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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모 피글리우치: 오늘의 에세이-트랜스인간주의가 필요하지 않는 일곱 가지 이유

 

트랜스인간주의가 필요하지 않는 이유

Why we don't need transhumanism

 

―― 마시모 피글리우치(Massimo Pigliucci)

 

최근에 줄리아는 트랜스인간주의 "운동"에 대한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얼마간 공허한 반대 의견들 가운데 몇 가지를 쉽게 일축하는 트랜스인간주의를 지지하는 훌륭한 논변을 제시했다. 그는 트랜스인간주의란 "인간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즉 우리의 몸과 마음을 변형하여 우리를 더 똑똑하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며, 잠재적으로 더 장수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추구해야 한다는 관념"이라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자신의 블로그 글을 시작했다. 그는, 트랜스인간주의가 그런 식으로 규정된다면, 문명의 새벽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트랜스인간주의자들이 옹호하는 바로 그것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런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 나의 반박을 즉시 인정했다. 사실상, 트랜스인간주의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유전공학과 "마음 업로딩(mind uploading)"(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던 간에)을 포함하는 다양한 미래주의적 기술을 통한 인간의 몸과 마음의 본원적인 교체를 조장하는 것이다.

 

줄리아는 자신이 트랜스인간주의에 대한 세 가지 주요한 반대 의견으로 간주하는 것―트랜스인간주의는 생명으로부터 의미를 박탈한다, 그것은 비인간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만이다―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리고 올바르게도 <<역사의 종말>>의 유명한 저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어휴, 지난 수십 년 동안 매우 많은 것들을 대단히 잘못 이해한 더 유명한 저술가가 있는가?) 같은 사람들에 의해 제기된 논변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거기서도 줄리아는 후쿠야마와 그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비판가들에게 전적으로 공정하지는 않다. "우리 조상들은 덜 유식했고, 더 부족주의적이었고, 덜 건강했으며, 더 단명했다. 후쿠야마는 그들의 시대에 그것들이 '본질적인 인간 본성'을 구성했다는 점을 근거로 그런 모든 성질들의 보존을 지지하는 주장을 제시했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의학, 농경, 그리고 다른 기술들을 통해서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인간의 유전적 구성을 영구히 그리고 본원적으로 바꿈으로써 인간의 운명을 개선하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후쿠야마와 트랜스인간주의에 대한 다른 비판자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전자가 아니라 후자다. 그런 반대는 단순히 인간 본성 같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정말로? 우리와 침팬지 사이에 아무런 근본적인 차이점들―정량적인 면에서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여전히 나는 최근에 침팬지와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느낌이 든 적이 결코 없다)는 점을 바탕으로, 또는 그것은 인간 조건에 대한 비극적 견해에 대한 구상이 변변치 않고 얼마간 도착적인 갈망이라는 점을 바탕으로 일축될 수 없다("우리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오래 산다면, [트랜스인간주의 비판가들이] 애호하는 시들은 쓸모없게 될 것이다").

 

우선, 줄리아의 블로그 글에서 주워 모을 것보다 더 많은 비판 유형들(그리고 수많은 비판가들)이 존재한다. [...] 이 에세이는 그것들을 하나씩 검토하는 자리가 아니고, 그래서 나는 그 대신에 내 자신의 반대 의견들을 제시할 것이다.

 

첫째, 트랜스인간주의는 무의미하다. 우리에게는 인간 조건을 개선하고 본원적으로 바꿀 기술들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하는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것은 일어날 것인데, 인간 본성(맙소사)은 꽤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라도―결과는 어처구니없다―가능한 한 많이 질병과 죽음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선호하기 때문이다.

 

둘째, 트랜스인간주의는 미래주의(futurism)(이것 자체가 과학주의의 파생물인 내가 기술낙관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한 형식이다[...])의 다른 한 판본일 뿐이다. 그리고 미래주의자들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거의 항상 엄청나게 오해하거나 인류의 실제 기술 발달에 절대적으로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세째, 개입 중인 오만과 관련된 잠재적으로 심각한 쟁점들이 있다. 나는 결코 러다이트가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가 무모하게 작동시켜 온 수많은 복잡한 체계들(경제는 말할 것도 없이, 환경과 우리 자신의 생태계가 떠오른다)을 관리하느라고 충분히 고생하고 있고, 그래서 인간 유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들이 생겨날 때, 최소한 우리는 가볍게 제압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째, 여느 다른 기술과 꼭 마찬가지로, 접근성, 공정성, 그리고 남용 방지와 관련된 심각한 쟁점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이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킬 가망이 정말로 있다면, 소수의 특권층이 통제권과 접근권을 갖는 시나리오들을 상상하거나, 또는 그 기술이 사악한 목적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방식을 상상하기는 너무나 쉽다.

 

다섯째, 우선 순위와 관련된 쟁점이 있다. 연구를 수행하는 능력 있는 과학자들의 수뿐 아니라, 과학 연구와 기술 발달에 투자할 자금의 견지에서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 목적이 인간의 고통을 경감하는 것이라면, 수백만 명을 죽이는 이미 박멸할 수 있는 질병들 같은 확실히 기술적으로 멋지지는 않는 평범한 것들을 우선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는 기근? 나는 그냥 말하고 있을 뿐이다.

 

여섯째, 단 하나의 매우 유한한(공간과 자원의 견지에서) 행성에 묶여 있으면서, 그럼에도 영원히 생식할 수 있고 그리고 살 수 있는 인류의 (잠재적으로 끔찍한) 생태학적 결과들이 있다. 계산을 해보자. 트랜스인간주의적 불멸성이 의무적 거세(당신의 동료 인간들에게 그것을 납득시켜려고 시도해보라!)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인구 과잉으로 행성의 붕괴가 일어나는 데 매우 짧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나는 존 스튜어트로부터 영감을 받은 일곱 번째 논변이 있다. 여러분은 세라 페일린이나 칼 로브 같은 인간이 영원히 살기를 정말 바라는가? 또는 그들의 "정신"이 셀 수 없이 많은 컴퓨터에 업로드되어 복제되기를 바라는가? 그것은 정말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나는 몇몇 세속주의자들이 이 논쟁과 관련하여 끌어들인 기독교적 어조의 논변들에 대한 줄리아의 당혹스러움을 공유한다. 나는 인간의 고통(또는 그 점에 대해서는 여타 종들의 고통)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의 긍정적인 효과와 관련된 테레사 수녀의 헛소리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이 트랜스인간주의자들이 관계하기를 원하는 대단히 심각한 쟁점들이 없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리고 복잡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여태까지 기록된 인류의 이력을 고려하면, 나는 이 점에 관해서도 결코 낙관주의자가 아니다.

 

운이 좋게도, 정말로 나는 미래주의자가 그랬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트랜스인간주의가 아무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운동들은 상당히 높은 정도의 자기도취에 빠진 순진한 낙관주의자들이 참여하며, 그 밖에는 대체로 무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