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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 오늘의 인용-장치란 무엇인가?

 

- 아래 글은 도서출판 난장에서 기획한 '에세이와 비평' 총서 첫 번째 권인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과 양창렬의 <<장치란 무엇인가?/장치학을 위한 서론>>( 2010)의 35-38쪽에 실린 부분을 옮겨 놓은 것이다.

 

- 출판사의 <기획의 말>(9-11쪽): 에세이란 "세상의 놀라움과 마주하는 인간의 존재 방식과 관련된 것"이고, 비평은 "눈 앞에 놓인 텍스트[...] 앞에 진정 마주설 것을 요청"한다.

 

- 이 책 91쪽: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목적에 따라 기능하도록 기계, 도구 따위를 그 장소에 장착함"이다. 그래서 '장치'는 각종 기계에 붙기도 하고 제도에 붙기도 한다. [...] 오늘날 장치는 법, 정치적 규약이나 서식, 군사조직, 제도나 법령은 물론이거니와 연극무대, 영화메커니즘, 설치미술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된다."

 

- 호모 사피엔스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비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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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최종 단계를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으로 정의한다 해도 그리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확실히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장치는 늘 존재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개인이 살아가면서 어떤 장치의 주조, 오염, 제어를 겪지 않을 때는 단 한 순간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과 대결할 수 있을까? 장치들과의 일상적인 맞대결에서 어떤 전략을 따라야 할까? 장치들을 단순히 파괴한다거나, 순진한 사람들이 제안하듯이 장치들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열쇠가 아니다.

 

예컨대 나는 이탈리아에 산다. 이 나라는 휴대전화(편하게 '핸드폰'으로 불린다)가 철두철미하게 개인의 몸짓이나 행동을 재주조하는 곳이다. 이곳에 살면서 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추상적인 것으로 만든 이 장치에게 참을 수 없는 증오를 품게 됐다. 어떻게 하면 핸드폰을 부수거나 정지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자들을 숙청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처벌, 감금할 수 있을지 수차례 생각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고 놀랐던 적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문제가 잘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이렇다. 분명 장치는 인간이 우연히 부딪치는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표제어로 분류하는 동물을 '인간적'이라고 간주하는 '인간화' 과정 자체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적인 것을 산출해낸 사건은 사실상 이 생명체에게 어떤 분열 같은 것을 구성한다. 이 분열은 어떤 의미에서 오이코노미아가 신의 존재와 행동 사이에 도입했던 분열과 마찬가지의 것을 재생산한다. 이 분열은 생명체를 자체에서 분리하고, 생명체를 그것이 환경과 맺는 무매개적인 관계에서 분리한다. 이 환경이란 야콥 폰 윅스킬이, 나중에는 하이데거가 들뜸테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관계가 깨지고 중단되면 생명체에 생기는 것은 권태(즉, 들뜸테와 맺는 무매개적 관계를 중단시킬 수 있는 능력)이며, 또한 존재를 존재로서 인식할 가능성이자 세계를 구성할 가능성으로서의 '열림'이다. 그렇지만 이런 가능성과 더불어 즉각적으로 장치들의 가능성도 주어지게 된다. 장치들은 '열림'을 도구, 물품, 각종 보조물, 잡동사니 등 모든 유형의 테크놀로지로 가득 채울 것이다. 장치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에게서 분리된 가장 동물적인 행동을 무화시키려 한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열림', 존재로서의 존재를 향유하고자 한다. 따라서 모든 장치의 뿌리에는 행복에 대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을 [그 자체로부터] 분리된 영역에서 포획하고 주체화하는 것이 장치에 특유한 잠재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