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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탈리스: 오피니언-철학은 아직 죽지 않았다

 

철학은 아직 죽지 않았다

 

형이상학을 대체했기는 커녕 과학은 혼돈 상태에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 아인슈타인은 그럴 것이라고 예견했다

 

―― 레이먼드 탈리스(Raymond Tallis)

 

2010년에 스티븐 호킹은 <<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철학이 "과학, 특히 물리학의 현대적 발달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에 철학은 "죽었다"고 공표했다. 그는 윤리학, 정치 이론, 또는 미학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형이상학, 즉 자연―공간과 시간, 세계의 근본 질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를 열망하는 철학 분야를 의미했다. 철학자들이 진정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안락의자와 미묘한 논변들을 버려야 하고, 수학에 대해 알아야 하며, 물리학자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견해는 영어권 세계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는다. 형이상학은 자연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과학주의(scientism)"라는 비난을 "영광의 증표"로 서술하는 브리스톨 대학의 철학자 제임스 래디먼(James Ladyman)은 결코 단발적인 사례가 아니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탐구의 책임을 물리학자들에게 넘겨주는 더 나쁜 시기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기초물리학은 형이상학적 혼돈 상태에 처해 있으며 도움이 필요하다. 그것의 두 가지 거대 이론, 일반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거의 40년 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다. 끈 이론 같은 그것들을 통일하려는 노력들은 수학적으로 독창적이지만 그것과 관련하여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잘 알려져 있다. 더 잘 유지되는 비밀은 양자역학의 핵심에 양자론을 확립하고 확증한 바로 그 측정들이 틀림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백히 예증하는 충격적인 역설―궁극적으로 불확정성 원리에서 비롯되는 이른바 측정 문제―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물리학의 철학자 데이비드 월리스(David Wallace)는 이것이 세계의 수를 엄청나게 늘림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을 정도로 양자역학을 비정합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부 문제들 외에 물리학은 의식이 있는 존재자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압도적인 대다수의 신경 충격들이 의식적이지 않는 반면에, (물리적으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어떤 신경 충격들은 (스스로 또는 세계에 관해) 의식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설명할 길이 없다는 이유 때문만으로도, 일반적으로 의식을 뇌 속에서의 활동과 동일시함으로써 의식을 물질적 세계에 끼워맞추려는 시도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요약하면, 물리학은 물질이 물질적 객체들(물리학자들 같은)에 나타나는 기묘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물리학은 시간에 잘못 대처한다. 최근에 출판된 책 <<다시 태어난 시간(Time Reborn)>>에서 물리학자 리 스몰린은 물리학의 위기를 물리학이 시간의 근본적인 실재성을 인식하지 못한 점과 연결시킨다. 물리학의 수학적 응시가 변화를 응결시키기 때문에 물리학은 시간을 상실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시제화된 시간, 기억되거나 후회되는 과거와 기대되거나 두려운 미래 사이의 차이는 특히 규정하기 힘들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을 괴롭혔다. 유명한 어떤 대화에서 그는 현재 시제, "지금"이 "과학의 영역 바로 밖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한탄했다.

 

양자 진공 속에서의 자발적 요동 같은 의심스러운 관념들, 음의 에너지로서의 중력에 관한 관념, 그리고 숨어서 창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자연 법칙들이라는 해명할 수 없는 공짜 선물에 의존하는, 우주가 어떻게 무에서 비롯되었는지 설명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은 수학적 정교함 아래에 놓여 있는 개념적 혼동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그 안에서 과학적 탐구들이 수행되는 보이지 않는 틀들에 대해 본원적으로 재검토할 긴급한 필요성을 예증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있는 지점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알기 위해 수학에서 물러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버릴 필요가 있다.

 

아마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10차원에 이르는 공간에 의존하고, 정체성도 소재지도 없는 기본 입자 같은 관념들에 의존하는 과학적 세계상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 경험을 연결하는지에 관해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수학적 묘사들이 우리 세계의 실재를 어느 정도 포착하는지―그리고 "실재"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같은 더 큰 의문들을 틀림없이 제기할 것이다. 물리학자들의 세계상의 비포괄성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입 닥치고 계산해!"라는 부정적인 태도는 적절하지 못할 뿐이다. 물리학자 닐 튜록(Neil Turok)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과학을 우리 인류와 연결하고,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둘 다의 시야를 높일 때이다". 이것은 아직 죽지 않은 철학을 위한 일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