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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선언-자연주의와 유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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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철학의 주요한 실수는 자연주의를 거부해버린 점이었다. 거의 예외 없이, 19세기 이래로 대륙철학은 16세기에 시작되었던 자연주의적 혁명을 거부했다. 자연―말하자면, 물질성과 작용적 인과관계―을 존재의 기반으로 택하는 대신에, 대륙철학은 거듭해서 자연주의적 혁명에 대한 반동에 근거하는 몽매주의적 태도―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주체 또는 체험(현상학),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정신(헤겔),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경제(마르크스),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기표(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권력(푸코),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역사(가다머), 존재의 기반으로서의 텍스트 등―를 취했다. 권력에의 의지와 생의 약동을 불러일으키는 낭만주의적 자연관들도 있다.

 

프로이트적 견지에서, 자연과 물질성의 자기애적 상처에 대한 매우 많은 대응들이 있다. 주체, 체험, 역사, 지향성, 기표, 텍스트, 또는 권력이 자연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물질성이 이런 것들 모두를 설명한다. 이런 것들이 자연적 현상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불태워질 만하다. 핵심은 이런 다른 정향들이 자연적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이런 것들을 자연적 세계의 기반으로 잘못 간주했다―역으로 간주하는 대신에―는 점이다.

 

자연주의와 유물론에 대한 이런 거부가 인문학에 의해 자행된 대대적인 반동 형성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어렵다. 한편으로, 여전히 인문학은 신학적 편견에 시달리고 있으며, 자연주의와 유물론이 예시하는 인간의 특권 또는 인간 예외주의의 축출을 두려워한다. 인간이라는 대형 유인원들은 인간들이 다른 존재자들로 둘러싸인 우연한 존재자들이라는 생각을 견지할 수 없으며, 그리고 자기애에 사로잡혀 여타의 모든 것이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인간들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품을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인문학은 자체의 탐구 영역을 자연과학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을 먹고 있다. 인문학자들은 물리학, 생물학, 화학이 자신들의 작업을 훔쳐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전형적인 자기애적 형식으로, 인문학자들은 자신들이 탐구하는 바에 특정한 것―주체, 정치, 텍스트, 기표, 문화, 체험, 권력에의 의지, 생의 약동 등―을 다른 모든 것의 기반이라는 점을  논증하려고 노력한다. 인문학자들은 당대의 진실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한다.

 

그런데 문제의 진실[...]은 자연주의와 유물론이 오늘날 유일하게 신뢰할 만한 철학적 입장들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유가 기표, 텍스트, 수사법, 문화, 권력, 역사, 또는 체험의 견지에서 존재를 설명하고 있다면, 그 사유는 불태워질 만하다. 어떤 사유가 인간들은 세계에서 생존하고 생식하도록 진화되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그 사유는 불태워질 만하다. 그런 사유는, 인간의 현존은 우연적인 것이고 인간은 세 종의 대형 유원인들 가운데 세 번째일 뿐이라는 사실의 자기애적 상처에 대한 반동 형성이다.

 

이것은 인문학자들이 말한 것이 전적으로 무용하다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존재에 대한 신학적 관념을 비롯하여 모든 것은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 바울, 그리고 부처에도 약간의 진실이 있다. 무엇보다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간은 동물이 아니라는 관념, 아무튼 세계는 인간들과 문화에 의존한다는 관념, 그리고 아무튼 인간들은 지식과 초월성 같은 목적이 있다는 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행해야 하는 것은 체험, 기표, 문화, 권력 등에 관한 주장들 전체를 자연주의적 견지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여러분은 코페르니쿠스, 다윈, 프로이트, 그리고 신경학의 자기애적 상처들에 맞서는 또 하나의 반동에 참여하는 대신에 실제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자기애적 부정에 시달리는 호교론자로 취급당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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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