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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제임스: 오늘의 인용-시간성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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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유한한 육체적 시간성(또는 객체적/기계적 시간성)과 무한한 가속적인 사이버정보 시간성 사이에서 분열되는 유기체이다. 이런 무한히 빠른 디지털 시간성은 우리 자신의 신경세포적 시간성보다 속도가 빠르고, 그래서 시간성을 생성하는 인지 능력과 시간에 따른 사건들을 처리하는 능력을 능가한다. 전자의 시간성은 후자의 시간성보다 속도가 빠르며, 우리는 이런 두 가지 시간성 모두에 포획되어 있다. 비포(Bifo)[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erardi)]의 경우에, 이것은 물리적인 물질적 노동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병합된 사회적 생태에서의 삶의 결과로서 자연적인 소진(또는 피로)를 낳을 수 있다.

[...]

내가 어떤 일을 행하고 있다면, 나는 다른 일을 행할 수 없다. 내가 이런저런 정보에 집중하고 있다면, 나는 다른 정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나의 하루가 노동으로 포화되어 나의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다면, 나는 반란을 위한 에너지가 남지 않게 된다.

 

레비(Levi)가 시사하듯이, 시간정치적 가속화와 관심경제의 이런 물질현상학적 효과들은 권력이 생리학적 층위와 신경학적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권력의 해부학'이라는 푸코의 관념을 취하여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권력은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이며, 신경학적이다. 또한 그것은 최종적으로 허위 의식에 바탕을 둔 이데올로기 이론들에 대한 필요와 관련될 것이다. 이것은 교육적 작업이 더 이상 정치적인 고려 사항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인 프롤레타리아트(자체적으로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의식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혼동 상태에 있다고 여기는 이론들 자체가 훨씬 더 단순하고, 그래서 훨씬 더 만연하는 문제를 혼동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산다. 노동자가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가 우파 대중영합주의 정당에 투표한다면[...], 이것은 그가 어리석기 때문도 아니며, 부호 계급이 현실 세계와 어떤 망상적 세계 사이에 이데올로기적(즉, 인식적) 베일을 삽입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조작했기 때문도 아니다.

 

노동자가 육체를 매개로 하는 시간성과 탈육화하는 디지털 시간성에 대한 몰입을 매개로 하는 시간성에서 조작하면서 하루에 8시간 노동을 하며, 그리고 거의 영구적인 수준의 만성 불안을 일으키는, 진화된 주의집중 능력의 만성적인 자극 과잉을 겪어야 하는 한편, 적절히 먹지 못한다면[...], 그가 당대의 정치적 조건과 경제적 조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위한 시간이 없다! 만성적인 자극 과잉과 영양 부족은 그의 뇌가 소진되고, 녹초가 되며, 그래서 그는 <<자본>>이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야 된다.

 

그러므로 대중영합주의 정당이 등장하여 그의 앙심, 그의 피로를 포착하는 설익은 거짓 공약을 제시할 수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 과두지배 계급(물론 그 정당이 속하는)에 대한 그의 좌절감을 흉내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파와 우파 대중영합주의의 수월한 해결책들은 이데올로기적 혼동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저 희생양으로 삼게 될 집단을 지적하고 공약을 쉽게 표현하는, 즉시 소화할 수 있는 감정적인 메시지로 제시된다. 정당 x는 신뢰할 만한 정책이 없으며, 그 정당의 승리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일 뿐이라고 정치적 계급들이 선언하는 것은 전적으로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바로 정치란 [...] 육체 뒤를 좇는 어떤 영역이 아니라 육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망상적인 믿음의 구조(이데올로기)들이 존재한다면, 그것들이 살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밖에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은 탈육화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그것 자체가 당대의 파괴적인 망상들 가운데 전형적인 것이다. 마르크스와 더불어, 그것은 시간이란 실존과 투쟁의 차원이라고 거듭 주장하는 것이고, 시간이란 항상 공간성이기도 한 육체의 시간성이라고 상기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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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런 제임스(Arran J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