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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걸: 오늘의 인용-현대(예술)의 낯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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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라고 우리가 이름 붙인 시기는 그 시간을 살고 있는 당사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현대는 인류가 구성해온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렸다.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표현주의, 추상예술, 무조음악, 설치미술, 반연극, 반소설, 부조리극, 모더니즘, 언어철학 등의 혁명적이고 낯선 관념들과 더불어 현대는 시작된다.

 

이런 측면으로 보자면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현대인으로서의 삶을 살아본 적이 없고 현대인이 될 가능성도 없다. 현대를 물들이고 있는 새로운 사유 양식과 과학 그리고 세계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이다.

 

현대를 가장 크게 특징짓는 무의식적인 정조는 무의미와 절망이다. 현대인이 처한 이 절망적 상황은 세계관으로써의 실존주의에 가장 잘 나타난다. 1990년대에 실존주의가 서구사회를 물들인 이래 거기로부터 자유로운 사유 양식이나 세계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대 예술은 19세기 말에 이미 세잔에게서 출발했지만 결국 모든 경향은 실존주의에서 종합되고 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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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는 인간 존재가 부조리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세계와 그 안에 속한 나의 존재 의미를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세계는 침묵한다. 인간은 의미 있는 질서 속에 자기 자신을 가져다놓고자 노력하지만 그러한 의미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부조리이다. 부조리는 의미에 대한 인간의 요구와 침묵하는 세계와의 대립이다.

 

현대 예술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한쪽에 침묵하는 세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의미를 원하는 인간이 있다. 인간 조건의 이러한 측면에 부딪힌 예술가들은 결국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하나는 침묵하는 세계를 무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미를 요구하는 스스로의 지성을 잠재우는 것이다. 현대 예술의 경향이 아무리 다양하고 그 실험적 시도가 제아무리 복잡하다 해도, 만약 그것이 의미 있는 현대 예술이라면 이 두 가지 중 하나의 경향에 속하게 마련이다. 삶의 무의미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하는 실존주의는 우주와 삶의 의미에 대한 전통적인 해명의 붕괴를 한 축으로 하고, 증대된 자의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다른 한 축으로 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와 대립하는 타자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자기 자신으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대립은 방법론적으로 해소되며 대립의 긴장은 유희로 바뀐다. 이것은 타자와의 일치를 포기하고 자기 충족을 택하는 길이다. 그러나 이 경우 타자를 대신하는 것은 진정한 실재라기보다는 가공적 세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대립의 극복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주변 모든 것의 '탈가치화'이고 다른 하나는 '흥미의 추구'이다. 말한 바와 같이 부조리의 해소는 자아를 지우거나 세계를 지워야만 가능하다. 세계를 지운 사람들은 신의 자리에 스스로를 가져다놓은 셈이다. 이들은 세계를 자신의 인식 대상 아래에 놓고 모든 것을 평가절하 한다. 스스로 신이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와 창조의 의미는 스스로가 부여한 것이 된다. 물론 행위와 창조를 위한 기회는 세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존중되는 것은 고유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제공되는 기회 때문이다. 연속적으로 교체되는 가공의 세계에 자기 자신을 몰아넣음으로써 부조리를 해소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을 향한 현대 예술의 장난스러운 시도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의미와 무의미가 뒤섞여 어느 것이 진정한 의미인지 혼란스러울 때, 아니면 모든 것이 무차별적인 무의미성을 가질 때, 삶의 무의미와 덧없음을 잊게 해주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은 언제라도 환영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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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중걸, <<서양미술사 철학으로 읽기: 예술의 형이상학적 해명>>(한권의책, 2013), pp.2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