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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관념들의 생태로서의 에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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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나는 "텍스트는 무언가에 관한 것일 뿐 아니라, 무언가이기도 하다"는 테제를 전개하려고 노력했다. 텍스트, 표상, 그리고 기호들이 그저 무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끌고자 노력할 때, 나는 표상, 텍스트, 기호, 그리고 기표들이, 동물 종들이 세계의 상이한 지역들에서 더 크거나 더 작은 개체군 밀도를 나타내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들 자체로 세계를 떠돌며 더 크거나 더 작은 개체군 밀도를 나타내는 실재적 존재자들인 방식을 강조하려고 시도했다. 관념은 어떤 내용, 의미, 또는 진리값을 가질 뿐 아니라, 시공간적 지리도 갖는다. 예를 들면, 인문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념들은 [...] 매우 흔한 반면에, 미국의 일반 시민들에 있어서 이런 관념들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인간 집단들 안에서 어떤 관념들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어서 사회적 장을 지배하거나 사회적 장 안에서 대단히 많이 나타나는 반면에, 다른 관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떤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보다 수가 더 많고 지배적인 특수한 환경에 놓인 동물 종들과 꼭 마찬가지로, 사회적 세계에서 어떤 관념들과 텍스트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대중적이다.

 

이것이 관념들의 물질적 차원인데, 그것들의 지위는 의미, 표상, 또는 진위로서의 존재자들이라기보다 그것들 자체로 세계에 더 많거나 더 적게 존재하는 존재자들이다. [...] 표상과 의미의 입장에서 텍스트에 접근할 때, 우리는 텍스트를 "해독"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하며,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내용이 무엇인지 결정하려고 노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세계 전체에 걸쳐 유포되는 물질적 존재자로서 텍스트에 접근하면, 우리는 해석자라기보다 생태학자 또는 전염병 학자로서 착수한다. 이런 유물론적 접근방식에서 우리는 관념을 세계 속의 개체군 또는 행위자로서 간주하며, 그것이 속하는 생태계와 어떤 집단 전체에 걸친 전파, 그리고 그것이 다른 관념들을 배체함으로써 어떤 권력 관계들을 유지하는 메커니즘들을 검토한다. 핵심은 해석과 진위 평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나름의 실재성, 물질적 현존을 갖는 방식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떤 관념들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다른 관념들을 고무하고 생성할 수 있게 하는 전략들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비판가가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면, 그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관념의 진리와 정의는 어떤 집단에 있어서 현실적인 힘을 갖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텍스트, 관념, 그리고 표상들에 대한 전염병학적 접근방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수사학적 삼각형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여기서 나는 에토스(ethos)의 차원에 집중하고 싶다. 전통적으로 에토스는 화자의 신뢰성이나 진실성에 관련된 것으로 다루어진다. 예를 들면, 고어가 정직한지 또는 그가 맥주를 같이 마시고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인지 여부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에토스에 관해 말하고 있다. 부시의 설득력의 일부는 사람들이 그가 더 진실하고, 자신들과 더 비슷하며, 맥주를 같이 마시고 싶은 그런 종류 사람이라고 간주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에토스라는 개념이 상당히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토스를 청중이 화자에게 귀속시키는 신뢰성의 특징으로 다루기보다, 그 대신에 우리는 에토스를 사람들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관념들이나 텍스트들의 생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에토스는 어원론적으로 "가정"을 뜻하는 그리스 낱말 오이코스(oikos)―이것으로부터 "경제"와 "생태"도 비롯되었다―뿐 아니라, 습관과 서식지와도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중요하다. 어떤 수사학적 틀 안에서, 청충을 설득할 수 있는 화자의 능력은 단순히 청중이 그를 믿을만 하다고 여기는지 여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언명들이  그 사람들이 거주하는 관념들의 생태에 공명하는지 여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수사학적 행위가 그 집단의 관념들 또는 생태에 공명할 것인지[..], 아니면 공명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그것은 화자의 진실성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수사학적 행위가 청중이 거주하는 생태의 틀에 적합한지 여부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급진적인 화자로서의 우리의 과업은 그 생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내버려두는 수사학적 행위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라는 과업이 아니라, 그 생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라는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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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