜택 받지 못한 다양한 소수 집단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과 동일선상에 둔다는 점, 그리고 삶의 방식 차이를 그 예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본다. 로티는 미국의 '문화적 좌파'가 불평등의 모든 양상을 마치 그것들이 문화적 차이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엇보다도 관용에 대한 윤리적 요구와 인권에 의해 보호받는 인간의 선택의 결과이자 증상인 것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그들을 비판한다. 그들은 모든 차이를 단지 그것이 남들과 다르다는 점에서 동등하게 칭찬할 만하며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조너선 프리드먼[...]은 로티가 비판하는 대상과 유사한 견해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을 '현대성을 결여한 현대주의자들'이라고 칭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존중할 만한 현대적 전통에 따라 현 상황을 침범하고 지금의 현실을 개조하는 데 모든 것을 거는 열성적인 사람들이지만, 그런 침범 또는 개조가 이끌 수 있는(또는 이끌어야 할) 목적도 없고 그 본질을 생각하기도 전에 목적을 없애버린다는 점에서 현대성의 원리에 어긋나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다. 그 결과 실제로 '현대성을 결여한 현대주의자들' 사이에서 대단히 유행하는 '다문화주의' 철학은 이론적으로 널리 알려진 자신의 가치, 다양한 문화의 조화로운(유쾌한?) 공존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논박한다. 의식적으로건 부지불식간에건, 목적의식이 있건 단지 태만했기 때문이건 간에 이 철학은 분리주의자들을, 즉 자신과 반대되는 경향을 지지하며, 그럼으로써 사회적 변화를 가져와야 할 힘들이 너무나 쉽게 와해해버리는 현대의 만성적인 현상을 늦추거나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인 진지한 다문화적 대화를 시도하기가 오히혀 더욱 어려워지게 한다.

 

[...] 그런 견해가 널리 퍼진 것은 현대의 지적 엘리트들이 [...] 교육자, 지도자, 교사 등의 역할을 거부하고, 또 다른 역할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즉 그들이 분리하고, 앞지르고, 직접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조종하는 전략을 수행하는 전 세계 특권층 기업가 계층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로부터 예상되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지식인 중 압도적인 다수가 그들 자신을 위해 '더 많은 공간'을 원하고 찾는다. 타인의 존재를 무관심하게 잊어버리지 않고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끼어들면 그런 공간을 확장하기는커녕 오히려 줄여버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

 

차이에 대한 새로운 무관심은 이론적으로는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를 지지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 이론이 형성하고 지지하는 정치적 실천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용어로 정의된다. 공동체의 독립과 자신이 선택한(또는 물려받은) 정체성을 공적으로 인정받을 권리에 대한 지지, 그리고 자유주의적 관용의 정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것은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대중이 찬성할 가능성이 대단히 적은 현상인 사회적 불평등을 '문화적 다양성'으로 포장해, 보편적으로 존중받고 조심스럽게 가꿀 가치가 있는 현상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언어적 수단을 통해 가난이라는 도덕적 치부를 마치 요정의 지팡이로 부리는 마법처럼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심미적인 호소로 변화시킨다.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어떠한 인정투쟁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결점 때문에 독립할 힘을 잃고 '자신'의 선택을 다른 더 강력한 자들에게 맡겨야 할 운명인 수많은 공동체를 그다지 편안하게 해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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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유행의 시대: 유동하는 현대사회의 문화(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윤태준 옮김, 오월의봄, 2013), pp. 6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