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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크리츨리: 오늘의 인용-신 없는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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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철학이 실망에서, 특히 종교적 실망―말하자면, 거칠게 서술하면, 신의 죽음―에서 시작한다고 단언한다. [...] 내가 신앙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신 같은 어떤 형이상학적 실재의 존재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나의 신앙 관념―무한한 요구에 대한 충성으로서의―은 종파적으로 신앙 없는 자들 또는 비신자들이 그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범적인 방식으로 그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반드시 유신론적이지는 않다. 그렇지만 [...] 무신론적 신앙 관념은 득의만면하지 말아야 한다. 신과 종교를 과학적 진보에 의해 다행히도 교정되고 반박되어버린 어떤 종류의 역사적 오류로 여기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나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chens)의 복음주의적 무신론에 대해 나는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적 전통은 [...] 자연주의로 환원될 수 없는 여러 측면에서 인간의 삶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의문들을 명백히 표현하는 어떤 강력한 방식을 제공한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파스칼 같은, 내가 오랫동안 함께 한 것을 가치있게 여겨온 사상가들은, 내가 그들의 대답들을 수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올바른 의문들을 정확히 제기한다. 게다가 [...] 무엇이 어떤 주체로 하여금 다른 주체들과 조화롭게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지에 관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라면, 합리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정당한 정치적 연합체가 가능할 수 있게 되려면―즉, 시민들이 스스로 선에 서약할 수 있으려면―이성이 인간 주체성의 심층적인 실존적 기반를 건드릴 수 있는 신앙과 믿음의 의문들과 제휴해야 한다 [...].

 

요약하면, 전통적인 유신론도 복음주의적 무신론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필요한 것은 [...] "낙담한 믿음과 비슷한 신학적으로 약혼한 무신론이다. 신앙에서 단지 반음을 내린 그런 무신론은 가까운 거리에서 더 날카로운 음악적 불협화음과 같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철학이 종교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종교만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 내 의문은 [...] 종교 없는 신에 관해 어떻게 말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신 없는 종교―인간들을 연합체로 함께 결합시킬 수 있는 그런 힘으로서의―에 관해 어떻게 말하는가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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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 <<신앙 없는 자들의 신앙: 정치신학의 실험들(The Faith of the Faithless: Experiments in Political Theology)>>(2012), pp.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