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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라이트: 오피니언-새로운 철학자-과학자들

 

 

새로운 철학자-과학자들

 

―― 토머스 라이트(Thomas Wright)

 

1990년대에 내가 대학에 돌아왔을 때 과학자들과 인문학도들 사이의 관계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도발적인 질문들로 시작하여 거의 주먹질과 잔을 던지는 것으로 끝났던 두 진영 사이의 여러 술취한 논쟁들을 나는 기억한다.

 

우리의 논쟁들은 자연이 말을 할 수 있다면 방정식과 원자번호들을 거침없이 말할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적 "실재론자들"과 언어와 자신들의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탈근대주의적" 인문학도들 사이에 벌어졌던, 당대의 이른바 "과학전쟁"에 있어서 사소한 충돌이었다. "우리가 그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믿을 것이다"가 과학자들의 모토였고,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그것을 볼 것이다"가 반대 진영의 슬로건이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는 19세기의 많은 유명한 주장들을 새로운 그리고 약간 지나치게 화려한 의상으로 분식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또한 우리는 "두 문화" 사이의 분리에 관한 C P 스노우의 1950년대 강연 후에 이어졌던 많은 말다툼을 재연하고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소란스러운 향연은 거대한 분리를 예증하고 강화하는 데 기여했을 뿐이었다. 계몽된 한 영혼이 전문 기술자들과 보헤미안들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대략 지난 십 년 동안 영국의 많은 대담한 전기작가들이 바로 그 임무에 착수했다. 낭만주의 시기 과학자들의 집단 초상화인 <<경이의 시대(The Age of Wonder)>>의 말미에서 리처드 홈즈(Richard Holmes)는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을 "탐사"하고 그래서 "두 문화"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인용되는 어려운 점들"을 극복할 과학 삶들의 저술에 대한 "더 확대되고 상상력이 풍부한" 접근방식을 간청했다.

 

다양한 작가들―자신들의 인문학적 배경에서 비롯되는 통찰에 기대고 문체상의 독창적인 기법을 채용하는―이 예술과 과학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찬양하는 과학적 전기들을 저술함으로써 홈즈의 명확한 호소에 응답했다. 그들의 역사적 영웅들은 개인적 재능뿐 아니라 연대기적으로 "예술"과 "과학"이 여전히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리고 흔히 친구 사이였던 사회에 태어났던 덕분에 아무 노력 없이 우리의 거대한 지적인 분리에 걸쳐 있다.

 

리사 자르딘(Lisa Jardin)의 우아한 <<크리스토퍼 렌의 생애>>는 연애가 여전히 18세기 초로 강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존 하일브론(John Heilbron)의 <<갈릴레오>>는, 부분적으로는 음악가, 미술가,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훈련에서 비롯된 혁명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내다보는 "과학자"를 제시한다.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ckroyd)의 <<아이작 뉴턴>>의 난해한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탐구는 사실들의 미로를 통과하여 뉴턴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들을 향하여 인도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찰스 니콜(Charles Nicholl)의 레오나르도는 숨막히게 하는 "정신의 비행"으로 모든 분야의 사유를 가로지르는 원형적인 "르네상스 인간"이다.

 

홈즈의 <<경이의 시대>>는 함성일 뿐 아니라 하나의 모형이다. 그것은 낭만파 시인들과 과학자들―전에는 적대적이라고 여겨졌던―이 그들의 "발견에 대한 무모한, 개인적인 헌신"에 있어서 어떻게 통일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책를 통할하는 천재는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인데, 그는 경이로운 것들과 이야기로 "청중을 매혹하고" 싶은 욕망에서 과학을 포용했으며, "상상", "취향", 그리고 "유비들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들의 "창조적 원천"이라고 맏었던 인물이다.

 

이런 뛰어난 전기들에 감동했던―그리고 "과학전쟁"에 대한 내 자신의 학부시절의 미숙한 기여 행위를 몹시 속죄하고 싶었던―나는 혈액순환 이론으로 1,500년 동안의 정통 견해를 전복했던 영국의 위대한 해부학자인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의 생애를 저술하기로 결심했다. 홈즈 등으로부터 자극을 받았던 나는 후기 르네상스 정신들이 향유했던 "예술"과 "과학"의 조화롭고 유익한 결합을 강조했다.

 

하비의 시대에 대학에서 공부했던 "일곱 과목의 자유 학예"에는 기하와 산술이 포함되었고, 그래서 지적 문화는 두 개로 분할되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이자 분리될 수 없었다. 공유된 언어와 관념 및 목적들의 공통 집합을 바탕으로 한 폭넓은 공감은 각 학문분과를 연결했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접촉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공개 해부는 신학적 선언으로 시작했다. "해부는 신성하고 성스러운데, 그것이 신의 지혜를 증언하기 때문이다." 목사들, 정부 관리들, 그리고 법률가들이 흔히 하비의 해부에 참석하여 "신체(body)의 불가사의한 점들"에 관한 "많은 유익한 지식"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체(body politic)"에 적용할 수 있는 관념들을 얻었다.

 

때때로 시인들도 하비의 그랑 기뇰 공연을 참관하였고 "칼과 말"로 이루어지는 그의 전설적인 솜씨에 대한 열광적인 찬사를 집필하곤 했다. 아마도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었던 존 던(John Donne)은 가끔씩 출석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그의 유명한 시행을 읽었던 그 어떤 사람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아는가? 심장으로 피가 어떻게 들어오는지,/한쪽 심실에서 다른 쪽 심실로 어떻게 가는지".

 

그리고 던이 아무 노력 없이 자신의 운문에 해부학적 은유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하비는 자신의 강연들에 시로부터 인용한 구절을 가미할 수 있었다.  "오 뮤즈여, 저는 주피터로 시작합니다." 하비는 자신의 원고 모두에 자신이 애호하는 베리길리우스 시행을 휘갈겨 썼다. "만물은 주피터로 가득 차 있다." 이런 말들은 매우 간결하게 자연철학자로서의 하비의 소명―자신의 창조물 안에서 작업하고 있는 신의 손을 식별하고 드러내는 것―을 표현한다. 던은 같은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종교적 소네트들을 창작했다.

 

하비의 혁명적 관념은 이런 문화에서 유기적으로 비롯되었다. 당대의 정신에 날카롭게 민감했던 하비는 시대 정신의 관심사와 흐름에 대한 피뢰침이 되었으며, 그것들을 특정한 해부학적 의문에 능숙하게 집중했다. 그의 순환 이론은 자신이 숭배했던 철학의 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원리들에 의해 특징지워졌다. 또한 그는 셀 수 없이 많은 비전의 원천들과 일상적 원천들―연금술, 정치 이론, 그리고 순환적 형식의 신성에 대한 당대의 믿음으로부터, 런던의 수도관의 복잡한 연결망과 수력 기술의 발전으로부터―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었다.

 

그런 것들에 관해 숙고하면서 하비는 점차적으로 "혈액이 순환 운동을 하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시체와 살아있는 동물들에 대한 끝없는 실험으로 그 이론을 시험한 후에 그는 마침내 "그것이 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전의 두 명의 하비 전기 작가 제프리 케인즈(Geoffrey Keynes) 경과 루이 샤부와(Louis Chauvois)는 그런 "비과학적인" 탐구 노선들을 피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글을 쓰면서 그들은 가련한 하비의 옷깃을 잡고 들어올려 그를 C P 스노우의 지적인 분할의 "과학" 편에 정확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은 하비를 역사적 운명의 어떤 장난에 의해 실험복 대신에 피가 튄 더블릿을 그야말로 우연히 착용했던 근대적인 귀납적 과학자의 원형으로 묘사했다. 그들의 초상화들은 생생하고 상세하지만 원근법과 비례를 결여하고 있는데, 그것들의 초점은 하비가 정교한 칼을 휘두르고 신체의 혈액 미로의 내부를 응시할 때의 그의 손과 눈에 전적으로 집중된다. 그들의 캔버스에는 하비의 심장 또는 그의 정신을 위한 여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하비를 "근대적" 실험가이자 당대의 대표적인 자연철학자―앞면과 뒷면 둘 다를 보이는 야누스―로서 제시함으로써 그림을 완성할 때라고 나는 생각헀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현대의 과학 전기 작가들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인문학과 과학 사이에 존재했던 연관 관계들을 탐구함으로써 그들은 현재와 미래의 두 문화 사이의 대화를 촉구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갈갈이 찢어버린 것이 공생적 관계 속에서 다시 한번 결합될 수 있다고 그들은 희망한다. 그런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대학 주점들의 분위기도 바뀌기 시작하여 전문 기술자들과 보헤미안들이 공통의 기반 위에서 그리고 공통의 언어로 우호적으로 논쟁할 것이다.