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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크리츨리: 오늘의 인용-루소의 모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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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루소의 모범성은 그가 근대적 정치 관념에 대한 명확한 표현을 제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즉, 정치는 자연과 자연법에 관한 그 어떤 관념과도 단절하는 것이고 인민 주권, 자유로운 연합체, 엄격한 평등, 그리고 인민의 자기결정으로 이해되는 집단적 자치라는 개념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근대적 정치 관념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것이 종교적 차원―로마인들이 시민 신학(theologia civilis)이라고 부르곤 했던 것의 계기―을 지녀야 한다. 근대 정치를 정의하는 듯 보이는 세속화는 에밀리오 젠틸레(Emilio Gentile)가 신성화라고 부르는 것―국가, 민족, 계급, 또는 정당 같은 정치적 존재자의 신성한 존재자로의 전환, 즉 정치적 존재자가 선험적인, 도전받지 않는, 그리고 무형의 것으로 되는 것―의 계기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신성한 것의 계기 없이, 종교, 의례, 그리고 우리가 믿음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없다면, 어떤 정치적 집합체가 존속할 수 있을까, 즉, 자체의 통일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

 

[...] 우리는 만성적인 정치의 재신학화를 겪으며 살고 있는데, 그 때문에 이 시기가 확실히 내 생애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이며, 거의 틀림없이 훨씬 더 오래 갈 것이다. 현재의 공포의 핵심에는 정치와 종교의 얽힘, 폭력에 의해 규정되는 얽힘이 있다[...]. [...] 무엇이든 완전히 세속주의적인 정치의 한계를, 특히 좌파의 경우에,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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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 <<신앙 없는 자들의 신앙: 정치신학의 실험들(The Faith of the Faithless: Experiments in Political Theology)>>(2012), pp. 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