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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 오늘의 인용-인간이라는 생물의 잔학성

 

"루벤스가 보기에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경쟁의 원동력은 단 두 가지 욕망으로 환원되는 듯했다. 식욕과 성욕. 인간은 타인보다 많이 먹거나 혹은 저장하고, 보다 매력적인 이성을 획득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내리고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 했다. 짐승의 본성을 유지한 인간일수록 공갈이나 협박 같은 수단을 쓰며 '조직'이란 무리의 보스로 올라가려 안달했다. 자본주의가 보장하는 자유 경쟁이야말로 이러한 폭력성을 경제 활동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법으로 규제하고 복지국가를 지향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가 내포하는 짐승의 욕망을 억누르기는 불가능했다. 어찌되었건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시적인 욕구를 지성으로 장식해서 은폐하고 자기 정당화를 꾀하려는 거짓으로 가득한 존재였다." (251)

 

"가드너가 희미하게 웃었다. 활발한 의논이 이어지던 소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과학 고문이 짓고 있는 미소에는 무력감과 해방감이 뒤섞여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 속(屬)의 지적 능력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현생인류의 지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말이었다. 지성만이 아니었다. 「하이즈먼 리포트」가 지적하고 있는 초인류의 특질은, 그대로 현생인류의 결함을 말해 주고 있었다. 우리는 '전체의 복잡한 상황을 단번에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발달한 도덕의식'도 보유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습성인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채운 인간만이 세계 평화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한번 기아(飢餓)상태와 직면하게 되면 숨어 있던 본성이 그 즉시 드러났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사상가가 이미 주창한 대로 사람은 '부족하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는' 생물이었다.

 

앞으로 인류 역사가 영원히 이어지다 보면 평화에 대한 갈망은 언젠가 제자리에 머물 것이다. 언제나 세상 어딘가에서 인간끼리 이루어지는 투쟁을 끌어안은 채 인류사는 계속 축적되어 가리라.

 

이 어리석은 짓을 근절하려면 우리 자신이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 세대 인류에게 다음을 부탁할 수밖에." (316-7)

 

"일방적으로 말을 하던 늙은 과학자가 대통령을 응시하며 말했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 (414-5)

 

"하이즈먼의 매몰찬 거절에 루벤스가 매우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박사님. 현 정권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계시군요?"

"현 정권뿐만이 아냐. 나는 권력자가 싫네. 그놈들은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쳐. 더 나아가 나는 인간이라는 생물이 싫다네."

루벤스는 자신의 내면에 박사의 의견과 같은 증오심이 잠들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모든 생물 중에서 인간만 같은 종끼리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네. 이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의 정의야. 인간성이란 잔학성이란 말일세. 일찍이 지구상에 있던 다른 종류의 인류, 원인(原人)이나 네안델르탈인도, 현생인류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나는 보고 있네."

"우리가 살아남게 된 것은 지성이 아니라 잔학성이 이겼기 때문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래. 뇌의 용적은 우리보다 네안데르탈인이 컸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현생인류가 다른 인류와의 공존을 바라지 않았다는 점일세."

[...]

"인류사를 더듬어 보면 타당한 가설이라고 생각하네. 남북 아메리카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전투나 전염병으로 원주민의 90퍼센트를 죽였어. 대부분의 민족이 말살되었지. 게다가 아프리카에서는 노예 1000만 명 때문에 그 몇 배나 되는 인간이 살해당했네. 같은 종이라 해도 이 꼴이야. 현생인류가 다른 인류를 좋게 대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 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

"하지만 우리에게는 평화를 바라는 이성도 있지 않을까요?"

하이즈먼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보다 세계 평화를 외치는 게 더 간단하지. 알겠나, 전쟁이라는 것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서로 잡아먹는 건 똑같네. 그리고 인간은 지성을 써서 서로 잡아먹으려는 본능을 은폐하려 하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 애국심 같은 핑계를 주물럭대고 있지. 하지만 저 밑에 깔려 있는 것은 짐승하고 똑같은 욕구일세. 영토를 둘러싸고 인간이 서로 죽이는 것과 자기 영역을 침범당한 침팬지가 미쳐 날뛰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어디가 다른가?"

[...]

"인간에게 선한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정하지는 않네. 하지만 선행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행위이기에 미덕이라고 하는 걸세.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행동이라면 칭찬 받을 일도 아니지 않은가. 국가의 선은 다른 국민을 죽이지 않는 행위로밖에 드러나기 어렵지만, 그것조차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인간이야."" (472-5)

 

――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김수영 옮김, 황금가지, 2012)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