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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엄 하만: SR/OOO에 대한 간단한 지침

 

- 아래 글은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SR)'과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 OOO)'에 관한 간단한 지침으로서 그레이엄 하만(Graham Harman)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옮긴 것이다.

 

- 하만은 다른 블로그 글에서 "객체(object)"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한다.

 

""객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나무나 돌과 같은 재료로 이루어진 생명 없는 덩어리를 가리킨다. 이제는 그 단어를 존재하는 것―원자와 망치뿐 아니라 대학, 군대, 소망, 숫자, 다이아몬드, 강, 그리고 달―이라면 무엇이나 가리키는 것으로 재정의하자. 무엇이든 존재하는 것은 객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여러 유형과 집단의 객체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두 가지 기본 특징을 공유해야 한다. 첫째, 모든 객체는 아무튼 단일한 객체로서 통일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이름을 결코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한 군대는 많은 무기, 많은 병사, 그리고 각 병사의 많은 신체 부분을 포함하지만, 그럼에도 역사가들은 여전히 카이사르나 살라딘이 이끈 단일한 군대의 행위에 관해 이야기한다. 군사적 역사의 목적을 위해 군대의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부분들은 무관하고, 그래서 군대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로서 다루어질 수 있다. 둘째, 모든 객체는 여타의 객체들이 공유하지 않는 특정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모든 객체는 동일할 것이다. 사소한 보기 하나를 인용하면, 커피의 특징들과 성질들의 목록은 비행기나 개의 목록과 매우 다르다. 이것은 터무니없이 명백한 듯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기서 우리의 목적은 명백한 것들에 새로운 이상한 빛을 비추는 것인데, 그것만이 철학에서 수행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요점을 다시 말하면, 모든 객체는 하나의 객체로서 통일되어 있고, 또한 모든 객체는 무한히 많지는 않지만 수천 또는 수십억 가지의 성질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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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적 실재론

Speculative Realism

 

이 술어는 레이 브래시어(Ray Brassier)의 신조어였다. 2006년에 그는 단 한번의 행사를 위해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와 이에인 해밀턴 그랜트(Iain Hamiltion Grant)과 더불어 우리 둘을 한 자리에 모으겠다는 발상을 제시했는데, 그후 그 행사는 2007년 4월에 개최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이 집단을 지칭하는 좋은 술어를 고안하느라고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선 나는 항복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내 자신이 유물론자일지라도, 메이야수가 자신의 철학을 가리키는 술어인 "사변적 유물론"으로 부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행사가 열리기 몇 달 전 어느 날 브래시어가 그 술어 대신에 "사변적 실재론"을 고안했고, 나는 이것이 마음에 들었다. 결국은 그와 메이야수 둘 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술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을 상당히 좋아한다.

 

"사변적 실재론"은 엄청나게 폭넓은 술어이다. 사변적 실재론자로 간주되려면 "상관주의(correlationalism)"―모든 철학을 인간과 세계의 상호 작용에 근거를 두는(오늘날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그런 종류의 철학을 가리키는 메이야수의 술어―에 반대만 하면 될 뿐이다.

 

사변적 실재론자들은 상관주의에 어떤 잘못이 있는지에 관해서조차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하자!  예를 들면, 상관주의에 관해 메이야수가 싫어하는 바는 그것이 "유한성", 즉 어떤 종류의 절대적인 지식도 불가능하다는 관념을 신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사유의 외부에 있는 X를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 우리는 사유의 순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상관주의적 시각을 개의치 않는다.(그는 이런 곤경을 급진화하고 그것으로부터 절대적인 지식을 추출하기를 원할 뿐이다. 메이야수는 전통적인 실재론자가 아닌데, 지젝(Zizek)이 그렇듯이, 그리고 약간 덜한 정도로 바디우(Badiou)가 그렇듯이, 독일관념론이 그의 진정한 고향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상관주의의 문제를 정반대로 여긴다. 나는 유한성 부분을 개의치 않는데, 내게 그것은 불가피한 듯 보인다. 대신에 내가 싫어하는 바는 상관주의적 순환("생각되고 있는 X로 변화되지 않고서는 생각되지 않고 있는 X를 생각할 수 없다")이 타당하다는 관념이다. 나는 그것이 근거가 빈약하다고 여긴다.

 

어쨌든 사변적 실재론은, 일반적으로 대륙철학적 어휘로 작업하는 서로 다른 많은 종류의 새로운 실재론풍의 철학을 포괄하는 유용한 술어로서 살아 남았지만, 최초의 집단을 이루었던 네 사람은 후속 모임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지적 차이가 너무 클 뿐이다.

 

 

객체지향 철학

Object-Oriented Philosophy

 

이 술어는 199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나의 신조어이다.(그 전에 누군가가 이 어구를 사용했다면, 나는 모르고 있지만 내가 인식할 때 기꺼이 그 사람에게 영예를 돌릴 것이다.)

 

최초의 사변적 실재론자들 가운데 여타의 사람들은 아무도 객체지향 철학을 수행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들 모두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오히려 객체적이다.(브래시어나 메이야수의 입장보다 내 입장에 훨씬 가까운 입장을 견지하는 그랜트도 세계가 근본적으로 개별 존재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에게 이것들은 더 근본적인 포괄적 에너지의 차단과 저지를 통해 생긴다.)

 

객체지향 철학은(비록 칠 내지 팔 년 더 오래되었지만) 사변적 실재론의 아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사변적 실재론자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상관주의를 거부하는 일뿐이다.

 

객체지향 철학자이기 위해서 할 필요가 있는 일은 서로 다른 다양한 규모의 개별 존재자들이 우주의 궁극적인 질료라는 견해를 견지하는 것이다. 라투르(Latour)뿐 아니라 화이트헤드(Whitehead)도 포함된다는 점을 유념하자. 나는 라투르의 행위자와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자(그리고 아마 사회까지도)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객체"로 간주되는 그런 식으로 그 술어를 정의한다.

 

그렇지만 그 다음에 나는 이런 개별 존재자들을 그것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로 환원시킨 점에 대해 화이트헤드와 라투르 둘 다를 비판한다. 그리고 나는, 화이트헤드와 라투르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에도 이 점을 계속 유지한다. 나는 기꺼이 이 전투를 계속 수행할 것이지만, 나는 이 점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 정말 모른다. 둘 다 존재자들을 그것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로 환원시킬 뿐 아니라 그것도 전적으로 자랑스럽게 그리고 명시적으로 그렇게 한다. 사실상 둘 다 이것이 자신들의  주요한 혁신에 속한다고 여긴다.

 

요약하면, 객체지향 철학은 개인적 편차에 대해 상당한 여지를 남기는 꽤 일반적인 일련의 최소 기준들을 포함한다. 여러분은 나보다 화이트헤드에 동의하면서 여전히 객체지향 철학자일 수 있다. 내 자신의 판본은 하나뿐이 아니라 두 개의 기본 원리을 포함한다.

 

1. 서로 다른 다양한 규모의 개별 존재자들(매우 작은 쿼크와 전자들뿐 아니라)은 우주의 궁극적인 질료이다.

 

2. 이 존재자들은 무엇이든 그것들이 맺고 있는 관계들이나 심지어 모든 가능한 관계들의 총합에 의해서도 결코 완전히 규정되지 않는다. 객체들은 관계로부터 물러난다.

 

내 철학의 나머지 부분은 이 두 원리로부터 도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객체지향 존재론(Object-Oriented ontology)"이라는 관련된 술어에 관한 한, 이 술어는 2009년 7월에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안 보고스트(Ian Bogost), 레비, 그리고 나는 스티븐 샤비로(Steven Shaviro)와 바바라 스태포드(Barbara Stafford)―두 사람은 우호적인 조직내 비판가로서―와 더불어 2010년 4월 아틀란타 소재 조지아 공대에서 OOO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이 글이 두 술어 사이의 차이를 명료하게 밝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다. 나는 내 자신이 미합중국 시민이자 아이오와 주의 영주민이라고 여기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사변적 실재론자이자 객체지향 철학자로 여긴다. OOO는 더 큰 사변적 실재론 연맹 내의 "주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