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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원회: 오늘의 인용-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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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둘러봐도 탈출구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현재 상황은 어떻게든 희망을 품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박탈해버린다. 해결책을 보유하고 있다 주장하는 자들은 조만간 환멸에 부닥치고 만다. 모든 것이 보다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는 것은, 지극히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원조 펑크족의 의식 수준으로까지 치달은 시대의 금언金言이다.

 

정치적 대의代議의 장은 폐쇄되었다. 좌左든 우右든, 떄로는 거물인 척 때로는 깨끗한 척할 뿐인 똑같은 허섭쓰레기에 불과하며, 커뮤니케이션의 최신 경향에 맞춰 그때그때 표제를 갈아치우는 매장賣場 전시대 같은 존재들이다. 아직도 투표를 하는 사람들은 순전히 항의의 표시로 표를 던지다 못해 결국에는 투표함을 박살내고픈 의도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해서 투표하는 것이 사실상 투표 자체에 대한 반감의 표출일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한다. 혅재 확인되는 그 무엇도 작금의 상황을 감당하기엔 한창 역부족이다. 대중은 침묵 속에서조차, 그를 지배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꼭두각시들보다 훨씬 성숙한 것 같다. 이주 노동자들의 거주지인 벨빌Belleville 지구의 어느 노인네도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의 연설보다는 현명한 이야기를 하신다. 사회라는 냄비의 뚜껑이 삼중으로 밀폐되어 있는 가운데, 내부의 압력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솟구쳤던 "죄다 물러나라!Que se vayan nodos!"는 절규의 망령이 지도자들 머릿속을 심각하게 휘젓기 시작한다.

[...]

현재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해결책은 없을 것이다. 우선은 반어적으로 '사회'라 불리는 환경과 제도, 개별적 세포들의 모호한 집합체에 구체적인 실체가 없기 때문이고, 나아가 공통의 경험을 위한 언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를 공유하지 않고서는 부富 또한 나눌 수 없는 법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가능성을 녹여내기 위해 계몽주의와 결부된 반세기 동안의 싸움이 필요했고, 가공할 '복지국가'를 잉태하기 위해 노동을 둘러싼 한 세기 동안의 투쟁이 필요했다. 이른바 새로운 질서를 담아낼 언어를 창출하는 투쟁이었다.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일이 전무하다. [...] 사회적 언어 속에 표명되어 있는 그 어떤 문제점들도 언어 자체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퇴직 문제', '노동 불안정 문제', '청년 문제' 그리고 '청소년 폭력 문제' 등은 그것들의 갈수록 과격해지는 행동 표출을 경찰력에만 의존해 다스리려 하는 동안  언제까지나 미해결 상태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결국엔 '현재 이상 무異常無!'를 위한 압박과 더불어 경찰력의 증강 배치만이 해결책으로 더욱 부각되어갈 것이다. [...]

 

현재 상황의 총체적인 난맥상은 도처에서 인지됨과 동시에 또한 부정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문학자가 이 문제를 나름대로 진단하고는 있지만, 매번 알아듣기 힘든 전문 용어나 주워삼기면서 결론 없는 얘기들만 뱉어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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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위원회, <<반란의 조짐>>(성귀수 옮김, 여름언덕, 2011), pp.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