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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에세이-브리콜라주만 있을 뿐이다

 

브리콜라주만 있을 뿐이다

There's only Bricolage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

 

2009년에 하원 의원 조 윌슨(Joe Wilson)은 오바마의 어떤 연설 도중에 "거짓말이야!"라고 소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글쎄 그는 개자식이었지만, 그럼에도 이것은 내가 이론가들이 인문학에 있어서의 "연역적 엄밀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때 갖게 되는 그런 종류의 내적 반응이다. 아무튼 사유는 단일한 전제 또는 일단의 전제들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된다는 주장이 있으며, 또는 자신은 후설 또는 하이데거 또는 바디우 또는 데리다 또는 라캉 또는 어느 누구든 특수한 사상가에 대해 정확성을 유지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확실히, 여러분은 자신의 성을 건설하기 위해 거쳤던 구성체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에는―그리고 특히 성의 경우에는!―브리콜라주만 있을 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맥락에서 표명되듯이,

 

신화적 사유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라주"에 비유했다. "그러므로 신화적 사유는 일종의 지적인 '브리콜라주'다". 프랑스어 동사 "브리콜레(bricoler)"에 대응하는 영어 낱말은 없지만, 그것은 장인에 의해 수행되는 그런 종류의 활동들을 가리킨다. "브리콜뢰르(bricoleur)"는 "잡동사니"로부터,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들로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공학자나 과학자는 사회에 의해 부과된 경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브리콜뢰르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이끌어낸다. "구조들로 사건들을 창출하는(세계를 변화시키는) 과학자와 사건들로 구조들을 창출하는 '브리콜뢰르'"

 

브리콜라주만 있을 뿐이다. 이것은 자연의 모든 차원들에서 입증된다. 바이러스들에 의해 종들 사이에서 교환된 DNA의 염기 서열들뿐 아니라, 용케 생존하는 종들도 이전 종들의 기반 위에 짜깁기된, 프랑켄슈타인에 어울리는 산물들이다. 인간 아이의 출산과 맹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들의 부분들은 결코 전적으로 협력하지는 않는다. 와인의 포도는 그저 DNA 또는 마스터플랜의 산물이 아니라,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다른 식물들, 날씨 조건, 토양의 영양분, 수분 함유량, 곤충 등의 산물이다. 동일한 유전적 혈통의 포도 유전자들도 해마다 서로 두드러지게 다르다. 뇌는 사유, 경험, 만남, 영양분,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다른 것들의 함수로서 서로 연결되는 신경세포로 이루어진 조형적 체계이다.

 

사유와 이론은 도대체 왜 달라야 하는가? 학자로서 한 특수한 사상가에 대한 당신의 정확성, 당신의 논평과 학문성은 왜 달라야 하는가? 그것은 다른 사상가와 학자들의 저작과의 다양한 만남, 경험, 듣고 본 사물들의 조각들, 이런저런 텍스트 등의 결과였다. 당신은 하이데거의 진실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당신은 이용할 수 있는 것의 결과로서 당신의 차고에서 잡동사니를 짜깁기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논리의 법칙들에 따라 단일한 전제로부터 연역된 엄밀성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당신은 실험실에서 육체의 부분들을 깁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일 뿐이었다. 자칭 "엄밀하다"고 서술하는 그런 작업은 브리콜뢰르의 단정하지 못한 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자란 토양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타의 포도와 대조적으로 나는, 나 혼자만이 완전히 자라서 스스로를 규정한 포도다!"라고 말하는 포도다.

 

그런데 이것은 항상 거짓말이며, 수학자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 어떤 아폴론적인 질서 아래에서도 굉음을 내는 우연성의 다양체가 항상 존재한다. 자신의 차고에서 발견되는 재료들로부터 짜집기되지 않는 존재, 사유, 이론은 전혀 없다. 그것과 관련하여 정직해지는 편이 낫다. 뻔뻔한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에 대해 터무니없이 무지한 사람도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의 방법의 순수성과 엄밀성을 트집 잡는 사람들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묻는 수고를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들은 관리적 지위 또는 행정적 지위를 꿈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혼란을 지우고 싶어한다. 그들은 세계와 그 속의 모든 것의 우연성을 혐오한다.

 

브리콜뢰르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첫째, 브리콜뢰르는 이용할 수 있는 재료들로 작업한다. 인지적으로, 물리적으로, 그리고 정동적으로 브리클뢰르는 기묘한 모양의 나무 더미, 나무에 박힌 녹슨 못들, 어떤 강력 접착 테이프를 갖고 있으며, 그의 후원에는 여러 바위와 모래가 있다. 얼마나 달라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누구나 작업해야 할 유일한 수단이다. 자기 주변에 존재하는 영양분과 준거들, 그리고 재료들. 개새끼만이 그들은 이것을 사용해야 했었다거나 또는 저것을 참조해야 했었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 개새끼인 까닭은 무엇이든 그것이 처해 있는 하부구조와 이용할 수 있는 재료들―인지적, 물질적, 그리고 정동적―로 작업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전능과 전지라는 약간 이상한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개새끼들이 존재하지만, 그들도 브리콜뢰르들이다. 그들은 잊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브리콜뢰르는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브리콜뢰르는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자신의 작업의 마지막 기획에 대한 확신이 없는 우발적인 형식으로 작업한다. 확실히 그는 목적이 있지만, 기묘하게도 그 목적은 이용할 수 있는 재료로 작업함에 따라 변한다. 작업 수단으로서 이런 인지적인, 정동적인, 그리고 물질적인 것들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브리콜뢰르는 어떻게든 유지되거나 지속되는 방식으로 이런 이질적인 재료들을 짜깁기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그의 작업은 자신에게 놀라운 일이고 관련된 모든 재료들의 수정을 필요로 한다. 이용할 수 있는 재료들로 작업하면서 그는 그것들에 새로운 형상을 부여하고, 진화가 이전 판본들의 위장에 바탕을 두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것들을 짜깁기하며, 그리고 사물들이 전적으로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점을 깨닫는다. 브리콜뢰르는 괴물을 만들었다. 그는 라캉 또는 바디우 또는 브라이도티 또는 헤겔에서 시작하였지만, 몇 조각의 나무를 깎고, 여기서 강력 접착 테이프를 얼마간 사용하고, 저기서 녹슨 못 몇 개를 펴며, 그리고 아무튼 헤겔과 들뢰즈를 끼워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원래 구조가 네 발로 걷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중력이 전립선 문제들을 일으킬지라도, 그리고 뇌/두개골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아이 출산이 난처한 일일지라도, 어쨌든 브리콜뢰르는 이 괴물을 똑바로 걷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브리콜라주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한 가지 이유다. 브리콜뢰르는 딱 들어맞지 않은 것을 뒤섞음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브리콜뢰르는 알튀세르와 데리다와 라캉과 이리가레이와 푸코와 루만과 브랜덤과 라뤼엘을 원한다. 그것은 그들의 쓰레기 더미 속에 있던 질료였다. 또한 브리콜뢰르는 나쁜 영화와 텔레비전 쇼들을 쓰레기 더미에 던져 넣었고, 술집에서 무작위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자랄 때 양친 가운데 한 사람으로부터 매를 맞았으며, 그리고 어떤 시간 제약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그는 그런 것들로 작업해야 했었다. 아무튼 브리콜뢰르는 그것들 모두를 뒤섞어야 한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독감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아무 문제도 없다. 브리콜라주에서는 바이러스들도 재료가 될 수 있다. 어쨌든, 깎기, 맞추기, 테이프 붙이기, 그리고 끼우기를 통해서 브리콜뢰르는 지탱할 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낸다... 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브리콜뢰르의 두 번째 특징이다. 확실히 그는 목적 또는 목표를 갖고 시작한다. 그런데 프랑켄슈타인도 그랬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이 재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피조물은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브리콜뢰르는 나름의 목적을 갖고 시작하지만, 그가 관여한 구성체가 자체의 "생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재빨리 알아챈다. 브리콜뢰르는 자신의 작품에 깜짝 놀라고, 자신이 계획한 것들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재료인 쓰레기 더미가 좌우하는 목적과 목표를 발견할 용의가 있는 수선공이다. 우리는 모두 브리콜뢰르들이지만, 그 점과 관련하여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정직하고 관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