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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 오늘의 인용-인본[간]주의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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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의 정치 종교가 기독교 신념을 부활시켰다면 오늘날에는 세속적 인본[간]주의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얼 데닛 같은 다윈주의 사상가들은 기독교를 맹렬히 반대하지만 그들이 품은 무신론과 인본주의는 기독교에서 파생된 것이다. 다윈주의를 옹호하는 도킨스는 인간이 그 밖의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연선택의 법칙에 지배되는 "유전자 기계"라고 하면서도 인간은 독특해서 이러한 자연법칙에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기적 복제라는 독재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지상에서 유일한 존재다." 도킨스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대어 인간의 독특성을 확신한다. 과학적 유물론과 자유의지론을 화해시킬 방법을 찾는 일에 경력의 대부분을 쏟은 데넷도 마찬가지다. 데넷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지 않은 문화권에서 성장했다면 그런 연구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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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주의 신념의 근원이 기독교임을 밝힌다고 해서 인본주의 신념의 오류가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념을 넘어 인본주의 사상의 토대 자체가 기독교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면 그 생각도 달라질 것이다. 인간이 그 밖의 동물과 전혀 다르다는 주장이 신학적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다면 그 주장은 방어할 수도 없고 사실상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근대 인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생명을 물리적 우주의 일부로 여기는 자연주의자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자연주의 철학이라면 인간이 그 밖의 동물은 가지지 못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그 밖의 동물을 지배하는 진화의 법칙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러니 계시종교가 아닌 그 무엇이 인본주의 사상의 토대일 수 있는가?

 

현대 무신론은 지적으로 조잡하다는 점에서 과거의 기독교 이단과 차별화된다. 이것은 종교에 대한 현대 무신론자들의 견해에서 가장 명백하에 드러난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억압적 부산물이라는 환원적 견해를 가졌지만 종교가 인간의 가장 깊은 열망을 표현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자 "마음 없는 세계의 마음"이었다. 실증주의자들은 기독교를 "인류 숭배의 종교"라는 우스꽝스러운 제도로 대체하려 했지만 종교가 인간의 보편적 욕구에 대한 해답이라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었다. 종교가 환상이라는 사실만 입증하면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철학자들뿐이다. 그들은 인간 정신을 진리에 주파수를 맞추는 기관으로 이해하지만 그런 개념은 다윈주의에 부합하지 않는 유사 플라톤주의적 개념이며 과학보다는 종교에 가깝다. 그러나 그것이 현대 무신론자들의 견해인 것 같다.

 

복음주의적 무신론은 세속화의 비현실성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요하다. 세속주의가 전통 종교의 신념에 약점이 있다는 의미거나 교회 및 다른 종교 기관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의미라면 세속주의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영국이 미국보다 더 세속적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 때의 세속주의는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종교가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세속주의는 자신이 배제하는 바로 그 종교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기독교 이후의 세속 사회는 자신들이 거부하는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반면 진정으로 기독교가 소멸된 사회라면 세속 사상을 형성하는 개념 자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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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그레이(John Gray), <<추악한 동맹(Black Mass)>>(추선영 옮김, 이후, 2011), pp. 26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