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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윌슨 & 대니얼 데넷: 오늘의 인용-과학적 사실과 규범적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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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슨_ 그러니까 모든 지식, 특히 생물학적 지식을 포함한 모든 지식을 취합하고 나면 어느 쪽 진영에서 보든 문제는 쉬워집니다. 글쎄요, 윤리적 규범에 대한 윤리적 해석을 진화론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서로 다른 문화, 또한 같은 문화 내의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갭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데넷_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항상 간접적인 과정을 거치겠죠. [...]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학적 사실과 규범적 의문은 논리적으로 상호 독립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는 모두 규범적 의문과 마주쳐야 하고 여기에 답을 찾아내야겠죠. 그리고 끝에 가서는 정치적 답도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의 답을 얻는 과정에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며, 그러고 나서 집단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윌슨_ 제 입장도 같습니다. 다만 저는 과학을 활용하는 최선의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고요.

 

데넷_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정치적 과정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과학을 이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그 점에서는 우리 두 사람의 의견이 완벽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 자체가 이 모든 문제를 저절로 풀어주리라는 오해는 결코 일으키고 싶지 않군요. 선생님도 동감하실 겁니다. 과학적 발견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문제를 드러낼 뿐이죠. 인간이 오늘날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데 대해 우리가 모든 것을 안다 하더라도, 그로부터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결론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이러한 지식은 현실적 기반을 제공해줄 뿐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앞에 놓고 우리는 '좋아. 이런 특성 중 우리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것들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화의 결과 인간은 이러한 성향과 저러한 특징을 갖췄는데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 뭔가를 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식의 의문이 나올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당연히 나와야 할 의문이기도 하고요.

 

윌슨_ [...] 물론 윤리적 규범과 그로부터 나오는 도덕성은 합의에 의해 얻어집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진화의 역사에 종속되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합의한 바를 구현하려면 진화사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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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블라이(Adam Bly) 기획, <<사이언스이즈컬처(Science Is Culture)>>(이창희 옮김, 동아시아, 2012), pp.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