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제럴드 코헨: 오늘의 인용-공동체적 호혜성 대 시장적 호혜성

 

1. 아래의 글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자 제럴드 코헨(Gerald A. Cohen, 1941-2009)의 <<사회주의 어때요?(Why Not Socialism?)>>(2009) 39-45쪽을 옮겨 놓은 것이다.

 

2. 이 책에서 코헨은, 사회주의의 두 가지 핵심 원리, 평등주의와 공동체 정신을 간략히 살펴보고, 그런 사회주의적 이상이 바람직하며 실행가능한지를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탐욕과 공포에 의거하여 작동하는 자본주의적 시장사회에서 관대함을 바탕으로 협력과 호혜성에 의거하는 사회주의적 시장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한다.

 

3. 뒷표지에 실린 소개글을 옮겨 놓는다.

 

"사회주의는 바람직한가? 그것은 가능한가? 이 책에서 세계의 선도적인 정치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사회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도덕적 사례를 제시하고 사회주의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은 과장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G. A. 코헨이 특별히 언급하듯이,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자처럼 행동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캠핑 여행에서 우리는 우리가 우연히 잡은 고기에 대해 서로에게 대가를 청구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캠핑객들은 그저 얻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라 평등과 공동체의 정신으로 서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 사회주의적 규범이 전사회적으로 바람직할 것인가? 왜 안 되겠는가? 전체 사회는 캠핑 여행과 다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똑같이 배려할 때 그것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바람직하더라도,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한다. 코헨은 사회주의에 대한 가장 큰 걸림돌은, 흔히 주장되듯이, 인간의 완고한 이기심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존재하는 인간의 관대함을 이용하는 명백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수단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시장에 의존한다. 그러나 시장의 지배를 제한하는 방법은 많은데,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 인류가 “인간 발전의 약탈적 단계를 극복하고 그것을 넘어 나아간” 사회주의 사회를 향하여 우리를 움직일 수 있는 바람직한 변화들이 있다."

 

――――――――――――――――――

 

"공동체적 호혜성은,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내 용역을 필요로 하거나 원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에게 용역을 제공하고,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당신이 나에게 용역을 제공하는 반(反)시장적 원리이다. 공동체적 호혜성은 시장적 호혜성과 동일한 것이 아닌데, 시장은 동료 인간들에 대한 책임과 그들에 의해 용역을 제공받는 동안 그들에게 용역을 제공하고 싶은 욕망에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 보상에 의거하여 생산적 기여를 고무하기 때문이다. 시장사회에서 생산 활동에 대한 즉각적인 동기는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탐욕과 공포의 어떤 혼합인데, 혼합 비율은 한 사람의 시장적 지위와 개인적 성격의 세부에 따라 변한다. 사람들이 다른 동기들에 고무되어 시장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참이지만, 시장이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탐욕과 공포라는 동기이고, 그것에는 자기 가족을 위한 탐욕과 자기 가족의 안전에 대한 공포가 포함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자기 자신만의 이해관계보다 더 넓을 때에도, 자신과 대등한 지위에 있는 시장참여자들을 부에 대한 가능한 원천으로, 그리고 자신의 성공에 대한 위협으로 주로 여긴다는 점에서 시장적 태도는 탐욕스럽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끔찍한 방식들이지만, 수 세기 동안 지속된 자본주의 문명의 결과로서 우리는 그것들에 많이 길들여졌고 단련되었다. (물론 자본주의가 탐욕과 공포를 발명하지는 않았는데, 그것들은 인간 본성에 깊이 존재한다. 그러나 탐욕을 비난하는 [기독교적 또는 다른] 기품을 지녔던 선행하는 봉건 문명과 달리 자본주의는 그것을 찬양한다.)

 

나는, 공동체적 호혜성 내에서는, 동료 인간들에 대한 책임의 정신으로 생산한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들에 의해 용역을 제공받는 동안 그들에게 용역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그 방정식의 각 변에서 만족을 얻는다. 그런 동기에서는 사실상 교환의 기대가 있지만, 그것은 시장적 동기에서 기대되는 교환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내가 시장참여자라면, 나는 기꺼이 용역을 제공할 것이지만 그것은 용역을 제공받기 위해서일 뿐이며,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 용역을 제공받는 수단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내가 받을 수 있는 만큼의 용역에 대한 교환으로 가능한 한 적게 용역을 제공하는데, 나는 싸게 사고 비싸게 팔기를 바란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용역을 제공하는 까닭은 내가 욕망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탐욕 동기―이거나, 아니면 내가 회피하고자 하는 것을 회피한다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공포 동기―이다. 시장참여자는, 그런 존재로서만 간주될 때,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을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데, 그는 용역을 제공하고 제공받는 결합을 그 자체로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다.

 

비시장적 협력자는 협력 자체를 즐기는데, 비시장참여자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서로 용역을 제공하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자 하지 않으면서 용역을 제공할 때, 나는 내 행위를 아무리 생각해도 희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확실히, 나는 (당신이 할 수 있다면) 당신도 내게 용역을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당신에게 용역을 제공한다. 사회주의적 공동체 정신에 대한 내 신념은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이 내게 용역을 제공할 것인지에 관계없이 내가 당신에게 용역을 제공하는 봉이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결합−나는 당신에게 용역을 제공하고 그리고 당신은 내게 용역을 제공한다−의 양쪽 모두와 그런 결합 자체에서 가치를 찾아내는데, 나는 첫 번째 부분−나는 당신에게 용역을 제공한다−를 나의 진짜 목적, 당신이 내게 용역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수단일 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공동체적 호혜성 아래서 우리 사이의 관계는 받기 때문에 주는 시장 도구적 관계가 아니라, 당신이 필요로 하거나 원하기 때문에 내가 주며, 그리고 당신으로부터 비슷한 관대함을 기대하는 비도구적 관계이다.

 

쉽고 생생하게 설명하기 위해 나는 앞 문단들에서 양자(나-당신)적 술어로 공동체적 호혜성을 특징지었다. 그러나 공동체적 호혜성은 어떤 쌍도 서로에게 직접 주지 않는 사람들의 고리를 연결할 수 있는데, 우리 모두를 포괄하는 공동체적 호혜성의 정신으로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그녀에게, 그녀는 그에게, 그리고 그는 나에게 용역을 제공할 수 있다. 어떤 점에 있어서는 시장적 연결망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공동체적 연결망은 다른 고무하는 동기 아래서 형성될 수 있다. 시장적 연결망에서는 아무도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얻지 않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체적 연결망은 어떤 점에 있어서만 시장 연결망과 비슷하다.

 

시장 교환에 있어서 동기는 대체로 탐욕과 공포로 구성되기 때문에, 시장적 상호작용 내에서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얼마나 잘 또는 형편없이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이 그 자체로 좋은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자신 다른 사람들이 번성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은 수익을 얻고자 하며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한다. 모든 유형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득불 서로에게 공급하는데, 한 사회는 상호 공급의 연결망이다. 그러나 시장사회에서 그런 상호성은 비상호적이고 근본적으로 호혜적인 태도의 부산물일 뿐이다."

 

번역: 김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