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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 오늘의 인용-서양의 규정 개념으로서의 역사적 목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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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서양"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워 스스로를 규정한다. 지난 세기를 풍미한 전체주의는 서양의 일부가 아니었다는 말이지만 사실 전체주의 운동은 서양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을 부활시켰다. "서양"을 규정하는 개념은 역사 속에서의 구원 추구고 서양 문명을 다른 문명과 구분짓는 특징은 민주주의나 관용의 전통이 아니라 역사에는 내재된 목적이 있다는 역사적 목적론이다. 물론 역사적 목적론 그 자체가 대량 폭력을 낳은 것은 아니다. 대량 폭력이 일어나려면 대규모의 사회적 혼란 같은 다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일어난 범죄는 필연이 아니라 역사의 온갖 우연과 개인의 결단이 빚어낸 것이었다. 게다가 서양만 유별나게 대량 살육을 자행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근대 서양은 폭력으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지난 세기에 자행된 전체주의의 폭력은 역사를 단숨에 사로잡겠다는 서양 기획의 일부였다. 21세기는 우파가 좌파에게서 혁명적 변화의 도구를 넘겨받아 그 기획을 다시 시도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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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그레이(John Gray), <<추악한 동맹(Black Mass)>>(추선영 옮김, 이후, 2011), pp. 1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