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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J 데모스: 오늘의 인용-정치생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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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생태학(political ecology)'이라는 술어는 [...] 환경, 행위자, 그리고 사회적 구성에 대한 경쟁하는 여러 접근방식들을 구분한다. 그럼에도 이런 접근방식들은 과학적-문화적 학제성과 철학적 비판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며, 그 기반이 현대 예술과 결합되었을 때 그것은 예술이 생물권(biosphere)과 맺는 관계와 자연이 경제, 기술, 문화, 그리고 법률의 인간 세계와 맺는 밀접한 결합의 정치화만큼이나 정치에 대한 생태미학적 재사유를 가리킨다. 우선, <<세 가지 생태학>>과 <<카오스모제>>에서 전개되었듯이,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의 정치생태학의 탁월한 유산을 인정하는데, 그것의 영향은 현대 정치생태학 이론과 생태미학에서도 똑같이 느껴진다. 가타리가 설명했듯이,

 

경제적 경쟁의 유혹적인 효율성에 여전히, 영구적으로, 지배당하는 대신에, 특이화의 과정들이 가치 세계들의 정합성을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는 가치 세계들을 재전유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실천과 미학적 실천, 타자, 낯선 것, 생소한 것과 관련된 자기의 새로운 실천―현재의 관심사에서 멀리 떨어진 듯 보이는 전체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오직 이런 것들―맹아적 주관성, 항상 변화하는 연합체, 그리고 재발명 과정에 있는 환경―에 대한 명확한 표현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주요한 위기들로부터 도피할 것이다.

 

가타리의 윤리미학적 패러다임―그것에 따라 그는 주관적 기입, 사회적 기입, 그리고 환경적 기입을 동시에 가로지르는 생태학들을 생각하기를 강력히 주장했다―의 '횡단적' 접근방식은 여전히 충족되어야 하는 예술적 실천에 대한 요구를 연장했다. 그럼에도, '자연'의 분리성에 대한 그의 끈덕진 거부는 생태적으로 관여하는 예술에 대한 현재의 접근방식들을 위한, 과소활용되었지만, 여전히 점점 더 중요해지는 이론적 자원이다. 게다가 '세계를 통합한 자본주의'에 의한 자연의 상품화에 대항하여 정향된, 통합된 연결망에 기반을 둔 가타리의 접근방식은 지난 십오 년 간의 생태활동주의의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고무되고 탈식민주의적인 동맹을 이룬 기업 세계화 반대 갈래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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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라투르의 '자연의 정치학'은 정치생태학의 두 번째 모형을 구성하며, 가타리의 입장에 현대적인 이론적 추동력을 더 가한다. 라투르에 따르면, '사실적'이고 탈정치적인 과학적 담론을 용인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고려할 때 자연이라는 개념을 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정치적인 명령이다. 정치생태학을 '자연'의 보호로서 위치시키는 대신에 라투르는, 민주주의 정치를 낳을 수 있을, 과학적 권위의 바로 그 가정들에 대한 인식론적 비판으로 시작하여, 그것의 목적을 공동 세계의 점진적 구성으로 규정한다. '사실의 문제들(matters of fact)'를 '관여의 문제들(matters of concern)'로 교체함으로써 라투르는 인간들과 비인간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조립체들을 예상하며, 생태적 지속가능성, 생물다양성과 다중의 생명 형태들의 권리에 대한 옹호, 그리고 환경적 객체들이 새롭게 고려될 수 있는 대안적인 통치 양식들에 관한 창의적인 사고 방식들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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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적 문화지리학은 [...] 정치생태학에 대한 세 번째 접근방식을 제공하는데, 그것은 라투르의 판본이 어떻게 여전히 불완전한지, 특히 신자유주의적 통치성(governmentality) 아래 기업 실천에 있어서 최근의 자연의 상품화를 다루지 못하는 지를 보여준다. [...] '자본화된 자연', '자연 은행', 그리고 '생태적 상품'은 1980년대에 '자연에 대한 빚' 스왑과 궁극적으로 탄소 배출권의 발명과 더불어 녹색 자본주의(수십 년 전의 환경주의의 특사)의 탄생 속에 처음 도입되었다. 생물 형태들과 지구 자원이 경제적으로 계산되는 자연의 금융화가 신자유주의라는 더 큰 기획에 중추적이다[...]. 자연 저장고를 보호하는 대신에 새로운 자본 영역들을 창출하는 데 몰두함으로써 신자유주의는 인간들에 의한 기후 변화, 환경 오염, 그리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전세계적 확대―특히 이십 세기 중엽 이래로―에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자본주의의 지구화에 대한 핵심적인 정치경제적 추동자를 구성한다. 자연의 외부화, 지배, 그리고 생산―예를 들면, 생명공학과 지질공학과 관련된―은 '자연의 실제적 포섭'이라고 불리는 것을 구성하는데, 이것은 도구화된 비인간적 생명 형태들과 점점 더 변화되는 인간 본성의 생물학에 적용된다. [...] 기업 지구화에 대항하는 투쟁이 현대 예술에 있어서 생태의 정치에 중요하다. [...]

 

[...] 정치생태학의 네 번째 규정은 자연에 대한 '기업 소유권'에 대항하는 '자연의 권리'를 둘러싼 기후 정의 활동주의이다[...]. '다종다양한 생명은 특허권과 "지적 재산권"을 통해 빠르게 기업들의 "재산"이 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와 국제통화기금 같은] 이런 전지구적인 경제적 배치들이, [...] 자연 자원에 대한 특허권을 탐욕스럽게 출원하고 씨앗과 자연 약제들의 독점을 창출해버린, 전지구적인 탈규제화된 경제에서 작동하는 기업들에 의해 자행되는 '생물해적행위(biopiracy)'를 보증한다. [...] 환경 정의를 위한 몇 가지 유망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이윤을 위해 생명을 제어하고 자연을 생산하고자 하는 수십 억 달러의 예산과 높은 수준의 정치적 연결망을 갖춘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전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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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리와 라투르의 입장들은 '자연'의 고립된 지위를 거부하고, 창발적 주체들, 새롭게 고안되는 민주적인 사회적 집합체들, 그리고 탈금융화되고 특이화된 환경들 사이의 횡단적 연결 관계들에 대한 강조를 선호한다. 비슷한 형식으로, 환경적으로 관여하는 예술적 실천은 자체의 자율적이고 예외주의적인 입지 구성의 특권적인 지위를 포기하고, 자체의 미학적 매개변수들을 환경에 관여하는 시각 문화 전체로 넗히는 데 합류한다. 다시 말해서, 정치생태학의 미학은 [...] 활동주의적 시각 문화, 예술 형식들, 그리고 환경 변화의 비인간 행위자들의 출현 사이의 분리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미학은 '공동 세계에의 참여 형식들과 장소들을 구분하는' 현시 양식을 가리키며,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대 잊혀진 것과 간과되는 것이라는 통상적인 범주들과 그것들 사이의 분리들이 도전받고 재배치될 때 정치화의 순간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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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J 데모스(TJ De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