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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에세이-우주, 생명, 그리고 마음의 기원

  

생명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마음은? 우주는? 우리는 도대체 알 수가 있는가?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오늘 나는 어떤 종류들의 의문들이 가설과 경험적 검증에 바탕을 둔 통상적인 과학적 설명 방법에 위협적인 도전을 제기하는 방식들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싶다. 주제는 방대하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나는 그 논의를 (최소한) 세 부분으로 나눌 것이다. 과학적 방법에 도전을 제기하는 의문들이 많이 있겠지만(예를 들면, 도덕성과 이타주의에 관한 많이 논의되는 의문들), 나는 "세 가지 기원 문제들"로 묶을 수 있는 트리오에 관심이 있다.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이든 그것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 아무 성공의 기약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평생을 채울 수 있다. 사실상, 무엇이든 이 의문들 가운데 어느 것에 대답하는 데 있어서의 성공을 측정하는 방법이 이미 도전의 일부이다. 그것들 각각은 상이한 조작 원리들과 과학적 방법론을 갖춘 상이한 연구 영역들을 동원한다. 그렇지만, 공통점들이 존재하며, 그것들이 오늘 그리고 이어지는 블로그 글에서 내가 다루는 것이다. [...]

 

첫번째 공통점은, 이 세 가지 의문들이 과학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주, 생명, 그리고 마음의 기원은 신의 작업의 결과, 초자연적 개입의 산물로 여겨졌다. 어떤 신 또는 신들 때문이었는지는 특수한 신앙에 의존했다(그리고 여전히 세계 인구의 대다수에게 그렇다). 차이점들은 제쳐놓고, 어떤 종교에서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자만이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는 우주를 창조할 수 있었고, 어떤 불멸의 존재자만이 생명을 창조할 능력이 있었으며, 그리고 어떤 전지적인 능력자만이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지능과 존재 의식을 부여할 수 있었다.

 

자연적 과정들과의 대면은 직접적이다. 자연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고, 생물체들은 불멸이 아니며, 아무도 전지걱이지 않거나 전지적일 수 없다. [...]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자들이 신의 개입에 호소하지 않은 채 그런 의문들에 대해 대답할 때가 가까워졌다―또는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진술할 때 그들이 대단한 저항을 만나는 것은 결코 놀랍지 않다. 과학적 관점에 따르면, 우주, 생명, 그리고 마음의 기원은 물질적 법칙과 원리들을 따르는 자연적 과정들이다. 그것들의 복잡성과 현재 우리 대답들의 결여가 그런 의문들은 과학의 범위를 전적으로 넘어서거나, 또는 그런 의문들은 종교적 믿음을 통해서만 다루어질 수 있다고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무지는 앎에 대한 전제 조건이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앎에 이르는 행로이다.

 

그 의문을 서술하는 적절한 방식은 과학이 세 가지 기원에 대한 대답들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과학이 그것들에 대답하는데 있어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일 것이다. 과학은 그 길의 일부만 갈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까닭을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쉬운" 의문일 생명의 기원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결코 세부 사항들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무생물에서 생물로의 전환은 원시 지구에서 일어났던 점점 더 복잡해진 화학 반응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듯 보인다. 어느 시점에 화학 반응들의 연결망들이 자기충족적으로 되었고, 보호막 안에 부분적으로 격리된 것들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고 얼마간 효율적으로 자체의 사본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대략 35억 년 전에(또는 훨씬 더 전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게다가, 생명을 향한 유일한 생화학적 경로가 존재한다―나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는 공식적인 증명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생명이 정확히 어떻게 지구에서 출현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우리는 원시 지구에 널리 퍼진 조건을 고려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고안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최소한 지구에서 또는 저 바깥의 어느 다른 행성 무대에서 생명이 출현했던 바로 그 방식(또는 방식들, 왜냐하면 생명이 한 번 이상 발생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으로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의문은 과학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 이것은 과학이 우리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비록 우리의 이해가 필연적으로 제한적일지라도, 우리는 오직 과학을 통해서 생명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어느 정도 통제되는 실험실에서 조건과 화학 반응들을 흉내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 가지 기원 문제들 가운데 생명의 기원이 여전히 가장 다루기 쉽다.

 

우주의 기원이나 마음의 기원과 대조적으로 생명의 기원은 우리가 외부에서 내부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하여 쉬운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그것을 세 가지 의문들 가운데 "가장 쉬운" 것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라욜라 소재 스크립스 연구소의 제럴드 조이스 같은 분자생물학자들과 특히 하버드 대학의 노벨상 수상자 잭 조스탁은 생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두드러진 진전을 이루고 있다. 그들은 RNA와 DNA를 조작하여 그것들이 생명의 게임을 발제하도록, 즉 진화론이 지시하는 대로 환경적 압력에 반응하고 적응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그들은 최소한의 생명 체계를 탐색하기 위해 살아 있는 세포들에서 세포 구조물과 유전자들을 제거할 수 있다. 독일의 귄터 폰 키에드로프스키는 자기복제 능력을 나타내는 자기촉매적인 화학적 집합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

 

이 실험들은 아직 실험실에서 생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확실히 올바른 방향으로의 진전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생명이 정확히 어떻게 출현했는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과학이 이해를 향한 유일한 행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