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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툴민: 오늘의 인용-근대 서양의 코스모폴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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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15년에 라이프니츠와 클라크 사이에] 오간 편지들에 숨어있는 핵심 의제는 <안정>과 <위계>이다. 자연질서 내의 만물은 자연에 대한 하느님의 지배를 증거한다[...]. 이 지배력은 자연세계와 인간세계 전체를 관류하며 경험의 모든 수준에서 확인된다. 하느님과 자연과의 관계는 왕과 국가와의 관계에 상응한다. 하느님이 천문학의 세계에서 정립한 구조는 근대적 국가 체계를 정립하기 위한 모델로 이용된다. <태양왕> Roi Soleil은 만백성의 위계적 원환들[...]에 대해 위엄을 발한다. 하느님이 자연에 대해 행하는 것을 왕은 국가에 대해, 남편은 부인에 대해, 가장은 가족에 대해 수행한다. 1660년 이후에, 여론 주도 집단들은 이런 방식으로 <부권주의> paternalism를 재정립해갔다. 그들은 자연의 질서로부터 정당화의 기반을 발견했다. 그 결과, 자연 질서와 사회 질서가 비슷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로 정립되었다.

[...]

지금 우리의 관심사는 근대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과학>이 아니라 <코스모폴리스>이다. 코스모폴리스는 세계에 대한 총체적 해설을 제공하며, 그럼으로써 사물들을 과학적 혹은 설명적 견지에서만이 아니라 <정치적, 종교적> 견지에서도 함께 엮어준다. 30년 전쟁 이후에 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재건한 사람들은 두가지 원리를 지침으로 삼았다. 하나는 주권 국민국가의 국내상황과 국제 관계에 있어서의 <안정>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회 계급들 간의 <위계>였다. 이 쌍동이 과제를 주도한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계획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안정과 위계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들은 안정과 위계의 원리가 천문학적 우주로부터 개별 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석구석에 편재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물질의 비활동성이라는 원리의 배후에서 또 다른 함축을 발견했다. <보다 낮은> 사물은 <보다 높은> 피조물의 명령에 따라 운동하며 종국적으로는 창조주에게 의존하고 복종한다는 원리가 그것이았다. 이 원리는 자연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되었다. 자연 내에서의 <권위와 복종>에 대한 믿음이 증가하면 할수록,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근심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비이성적> 감정에 대한 걱정도 줄어들었다. 대중의 무분별한 삶은 사회 혼란을 야기할 것인바, 사회 혼란은 데포우 Daniel Defoe의 소설 속에서나 즐거운 이야깃거리이지, 실생활에서는 금지해야만 할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근대적 자연관과 근대적 인간관을 모두 포괄하면서 근대성의 비계를 구성한 이 총체적 체제는, 과학적 장치일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장치이기도 했다. 이 체제는 하느님을 빌어서 주권 국민국가의 정치질서를 정당화했다. 근대의 과학적 세계관이 1700년 경에 대중적 지지를 획득한―또한 그 덕택에 <실질적으로 정립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 과학적 세계관은 행성운동이나 조류의 간만을 훌륭하게 설명해 주었을 뿐 아니라, 국민국가의 정치 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

외부적인 상황이 이론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플라톤의 『국가론』까지 소급될 정도로 오래된 관심사이다. 자연의 질서와 사회를 질서를 통합하는 <코스모폴리스>의 꿈은 늦어도 플라톤부터는 서구적 전통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약 50여년 동안 이성주의적 과학관은 학계 내부에 너무나 견고한 진지를 구축했다. 과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언급은 좌파적 이단으로 공격받기 일쑤였다. 근자에 이르러서야 사람들은 과학적 관념이 드러난 과제뿐만 아니라 은밀한 과제도 수행한다는 것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완벽한 설명 작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관념이 실제로는 무슨 이해관계에 봉사하는가를 따질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1750년부터 1920년에 이르기까지 변모해온 과학의 얼굴을 추적하다보면, 우리는 뉴턴으로부터 앨버트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물리학에서, 혹은 존 레이 John Ray로부터 모건 T. H. Morgan에 이르는 생물학에서, 이론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례로 우리는 뉴턴주의가 <근대 사회질서>에 대한 <코스모폴리스적> 정당화라는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던가 하는 인상을 받는다. 우리가 이런 관점에서 설 때, 다음 두 가지 특징이 우리의 시선을 끈다. 첫째는 자연과 사회를 공히 체계화한 워리가 안정이었다는 것이요, 둘째는 개인적 행위에서든 집단적 행위에서든 이성과 감정 사이에 긴장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

여기서 태양계가 사회구성의 모델로 작용하는 방식은 <코스모폴리스적>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다. 만일 <코스모폴리스적> 정당화가 없었다면, <보다 우월한 부류>가 <보다 열등한 부류>에게 부과한 위계는 자의적이고 이기적인 질서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사회적 위계 질서가 자연 질서를 제대로 반영하면 할수록, 그것의 권위는 그만큼 자명하고 정당하고 이성적인 것으로 자리잡아 갔다. 하느님의 자연의 안정을 유지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지만 않는다면 자연은 수학적 <법칙들>에 복종한 채 안정적으로  운행되리라는 믿음은, 사회에 대해서도 혁명적인 관념이었다. <코스모스>만이 아니라 <폴리스>도 자족적인 것처럼 보였다. <합리성>은 양자를 잇는 이음매로 기능하면서 양자 모두에게 안정을 보장해 주었다. 1650년대에만 해도 사람들은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에 걱정했었다. 반면에 1720년의 손자 세대는 이성적이고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세상을 완벽한 운동체로 창조했다는 믿음으로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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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툴민(Stephen Toulmin), <<코스모폴리스: 근대의 숨은 이야깃거리들(Cosmopolis: The Hidden Agenda of Modernity)>>(이종흡 옮김, 1997), pp. 2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