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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그레이버: 오늘의 인용-부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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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반드시 갚아아 하는 거예요."

그 말이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그것이 경제적인 진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덕적 진술이다. 어쨌든, 도덕적으로는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빚진 것을 갚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다른 사람들도 당신에게 의무를 이행하길 원하는 것과 똑같이 당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거야말로 도덕적으론 너무 당연하다. 책임 회피의 명백한 예로 약속을 어기거나 빚을 갚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을까?

 

그 진술이 음흉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너무나 자명해 보인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그 문장은 무시무시한 것을 부드럽고 눈에 두드러지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말은 아주 강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확인하기만 하면, 그 말의 강력한 영향력에 아마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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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파워는 우리가 부채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부채라는 개념 자체의 유연성에 있다. 만약 역사가 뭔가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폭력에 근거한 관계들을 정당화하고 도덕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그 관계들을 부채의 언어로 다시 구성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채를 바탕으로 할 경우 폭력의 희생자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피아 단원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정복군의 지휘자들도 잘 이해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폭력적인 사람들은 폭력의 희생자들이 자신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 희생자들은 "정복군들에게 목숨을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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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 <<부채, 그 첫 5,000년>>(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01), pp. 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