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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드워킨: 오늘의 인용-종교적 태도(종교적 무신론)의 형이상학적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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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을 종교적 태도로 간주해야 하는가? 나는 알맞게 추상적이고 전반적인 설명을 제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종교적 태도는 가치의 완전한 독립적인 실재성을 수용한다. 그것은 가치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판단의 객관적 진실성을 수용한다. 첫 번째 판단은 인간의 삶이 객관적인 의미 또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여긴다.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성공적인 삶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선천적이고 불가피한 책임이 있다. 성공적인 삶이란 잘 사는 것, 타인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수용하는 것―그저 어쩌다 보니 이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자체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을 의미한다.

 

두 번째 판단은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우주 전체와 그것의 모든 부분들 속의 우주―은 그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숭고하다―고유한 가치와 놀라움을 지닌 것―고 여긴다. 이런 두 가지 포괄적인 가치 판단은 공히 인간의 삶의 두 가지 차원―생물학적 차원과 전기적 차원―에 내재하는 고유한 가치를 선언한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인데, 우리는 물리적 존재자이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의 물리적 삶의 현장이고 자양분이다. 우리는 자연과 구분되는 존재자들인데, 우리는 스스로를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자로서 의식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만들어낼지 공동으로 결정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는 그런 두 가지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 많은 유신론자들에게 종교는, 예를 들면, 예배의 의무도 포함한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 가치―삶(생명)의 고유한 의미와 자연의 고유한 아름다움―를 삶(생명)에 대한 전적으로 종교적인 태도의 패러다임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것들은 자신의 삶의 나머지 부분에서 격리시킬 수 있는 신념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격 전체에 관여한다. 그것들은 경험에 스며든다. 그것들은 긍지, 자책, 그리고 전율을 생성한다. 신비는 그런 전율의 중요한 일부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처럼, 분노처럼, 희망, 야심, 질투처럼, 다른 모든 본능적인 열망과 충동처럼, [종교]는 어떤 다른 것으로부터도 합리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없는 매혹을 삶에 덧붙인다.

 

매혹은 덧없고 죽어 있는 듯 보이는 것에 내재하는 초월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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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널드 드워킨(Ronald Dworkin), <<신 없는 종교(Religion Without God)>>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