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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오늘의 인용-배아의 영혼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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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신학대전』의 부록에서는, 이성적인 영혼이 주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아는 육체의 부활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다시 말해, 최후의 심판 이후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죽은 자들의 육체가 다시 살아날 것인데[...], 그 <육체의 부활>에 배아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배아에는 이성의 영혼이 아직 스며들지 않았고 그들은 인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의 과정에서 교회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시나브로 여러 번 자신의 입장을 바꿔 왔으며 이 경우 역시 그러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일개 사상가가 아니라 가톨릭 신학의 근본적인 토대를 세운 최고의 권위자에 대한 무언의 부정에 직면해 있다.

 

이와 관련된 고찰은 다소 의아한 결말로 이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가 오랫동안 진화론을 반대해 왔다고 알고 있다. 진화론이 이레 동안 천지가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이야기와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 이전 삶의 형태와 인간이 등장한 이후의 경이로운 차이, 그 근본적인 도약을 무효로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원숭이와 같은 짐승들과 이성의 영혼을 받은 인간의 차이를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배아는 인간이 될 것이기에 이미 인간이라는 전제로 생명 보호를 주장하는 신근본주의자들의 투쟁은 과거의 유물론자와 진화론자들이 채택한 입장으로 이끌고 있는 듯이 보인다. 즉 식물에서 동물로,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는 경계선이 없으므로[...], 생명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 생명의 보호와 인간 생명의 보호 사이에 어떤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든 어떤 형태이든 생명이란 이름을 달고 있는 모든 것을 반드시 보호하려는 생각은 생식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자신의 씨앗을 뿌리는 것뿐만 아니라 닭을 먹거나 모기를 죽이는 것도 살생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존중은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결론은 다음과 같다. 현재의 가톨릭 신근본주의자들의 입장은 프로테스탄트 기원의 입장[...]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유물론적이면서 동시에 범신론적인 개념으로 이끌고 있으며, 숨을 쉬면서 미생물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 입에다 가제를 두르고 다니는 일부 종교 지도자가 숭배하는 동양의 범심론과도 유사한 입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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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가재걸음: 세계는 왜 뒷걸음질 치는가>>(김희정 옮김, 열린책들, 2012), pp. 34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