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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오늘의 인용-현대의 인간쓰레기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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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양산은 [...] 현대 산업의 두 분야에서 특히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분야 중 첫 번째 분야의 분명한 기능은 사회질서의 생산과 재생산이었다. 어떤 모델의 질서든 선별적이며, 인간이라는 원료 중 새로운 질서에 부적합한 부분들, 즉 어떠한 것이든 틈새를 메울 수 없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부분들은 잘라내고, 다듬고, 분리하고 격리하며, 쫓아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질서 구축 과정의 다른 쪽 끝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이 '쓸모 있는' 제품과 구분되는 '쓰레기'로 나타난다.

 

방대한 양의 인간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쏟아내는 것으로 알려진 두 번째 분야는 경제 발전이었다 ―― 이것은 이번에는 겨우 인간적 생존을 이어가는 몇 가지 방법과 수단의 무효화와 해체 그리고 결국에는 제거를 요구한다. 그러한 생계유지 방법으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생산성과 수익성의 기준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평가 절하된 삶의 형태를 영위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제 활동을 위한 새로운, 점점 더 유연해지고 영리해지는 배치 과정에서 집단으로 수용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적 배치가 적법한 것/의무적인 것으로 만든 생계수단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하는 한편 이제 가치가 떨어진 정통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들은 경제 발전의 쓰레기가 된다.

 

하지만 인간쓰레기가 집적되면서 파괴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결과는 현대사의 대부분 동안 현대의 또 다른 혁신, 즉 폐기물 처리 산업 덕분에 그나마 완화되고, 상쇄되고, 또는 적어도 경감될 수 있었다. 이 산업은 지구의 큰 부분이 '인류의' 모든 '잉여', 즉 현대화된 영역들에서 양산된 인간쓰레기들을 싣고 와서 쏟아낸 다음 오염을 제거하는 폐기장이 되었기 때문에 번성하고 있다 ――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가 연소와 폭발의 위험을 모면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지금 그러한 폐기 장소가 바닥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전 지구로 확산된 현대적 생활양식의 놀라운 성공 때문이다[...]. 폐기 장소는 점점 더 공급이 달리고 있다. 인간쓰레기의 양산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오히려 지구화 과정 덕분에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폐기물 처리 산업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현대의 전통이 되어버린 이러한 인간쓰레기 처리 방식들은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으며, 세로운 방식은 작동은커녕 고안되지도 않았다. 전 세계적 무질서의 단층선을 따라 인간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최초의 신호들은 자가 연소와 금방 폭발할 듯한 징후들로 치닫는 경향을 배가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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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 <<리퀴드 러브: 사랑하지 않을 권리>>(권태우, 조형준 공역, 새물결, 2013), pp. 2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