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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인용-이야기로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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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학을 이야기로서, 즉 자체의 구조에 근거하고 한계를 가진, 세계에 대한 묘사일뿐 이라고 여긴다면 어떻게 되는가? 자연 상수는 알파벳의 글자들이고, 자연 법칙은 문법적인 규칙에 불과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소위 과학적 방법의 안내에 따라 과학으로 이야기로 묘사한다. 그것으로 끝이다.

 

당신이 "사물은 현재의 과학이 발견한 방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 다른 방식으로는 자연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사물이 현재의 과학이 발견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까닭은 현재의 과학은 인간이 세계를 보고 설명하는 방식대로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이 관점을 취하면, 우주의 기원에 대해 결코 답을 얻을 수 없다. 이 관점은 자연이 아니라 과학 자체를 설명할 뿐이다. 우리는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밀접하게 결합시켜, 멋지고 창조적인 모형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칙들은 단지 법칙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은 우리의 과학일 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보편적으로 진실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과학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학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어쩄든 현재의 과학은 무언가를 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언젠가 한계에 부딪칠 것이다. 그렇다고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하면 어떤가. 그것 때문에 과학이 약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더 인간적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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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브록만 엮음, <<위험한 생각들>>(이영기 옮김, 갤리온, 2007), pp. 2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