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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콜버트: 오늘의 에세이-인류세에 접어들다

 

인류세-인간 시대-에 접어들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지구에 미치는 인간들의 엄청난 영향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를 가르키는 새로운 이름이다. 그 흔적은 우리의 도시들이 허물어진 후 오랜 동안 지질학적 기록에 지속될 것이다.

 

―― 엘리자베스 콜버트(Elizabeth Kolbert)

 

그 길은 위로 언덕에 이르는데, 빠르게 흐르는 개울을 건너고, 다시 개울을 건너며, 그 다음에 양 한 마리의 시체를 지난다. 내가 보기에 비가 내리고 있지만, 여기 스코틀랜드의 서던 업랜즈에서는 그저 약한 이슬비로 간주된다고 한다. 마지막 구불구불한 길을 넘어서자마자, 안개 속에 절반이 가려진 폭포가 하나 있고, 톱니 모양의 바위 하나가 노출되어 있다. 그 바위는 옆면이 장식된 레이어 케이크처럼 수직으로 나 있는 띠들이 있다. 내 안내원인 영국 층서학자 얀 잘라시에비츠(Jan Zalasiewicz)는 넓은 회색 줄무늬를 가리킨다. 그가 "여기에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고대 대양의 바닥 위에 퇴적물이 천천히 쌓임에 따라 대략 4억4천5백만 년 전에 그 줄무늬는 형성되었다. 그 시기에 대체로 생명은 여전히 물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위기를 겪고 있었다. 두께가 삼 피트인 회색 띠의 한쪽 끝과 반대쪽 끝 사이에 대략 80퍼센트의 수생 종들이 멸종했는데, 그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은 필석(graptolite)처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그런 종류들의 생명체들이다.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으로 알려져 있는 그 멸종 사건은 지난 오억 년 동안 일어났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기후, 전지구적 해수면 높이, 그리고 해양 화학의 격심한 변화―그것들 모두는 남극 위를 부유하는 초대륙에 의해 초래되었을 것이다―와 일치했다.

 

잘라시에비츠 같은 층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깊은 인상을 주기가 어렵다. 그들의 일은 사후 수백만 년이 지난 암석층들에서 도출될 수 있는 실마리들로 지구 역사를 꿰어 맞추는 것이다. 그들은 장기적인 안목―엄청나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건들을 고찰하는데, 그것들 가운데 가장 격렬한 사건들만 명료한 오래 가는 신호들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지구의 45억 년 이야기 속에서 중요한 일화들, 즉 그 이야기를 포괄적인 장들로 나누는 전환점들을 나타내는 것은 그런 사건들이다.

 

그래서 많은 층서학자들이 우리가 그런 사건―인간들이 지난 일이 세기 동안 지구를 대단히 많이 변화시키는 바람에 우리는 새로운 시대, 즉 인류세에 접어들었다―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이다. 보슬비를 맞으며 선 채로 나는 잘라시에비츠에게 이 시대가 먼 미래의 지질학자들―그들이 누구이든 또는 무엇이든 간에―에게 어떻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그 전환은 기록에 나타나는 수십 개의 다른 것들처럼 온건한 것일까? 아니면, 오르도비스기 말의 대량 멸종처럼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났던 예리한 띠처럼 보일 것인가?

 

그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잘라시에비츠가 말한다.

 

"인류세"라는 낱말은 대략 십 년 전에 네델란드 화학자 폴 크루첸(Paul Crutzen)에 의해 만들어졌다. 어느 날 오존을 고갈시키는 화합물들의 효과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상을 공동 수상했던 크루첸은 과학 학술회의장에 앉아 있었다. 학술회의 의장은 11,500년 전 마지막 빙하 시대가 끝날 때 시작하여 최소한 공식적으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시대인 충적세(Holocene)를 계속 언급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말합시다." 크루첸은 엉급결에 말해 버렸던 일을 회상한다. "'우리는 더 이상 충적세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동안 회의장이 조용했습니다." 학술회의 휴식 시간이 되었을 때, 인류세는 대화의 주요 화제였다. 누군가가 그 낱말에 대한 저작권이 크루첸에게 있다고 넌즈시 말했다.

 

18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안토니오 스토파니(Antonio Stoppani)라는 이탈리아 지질학자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그가 인간생(anthropozoic)이라고 명명한―에 진입했다고 제안했다. 스토파니의 제안은 무시당했고, 다른 과학자들은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고 알아차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류세는 심금을 울렸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영향은 스토파니의 시대 이후에 훨씬 더 명백해졌는데, 부분적으로는 인구 규모가 대충 네 배가 되어 거의 칠십억 명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십 세기에 인구 증가의 유형은 영장류라기보다 박테리아적이다." 생물학자 E. O. 윌슨이 적었다. 윌슨은 인간 바이오매스가 여태까지 지구를 걸어다녔던 여느 다른 대형 동물 종들보다 이미 백 배 더 크다고 산정한다.

 

2002년에 크루첸이 <<네이처>> 저널에 인간세 착상을 기고했을 때, 그 개념은 여러 분과학문들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들에 의해 즉각적으로 채택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것은 과학 기사에서 정기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천 체계들에 대한 전지구적 분석: 지구 체계 제어에서 인류세 신드롬까지"라는 것이 2003년 한 논문의 제목이었다. "인류세 시대의 토양과 퇴적물"은 2004년에 발표된 다른 한 논문의 제목이다.

 

처음에 새로운 지질학적 술어을 사용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질학자들이 아니었다. 지질학자인 잘라시에비츠는 그 논의들이 흥미롭다고 깨달았다. "저는 크루첸의 술어가 진지한 문헌에서 아무 인용 부호도 없이 그리고 반어적 감각도 없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습니다." 그가 말한다. 2007년에 잘라시에비츠는 런던의 층서학 위원회의 지질학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한 모임에서 그는 동료 층서학자들에게 인류세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로 결심했다. 22명 가운데 21명이 그 개념이 장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집단은 그것을 지질학의 공식적 문제로 간주하기로 동의했다. 인류세가 새로운 시대를 명명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을 충족할 것인가? 지질학적 용어로, 세(世, epoch)는 수천만 년 동안 확대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이다. (오르도비스기와 백악기 같은 기(紀, period)는 더 오래 지속되고, 중생대 같은 대(代, era)는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세 사이의 경계는 퇴적암에 보존된 변화들―가령, 한 유형의 공통으로 화석화된 유기체의 출현 또는 다른 한 유형의 소멸―에 의해 규정된다.

 

물론, 현재의 암석 기록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의문은 이렇다. 그것이 존재할 때, 인간의 영향은 "층서학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드러날 것인가? 대답은 그렇다라고 잘라시에비츠의 집단은 결정했다. 반드시 여러분이 예상할 이유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아마도 인간들이 지구를 변화시키고 있는 가장 명백한 방식은, 본질적으로 인공 재료들―강철, 유리, 콘크리트, 그리고 벽돌―이 방대하게 펼쳐져 있는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도시들이 장기적인 보존을 위한 좋은 후보자들이 아니라는 점이 판명되는데, 그것들이 토지 위에 건설되며, 그리고 토지 위에서 침식력이 퇴적물보다 능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지질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오늘날 풍경에 미치는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인간의 영향은 "어떤 측면에서 가장 일시적일 것"이라고 잘라시에비츠가 주장했다.

 

또한 인간들은 농경을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켰다. 빙하가 없는 지구 토지의 38퍼센트 정도가 현재 농업에 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오늘날 가장 두드러진 듯 보이는 영향들 가운데 일부는 기껏해야 미세한 흔적만 남길 것이다.

 

예를 들면, 비료 공장들은 현재 땅 위의 모든 식물과 미생물보다 더 많은 질소를 공기로부터 고정하여 생물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시키고 있다. 비료가 뿌려진 들판들로부터의 배출 때문에 전 세계의 하구들에서 생명을 질식시키는 조류의 대량 발생이 촉발되고 있다. 그런데 합성 질소가 천연 질소와 똑같기 때문에 질소 순환의 이런 전지구적인 교란은 검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미래의 지질학자들은 꽃가루 기록―우림 또는 초원들에 남겨진 다양한 기록을 대체했을 옥수수, 밀, 그리고 콩 꽃가루의 단색적 전개―으로부터 21세기 산업적 농경의 규모를 파악할 가능성이 더 높다.

 

세계 우림들의 개간은 미래의 층서학자들에게 최소한 두 개의 암호화된 신호를 보낼 것인데, 첫번째 신호는 판독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헐벗은 토지를 침식하는 방대한 양의 토양은 세계의 어떤 지역들에서 퇴적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의 주요 하천들 대부분에 우리가 건설한 댐들은 바다로 씻겨 갔을 퇴적물을 저지하고 있다. 삼림 파괴의 두번째 신호는 틀림없이 더 명료하게 올 것이다. 숲 서식지의 상실은 멸종의 주요 원인인데, 현재 멸종은 지난 오억 년 동안의 속도보다도 수백 배 또는 심지어 수천 배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그 속도는 곧 수만 배 더 빨라질 것이다.

 

지질학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대기 조성의 변화―일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색깔이 없고, 냄새가 없으며, 그리고 즉각적인 의미에서 해롭지 않다. 그러나 그것의 온실 효과는 지구 온도를 수백만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쉽게 상승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자신들의 영역을 극지방을 향해 전환시키고 있는 식물과 동물도 있으며, 그리고 그런 전환들은 화석 기록에 흔적을 남길 것이다. 온난화에 결코 살아남지 못하는 종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상승하는 온도는 결국 해수면을 20피트 이상 상승시킬 것이다.

 

우리의 자동차, 도시, 그리고 공장들이 파괴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수십억 톤의 석탄과 석유를 연소시킨 결과는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산화탄소가 지구를 데우면서, 또한 그것은 대양으로 침투하여 대양을 산성화한다. 금세기에 언젠가 대양은 산호들이 더이상 군락을 구성할 수 없는 지경까지 산성화될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지질 기록에 "산호 간극"으로 기입될 것이다. 산호 간극들은 지난 다섯 차례의 주요한 대량 멸종 각각을 특징지웠다. 소행성의 충돌로 초래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는 가장 최근의 대량 멸종은 백악기 말 6천5백만 년 전에 일어났는데, 그것은 공룡뿐 아니라 사경룡, 익룡, 그리고 암모나이트도 소멸시켰다. 현재 대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규모는 여러가지 면에서 그때 이후로 비견될 수 없는 것이다. 미래의 지질학자들에게 우리의 영향은 소행성의 영향만큼이나 갑작스럽고 심대한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잘라시에비츠가 말한다.

 

우리가 사실상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면, 그것은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가? 인간의 영향은 언제 지질학적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올라갔는가?

 

버지니아 대학의 고기후학자인 윌리엄 루디먼(William Ruddiman)은 대략 8,000년 전의 농경의 발명과 그로 인한 삼림 파괴가 새로운 빙하 시대의 시작을 막아낼 정도로 충분히 큰, 대기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초래했다고 제안했다. 그가 보기에, 인간들은 충적세가 시작한 이래로 실질적으로 지구의 지배적인 세력이었다. 크루첸은, 빙하 코어가 그때 이후로 이산화탄소 수준이 연속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18세기 말에 인류세가 시작되었다고 넌즈시 말했다. 다른 과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인구 증가 및 소비 증가의 속도가 빠르게 가속되는 20세기 중반에 위치시킨다.

 

현재 잘라시에비츠는 인류세가 지질 연대표에 편입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공식적으로 결정할 업무를 위탁받은 국제층서학위원회(ICS)의 실무그룹을 이끌고 있다. 최종 결정은 ICS와 그것의 상부 조직인 국제지질학연맹의 투표가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은 여러 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질질 끌게 되면, 결정은 더 쉽게 내려질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인류세의 시작에 이르지 못했다―우리가 지구에 극적인 영향을 미쳤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다음 수십 년이 과거 몇 세기보다 층서학적으로 훨씬 더 중대할 것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인류세의 편입을 결정할 것인가, 아니면 20년을 더 기다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질 것인가?" 영국 라이세스터 대학의 지질학자이자 잘라시에비츠의 동료인 마크 윌리엄즈(Mark Williams)가 말한다.

 

논쟁을 시작했던 크루첸은 그것의 진정한 가치는 지질학 교과서의 수정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목적은 더 넓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집단 행위의 결과―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최악의 사태를 여전히 피할 수 있을 것인지―에 주의를 집중하기를 바란다. 그가 말한다. "제가 희망하는 것은 '인류세'라는 술어가 세계에 대한 하나의 경고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