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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드 레일레이: 오늘의 에세이-대학의 한 풍경, 소외

 

마르크스가 옳은 점과 틀린 점

Where Marx was right, and wrong

 

―― 어모드 레일레이(Amod Lele)

 

나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많이 노출되어 자랐으며, 그리고 대체로 그 사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일 년여 동안 나는 기로에 서게 되어 학술적 작업과 비학술적 작업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나의 노동 생활을 다시 생각하였으며,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제는 내게 전적으로 참인 듯한 인상을 주는 마르크스의 통찰들 가운데 하나인 소외론으로 되돌아갔다. 보수를 받기 위해 행하는 일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정의상 그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고용주든 고객이든)를 위해 행하는 일이고 다른 누군가의 견지에서 수행된다.

 

강단이 이런 규칙에 대한 어떤 종류의 예외라고 생각하면 멋질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하고 읽고 글을 쓰며 가르키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학술 작업에 종사한다. 그런데 생각하고 읽고 글을 쓰는 댓가로 보수를 받는 연구지향적 직업에서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반드시 의미가 있지는 않은 확립된 분과학문적 경계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한다. 내 분야[종교학]의 경우에는 정확성과 논리적 엄밀성만을 높이 평가하고 과거의 위대한 사상들에 대해서는 거의 또는 전혀 무관심한 "철학자들"을 위해 글을 쓰거나, 아니면 과거의 정확한 재현에만 신경 쓰고 과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종교주의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 그 경계를 넘어가려고 시도하면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런 경계에 안주하더라도, 배우고 이해하며 흡수할 시간이 결코 있을 수 없다. 글을 쓰기 전에 더 많은 것을 읽고 배우는 데 시간이 꽤 걸리더라도, 반드시 글을 써서 출판해야 한다. 소문난 "학문의 자유"에 관해서는, 강단직에 고용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장기적으로 강단 경력을 쌓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듯 보였기에 이 블로그를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세계 전체가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내 열정과 지적인 호기심을 탐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강단 경력을 추구했던 동안 나는 심사위원회 위원들이 내 견해가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채고서 내게 생계 수단을 제공하기를 거부하기 위해 자신들의 광범위한 자의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몹시 걱정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교육이 있다. 교육은 흔히 자신의 열정과 거의 아무 관계도 없는 주제들에 관하여, 그리고 마찬가지로 흔히 아무 관심도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자주 요구되는 관료주의적 위원회 일, 대부분의 강단인들이 교육이나 연구보다도 훨씬 덜 즐기는 일은 거론하지도 않는다. 이런 세 가지 소외된 책무들 사이에서 큰 뜻을 품은 철학 또는 종교학 교수는 흔히 강단 밖에 있는 사람보다 철학에 관해 생각할 시간이 더 적다. 그리고 대다수의 경우에, 이것을 전부 행하기 위해서는 사실상 친구들과 가족을 버리고, 아무 유대도 없으며 당연히 싫어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이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운이 좋다면, 즉 최저 생계비보다 더 적은 보수를 받으며 강의를 하는 대다수의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행하는 것이다.

 

강단에 들어가는 것, 생계를 위해 글을 쓰거나 음악을 연주하려고 노력하는 것, 손으로 만든 공예품을 파는 것, 이것들은 흔히 소외를 피하고자 하는 실패한 부질없는 시도이며, 더 깊은 억압과 허위의식에 이르게 될 뿐인 시도이다. 겸임교수가 되면, 노조에 가입된 그 어떤 공장 노동자보다 훨씬 더 무자비하게 착취당한다. 그리고 근대 공장의 생산품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강단에서 행하는 일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다른 것들과 마찬자기로 대학들―60년대 급진주의자들의 세대에 의해 운영되는 지금조차도―이 소외된 자본주의적 작업 현장이라는 점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이 소외된 시장 노동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상의 자유로운 교환 장소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또 하나의 현장이다.

 

자본주의적 노동 현장을 더욱 더 경험할수록 나는 마르크스의 진단이 옳았다는 점을 더욱 더 깨닫게 된다. 마르크스가 틀린 점은 더 나은 체계에 대한 그의 예언에 있었다. 바트 어만(Bart Ehrman)은 예수를 묵시론적 예언자―심판의 날이 자신의 생전에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로 묘사한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정의가 승리하고 인간들의 참된 목적이 충족될 새로운 질서가 도래할 것이다.

 

예수와 마르크스는 틀렸다. 새로운 질서는 전혀 없었다. 그들이 죽었을 때 그들의 희망도 꺾였다. 마르크스가 글을 쓴 이후 150년 동안 희망은 충족된 적이 없었다. 또한 예수의 생애 이후 2000년 동안 희망은 충족된 적이 없었다. 예언이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면 결코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내게 이 지점이 불교가 들어오는 지점이다. 이것이 내가 부처의 사상이 마르크스의 사상보다 더 심오하다고 깨닫는 또 하나의 이유다.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가 무엇보다도 공유하는 것은 희망이라는 감각이다. 여태까지 역사가 반증해버린 희망. 반면에, 불교는 우리에게 희망에 대한 비판을 제시한다. 세계는 결코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소외와 억압 속에서 우리 자신의 고통과 주변 사람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범퍼 스티커가 표현하곤 하듯이, 희망을 버린 후에 나는 항상 기분이 훨씬 더 좋다.

 

또는, 그런 종류의 비관주의를 감당할 수 없다면, 최소한 이것을 생각하라. 마르크스는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즉 소외되지 않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그런 세상은 소외되거나 착취당하는 집단들의 영향에서 비롯될 것이라고 가정되었다―에 관해 항상 신중했다. 그럼에도 그는, 특히 소외에 가장 집중한 초기 저작에서, 모습들을 제시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소외된 자본주의적 노동의 전문화된, 기계화된 세상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가축을 기르며,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에 종사할"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 행을 설명하면서 언젠가 내 아버지는 일등석을 타고 비행하며 자기 옆에 앉은 부유한 상속녀와 마르크스에 관해 논의했었던 때를 언급했다. 그가 이 행을 그녀에게 언급했었고, 그녀는 이렇게 응대했다. "나는 지금 당장 그렇게 할 수 있었요!" 차이점은 바로 마르크스는 그저 귀족 계급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기 규정을 위한 그런 기회를 갖는 것을 보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말할 것이 있다. 주로 이십 세기 노동조합들―미국 밖에서,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증가가 가장 강했던 곳에서, 흔히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었던―의 작업 덕분에 현재 우리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우리의 소외된 경력과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삶의 일부를 자신에게 바친다. 우리의 조부모들이 얻기 위해 매우 열심히 투쟁했던 일주일에 40시간 노동하는 일자리를 용케 찾아낼 수 있다면, 주말에 우리는 확실히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비평에 종사할 수 있다. 주중에도 최소한 이것들 가운데 하나를 행할 수 있는 여러 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노동 시간은 더욱 더 길어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점에서 그 어떤 투쟁도 상황을 개선하거나 소외가 없는 유토피아에 더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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